페이스북 커뮤니티 〈진실 혹은 거짓: 재능 낭비〉에 장난삼아 올렸던 ‘6 지원, 6 합격의 재능’이 예상치 못했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글의 마지막 문장인 “저는 미네르바로 갑니다!”라는 말이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해요. ‘도대체 서울대를 안 가고 간다는 미네르바는 어떤 학교지?’라는 의문으로 시작해서 다양한 매체에서 미네르바 대학(당시는 미네르바 스쿨)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18쪽
'Your Admissions Decision.' 2018년 11월 1일, 미네르바 대학에서 받은 이메일의 제목입니다. 입시 결과가 나왔으니 확인하라는 뜻입니다. 수능을 2주 정도 남겨두고 있었기에 합격 여부가 제게 미칠 영향은 상당히 컸습니다. 보통 3학년 1학기가 끝나면 내신은 내팽개치고 수능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난데없이 이 기간을 미네르바 입시를 위해 영어 회화와 작문 연습으로 채워왔고요. 수능 리듬이 모조리 깨져있었던 거죠. 미네르바 대학에서 불합격 소식을 받게 된다면 재수학원부터 알아봐야 할 처지였습니다. 62쪽
결론적으로 2019학년도 입시에서 학생부 전형으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사회학과를, 한양대와 성균관대는 입학과 동시에 장학금을 준다는 정책학과와 글로벌리더학과에 지원했습니다. 운이 좋게도(물론 부단한 노력도 있었지만요) 5곳 모두 최종 합격했습니다. ‘5 지원, 5 합격’의 기적(?)이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마치 제가 입시 전형과 준비 방법에 대해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내신-활동-자기 소개서-면접까지 착착 차질 없이 준비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사실은 정말 많은 진로 변경과 그에 따른 입시 전략 수정이 있었습니다. 67쪽
고등학교에서의 진로는 스토리텔링이기도 합니다. 나의 평소 생각과 지난 행동을 꿰어 내가 왜 이 길을 걷고자 하는지를 한 편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것이죠. 그럼 도대체 스토리텔링을 어떤 식으로 할 수 있을까요? 저의 학교생활기록부와 대입 자기소개서 내용을 토대로 예시(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저의 서울대학교 자기소개서입니다. 하하)를 하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68쪽
미네르바 대학을 알려준 건 엄마였지만, 그런 엄마조차도 수능이 코앞인 상황에서 갑자기 미네르바 대학에 가겠다고 하니 당황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표를 다 써본 후에 부모님과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왜 미네르바에 가고 싶은지, 왜 지원 시기가 지금이어야 하는지,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막연히 미국이 가고 싶어서라거나 유학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니라 나름의 이유가 분명했기에 큰 응원을 받으며 미네르바 입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75쪽
마지막 단계를 준비하면서는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동안 지원자가 어떤 경험을 통해 무엇을 성취했는지를 묻기 때문입니다. 제가 국내 대학 입시를 치렀을 때의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는 입시에 사용할 수 없는 활동들이 참 많았습니다. 학교장의 허가를 받지 않은 교외 활동이나 공인 인증시험의 성적, 올림피아드 수상 내역 등은 자기소개서에 기재할 수 없었죠. 하지만, 미네르바 대학의 입시에서는 지원자가 생각하기에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활동이라도 쓸 수 있습니다. 81쪽
미네르바 대학은 4년 동안 7개국에 있는 주요 도시에서 생활하며 100% 온라인으로 수업합니다. 이때 주요 도시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7개국에 각각 캠퍼스가 하나씩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미네르바 대학은 캠퍼스가 없어요. 기숙사Residence hall라고 불리는 건물이 있고, 그곳에서 학생이 거주하고 생활합니다. 수업도 듣고, 잠도 자고, 샤워도 하고, 친구랑 노래도 부르면서 말 그대로 거주민으로 살고 있는 것이죠. 24쪽
미네르바답게 1 미네르바의 꽃, HC. 사고하는 방식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방법,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방법, 뛰어난 협상 능력, 훌륭한 리더십 같은 것들을 말이죠. 정량화하기 어려운 개념을 전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노하우는 배우는 게 아니라, 터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니까요. 하지만 미네르바 대학은 이조차도 가르칠 수 있다고 응답합니다. 28쪽
비키 챈들러Vicki Chandler, 임시 교무처장는 HC의 탄생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네르바의 커리큘럼은 다양한 고용주와 대학원 담당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에게 신입사원이나 대학원생에게 기대하는 점이 무엇인지 물어본 거죠. 대개 갓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특정 분야의 지식은 잘 알고 있지만, 이를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이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32쪽
궁금하지 않으세요? 왜 굳이 7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생활할까요? 평균적으로 4개월에 한 번은 짐을 싸고 푸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죠. 첫 번째 이유는 다양한 문화 경험입니다. 미네르반은 샌프란시스코, 서울, 부에노스아이레스, 베를린, 하이데라바드, 타이베이, 런던 등 세계 각지에서 생활하며, 각 도시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 사회적 맥락을 직접 경험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책에서 배우는 것 이상으로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문화적 감수성을 기릅니다. 48쪽
미네르반은 시빅 프로젝트를 통해 단순히 한 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기여’하게 됩니다. 7개 도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도구죠. 지식 쌓기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활용해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은 곧 내공이 돼요. 그렇게 미네르반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58쪽
미네르바 대학의 실시간 온라인 수업은 포럼Forum이라는 자체 플랫폼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여러 나라에 거주하다 보니 모든 도시에 캠퍼스를 만드는 대신, 어느 곳에서도 수업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포럼 자체가 특별한 기술은 아닙니다. 줌이나 구글미트Google Meet와 같은 온라인 미팅 플랫폼을 통해서도 실시간 온라인 수업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미네르바가 혁신 학교라고 불리는 것은 어떤 플랫폼이나 기술을 접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플랫폼을 사용해 어떤 방식으로 교육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102쪽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아남은 학생은, 앞으로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다.’라는 미네르바식 농담이 있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는 1학년 생활은 상상 그 이상으로 힘겹습니다. 일단 물가가 정말 비싼 곳이다 보니 직업이 없는 유학생으로서는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어 써도 부족한 곳이죠. 특히 처음 기숙사 생활이나 타지 생활을 하는 학생의 경우에는 더욱 적응을 어려워합니다. 111쪽
미네르바 대학에 다니며 3학년 때까지는 정말 폭주하는 기관차였던 것 같아요. 학업과 회사 업무를 병행하면서 20대 초반 이전의 저를 경험했던 분들은 모두 저를 ‘일 중독자’라고 부를 만큼 바쁜 일정으로 살았습니다. 바쁨이 삶의 유일한 원동력이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바쁜 나의 모습 그 자체가 좋았던 거예요. 종일 빡빡한 일정을 살아내고 나면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낸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다이어리에 할 일을 가득 쓰고 나서 일을 끝낼 때마다 줄을 하나씩 긋는 것이 좋았습니다. 열심히 살았단 흔적이 마치 내가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요. 하지만 몸과마음 모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잠은 늘 부족했고 마음은 빈곤했습니다. 177쪽
미네르바 대학에서는 상대평가가 없습니다. 시험도 없어요. 평가는 단 두 가지만으로 이뤄집니다. 하나는 수업 시작과 동시에 나오는 시작 질문, 수업 중 학생의 발언, 수업 끝의 마무리 질문 중 하나가 랜덤하게 선택되어 평가되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제출하는 에세이가 높은 비중으로 평가됩니다. 학생이 자기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간 배운 내용에 대한 높은 이해가 필요하죠. 배움의 넓이와 깊이를 평가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평가 방식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를 우리 교육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부분이 있습니다. 220쪽
사실 미네르바를 선택하면서 타인의 기준에 대해서는 거의 의식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이름이 주는 브랜드 파워를 포기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가치를 어떤 유명한 이름에 기대 알릴 수가 없어졌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의 경험, 나의 말, 나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증명해야 했습니다. 247쪽
시스템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입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세상이 원하는 인재의 유형도 변하고 교육의 내용과 방법도 바뀝니다. 삶의 형태도 서서히 변화하죠.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조리가 발견되고, 사각지대가 발견될 때마다 시스템을 부숴버리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저는 계속 변화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나를 꿰맞추는 순응의 방법이 아니라, 나를 지키면서도 변화에 어우러질 수 있는 적응의 방법을요. 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