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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


  • ISBN-13
    979-11-7254-056-2 (0380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도서출판 푸른숲 / 푸른숲
  • 정가
    23,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05-13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브라이언 애터버리
  • 번역
    신솔잎
  • 메인주제어
    판타지
  • 추가주제어
    문학: 문학사 및 평론 , 문학연구: 소설, 소설가, 산문가
  • 키워드
    #판타지 #문학: 문학사 및 평론 #문학연구: 소설, 소설가, 산문가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3 * 200 mm, 460 Page

책소개

“판타지는 진실이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을 뿐, 진실인 것은 맞다.”

어슐러 K. 르 귄

 

세계를 드러내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비현실의 문학 장르에 관한 가장 현대적인 탐구

 

판타지가 21세기 가장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한 지금, 수많은 매니아들의 지적 갈증을 해소할 책이 푸른숲에서 출간됐다. 마법사와 용, 주문과 예언,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는 역사적인 공간과 존재한 적이 없는 미래 공간…. 현실과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 삶에 의미 있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판타지와 SF 분야에서 활동하며 세계환상문학상, 신화상, IAFA 우수학술상, 필그림상 등을 수상한 미국의 대표적인 판타지 문학 연구자 브라이언 애터버리는 판타지를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이라고 표현한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인간의 본성과 세계의 작동 방식을 꿰뚫어 보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판타지는 현실과, 그리고 작품 바깥의 독자와 상호 작용하며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문학에 관해 심도 있게 이야기한 책은 많지 않았다.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는 ‘판타지가 어떻게 의미 있을 수 있는가’, ‘판타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판타지 문학의 세계로 초대한다. 진실성, 사실주의와의 관계, 장르에 따른 결말의 특징, 작품에 흥미를 더하는 메타포, 신인 작가들이 기존의 세계관을 전복하는 방식 등 아홉 가지 관점으로 판타지 문학의 의미와 역할을 밝혀나간다. 또한 어슐러 K. 르 귄, J. R. R. 톨킨 등 대표적인 판타지 작가부터 현시대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흥미로운 작품까지 방대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판타지 문학이 지닌 사실적인 측면이 돋보이고, 판타지가 제시하는 더 나은 대안이 드러나며, 판타지가 어떻게 정치적인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밝혀진다.

 

“흔히 알려진 판타지의 미덕, 즉 용기, 재치, 성장, 변혁, 위로, 눈앞의 현실에 갇히지 않고 다른 것을 희망하는 힘은 고색창연한 것이지만, 사회 변화에 발맞춰 갱신돼 온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판타지가 매우 강력하며 또 지금도 절실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_심완선(SF 평론가)

 

이 책은 판타지 문학을 가장 현대적인 관점으로 탐구한 책으로서, 판타지를 즐겨 읽는 사람들에게는 애정에 대한 탄탄한 근거를 제공할 것이며, 쓰는 사람들에게는 작품에 가치를 더할 유용한 생각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목차

서문 _판타지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질문

 

1 거짓말로 진실을 말하기 

_신화, 메타포, 구조

2 마법이 현실 세계로 뻗어 나간다면 

_판타지와 사실주의

3 화합을 추구하는 결말 

_신화를 전승하는 판타지

4 갈등보다 건설적인 각본 

_흥미를 더하는 메타포들

5 여성을 억압하는 북 클럽에 저항하기 

_문학의 사회적 기능

6 더 나은 세계가 있다는 생각 

_유토피아 문학

7 환상 동화 속 소년 찾기 

_남성성 모델

8 익숙한 과거를 재구성하는 공간 

_판타지의 정치성

9 두려움 너머의 진실을 보기 

_판타지와 호러

 

요점

참고 문헌

본문인용

판타지는 호메로스가 노래하고 셰익스피어의 배우들이 연기하던 장르다. 현대 판타지는 중세 시대의 로맨스와 초현실주의, 현대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이는 여전한 사실이지만 더 이상 크게 외칠 필요는 없어졌다. 고상한 척해대는 몇몇 잡지와 노년의 교수들이 누레진 노트를 들고 수업하는 강의실을 제외하고 우리의 투쟁은 모든 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판타지는 출판문화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 전반에 퍼졌다.

-19쪽 ‘서문 _판타지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질문’에서

 

사실주의는 일상의 수고와 감정적, 경제적, 사회적 교환을 제시하고, 우리가 스토리의 전부라고 여기는 것들을 눈앞에 보여준다. 하지만 판타지가 하는 일은 사뭇 다르다. 판타지는 저 높은 지붕 위에서, 땅 아래 깊은 곳에서, 벽 안쪽에서 영혼을 바라본다. 환상 이야기는 표면적인 정확도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압력과 지지대의 기본 골조를 드러낼 수 있다. 주춧돌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치명적인 균열이 어디서 생길지, 폐허에서 무엇이 나타날지를 확인할 수 있다. 

-41쪽 ‘거짓말로 진실을 말하기_신화, 메타포, 구조’에서

 

순전한 진실에서 완벽한 날조까지를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본다면 그 어떤 서브 장르의 소설도 스펙트럼의 극단에 자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소설이든 일정한 조건하에 경험에 충실하고, 진실에 어느 정도 기반하며, 몇몇 진실을 입증한다. 사실주의 작가 조지 앨리엇에서 판타지 작가 조지 맥도널드에 이르기까지 먼 여정이 가로놓여 있지 않다. 그저 좀 더 큰 가정 혹은 상상력을 발휘한 가설로 몇 발짝만 내디디면 된다. 

-68쪽 ‘마법이 현실 세계로 뻗어 나간다면 _판타지와 사실주의’에서

 

문학적 판타지는 환상 동화의 해피 엔딩을 지키는 한편 결말을 복잡하게 만들고 스토리 곳곳에 해결의 실마리를 배치해야 한다. 이로써 단순히 공주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거나 괴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식이 아니라 한 세계가 신뢰, 사랑, 투지, 친절함, 연대감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독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공포와 트라우마를 파악하고, 이를 초월하는 방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 이를 성공한 작가들은 우리에게 생존의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무기로 무장된 전쟁터를 사람이 사는 동네로 바꿔놓는 시나리오야말로 이 힘든 시기에 가장 필요한 마법의 주문이다. 

-157쪽 ‘화합을 추구하는 결말 _신화를 전승하는 판타지’에서

 

“논쟁은 전쟁이다”라는 말은 레이코프와 존슨이 언급한 메타포 중 하나로, 두 사람은 “논쟁을 전쟁으로 보지 않는 문화를, 이기거나 지는 사람이 없고 공격이나 방어, 이득이나 손실 같은 개념이 없는 문화를 상상해 보”라고 제안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논쟁을 춤으로, 참가자를 공연자로 보고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균형 잡힌 논쟁을 펼치는 것이 목표인 문화를 떠올리면 된다.” 메타포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고, 메타포로 정제하고 내면화한 스토리와 각본을 우리가 몸소 실연할 수 있다는 의미다.

-173쪽 ‘갈등보다 건설적인 각본 _흥미를 더하는 메타포들’에서

 

심미적 특징과 중대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텍스트와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우리 사이에 연결성이 부재하면 모든 문학은 얄팍하고 생명력이 없이 느껴질 것이다. 앞서 말했듯, 문학 운동과 잉클링스 같은 집단이 적어도 남성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는 연결성을 만들어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극작가들은 서로를 자유롭게 인용했다. 낭만주의 시인들은 서로의 작품에 힘을 실어주고 함께 책을 만들었다. 

-229쪽 ‘여성을 억압하는 북 클럽에 저항하기 _문학의 사회적 기능’

 

유토피아 문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다. 유토피아 문학은 우리가 조화의 순간들을 깨닫고 이를 가치 있게 여길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순간들을 유토피아로 망명하거나 이민한 자들의 이야기, 사회의 메커니즘을 더욱 나은 방향으로 재구성하고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엮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특히나 그것을 젊은 세대에게 제공해야 한다. 변화를 가능하게 할 열정과 가소성을 지닌 젊은이들에게 말이다. 유토피아에는 신경 가소성과 같은 사회적 가소성이 필요하다.

-280쪽 ‘더 나은 세계가 있다는 생각 _유토피아 문학’에서

 

결국 나는 내 미스터리를 해결할 세 가지 해결책을 찾아냈다. 이것들은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헤게모니 남성성에 도전한다. 작은 남자는 항상 여자 또는 아이를 얻지는 못하지만 거인을 속이고 거인의 보물을 훔치는 방법을 보여준다. 괴물 신랑은 사회의 요구에 응한 결과물일지라도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을 상징한다. 에로틱한 백조는 서구 문화가 제시하는 남성성 모델에서 소거된 무언가를 되찾을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322쪽 ‘환상 동화 속 소년 찾기 _남성성 모델’에서

 

판타지가 정치 비평이나 유토피아적인 비전을 제시하기란 좀 더 까다롭다. 잃어버린 황금기를 재건하는 일, 특히나 간달프처럼 천사 같은 존재나 《나니아 연대기》 속 아슬란 왕처럼 신적인 존재가 다스리는 황금기를 제시하는 일은 현실적인 목표가 되기 어렵다. 경험해 보지 못한 대상을 향한 향수는 정치적 에너지원이기는 하지만 신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21세기 최고의 판타지는 이런 향수를 전복이라는 방식으로 대체하고, 테마파크 같은 중세주의를 여러 대안적인 과거로 대체한다. 위대한 남성이 만든 역사와 제국 승리주의 같은 기존의 거대 서사에 가려진 소재들을 바탕으로 세계를 구축한다. 

-342쪽 ‘익숙한 과거를 재구성하는 공간 _판타지의 정치성’에서

 

스토리가 해결되기 전에 종료하지 않고 스토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호러와 혐오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갑자기 종료되는 내러티브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는 판타지 밖의 실제 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여 벽을 쌓고, 무기를 비축하고, 독재자에게 투표하고, 외부인을 악마화하고, 공동체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모습을 보라. 아무리 판타지가 완벽하게 실현된다고 해도, 그 어떤 스토리도 이 모든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우리 스스로에게서 우리를 구원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는 스토리가 없다면 미로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을 희망도 없다. 판타지는 “티모르 모르티스 콘투르바트 메”로 끝나지 않고, 타자를 포용하는 일이 우리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10쪽 ‘두려움 너머의 진실을 보기 _판타지와 호러’에서

서평

판타지에 관한 우리 시대의 핵심 질문,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호메로스가 노래하고 셰익스피어의 배우들이 연기하던 장르’, ‘중세 시대 로맨스와 초현실주의, 현대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진정한 계승자’. 판타지 소설이 엘리트 문학계에서 배척당하던 때만 해도 이런 수식어들을 외치는 일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판타지가 책이라는 매체를 넘어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문화 전반으로 널리 퍼졌다는 사실과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장르가 됐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관념을 탈피한 세계관,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 등 판타지 특유의 설정들은 많은 작품에서 활발히 차용된다.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는 이렇듯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판타지 문학을 심도 있게 파헤치는 책이다. 저자 브라이언 애터버리는 판타지와 SF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연구자다. 세계환상문학상, 신화상, 필그림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한 그는 어슐러 K. 르 귄과 SF 단편선을 편집하는 등 학문적인 연구를 넘어 판타지, SF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애터버리는 판타지를 둘러싼 수많은 질문을 단 두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 판타지가 어떻게 의미 있을 수 있는가? 물리 법칙을 뒤틀고 과거 사실을 부정하는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인간 본성과 세계의 작동 방식을 파고드는 통찰의 원천이 되는가? 둘째, 판타지의 역할은 무엇인가? 소설 속 인물의 세계가 아니라 그것을 읽는 독자의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는 판타지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밝혀내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애터버리는 아홉 가지 관점, 즉 ① 판타지의 진실성, ② 사실주의와의 관계, ③ 화합을 추구하는 결말, ④ 갈등보다 건설적인 각본, ⑤ 여성 작가의 계보, ⑥ 유토피아 문학의 필요성, ⑦ 헤게모니 남성성에 대한 대안, ⑧ 판타지의 정치성, ⑨ 두려움을 통제하는 방식이라는 주제로 판타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비현실을 전제로 하기에 판타지는 대개 현실의 문제들과 거리를 두는 듯 보인다. 용, 지니, 골렘같이 환상적인 존재들이 투표, 정치, 식민주의, 프로파간다와 어떻게 관련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판타지가 사회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만큼, 현실이라는 1차 세계는 판타지라는 2차 세계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어스시〉 시리즈의 어슐러 K. 르 귄, 《반지의 제왕》의 J. R. R. 톨킨, 《왕좌의 게임》의 조지 R. R. 마틴같이 대표적인 판타지 작가들의 작품부터 은네디 오코라포르, 헐린 웨커, 알리에트 드 보다르드 같은 현시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방대한 사례들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이 책은 가장 현대적인 관점으로 판타지가 현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탐구한다. 기존의 판타지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관점을, 입문자들에게는 판타지 문학의 전체적인 지형을 조망할 수 있는 가이드를, 창작자에게는 작품의 가치를 더할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책이다. 

 

 

“판타지는 진실이다”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는 장르

 

브라이언 애터버리는 판타지를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이라고 표현한다. 비현실을 전제로 인간의 본성과 세계의 진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슐러 K. 르 귄은 여기서 더 나아가 판타지가 진실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스토리 공간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불가능한 사건들을 어떻게 우리 삶의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애터버리는 판타지가 진실이 될 수 있는 세 가지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판타지는 신화 차원에서 진실이 될 수 있다. 신화는 우주를 설명할 뿐 아니라 집단, 계층, 젠더의 역할, 의례와 종교적 의무까지 보여주는 전통적인 신념이자 내러티브다. 사람들은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신화에 의지했고, 이러한 신화는 대개 판타지의 바탕이 된다.  

 

둘째, 판타지는 메타포 차원에서 진실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작품에 등장하는 용은 진짜 용이 아니라 독재자를, 동물과 의사소통하고 싶은 우리의 욕구를, 해일이나 화산 폭발같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의미할 수도 있다. 

 

셋째, 판타지는 구조 차원에서 진실이 될 수 있다. 사실주의가 사회와 자아의 ‘형태’를 묘사하는 데 뛰어나다면, 판타지는 표면적인 정확도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과 세계의 숨은 ‘구조’를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 필립 풀먼의 《황금나침반》에는 ‘데몬’이 등장한다. 데몬이란 정령이라는 신화적 전통에 셰이프 시프터(변신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더해진 것으로, 이들은 반려동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의 자아와 연결된 인공 기관 같은 역할을 한다. 작품은 다른 존재로 분산돼 있는 자아의 구조를 통해, 자아가 한 사람의 피부 너머로 뻗어 나가 다른 생명체를 침범할 수 있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비현실적인 무언가만이 우리를 더욱 깊은 진실로 데려간다고 주장하는 애터버리는, 판타지가 사실주의와 비교되며 열등하게 여겨지는 경향에 반기를 들며 J. R. R. 톨킨의 말을 인용한다.

“이미지들이 1차 세계의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결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판타지는 낮은 형태가 아니라 높은 형태의 예술이다.”

 

 

합의와 개선, 연민과 공존

우리에게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장르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는 익숙치 않은 방식으로 진실을 보여주는 판타지는, 이를 통해 때때로 우리 삶에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그 자체로 하나의 대안이 되기도 한다. 지난 몇십 년간, 그리고 지금까지, 대안적인 현실을 함께 꾸려나가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을 가진 집단이 결집되는 과정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와 파괴적인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런 시기에 판타지는 우리에게 다른 존재,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을 이해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세계가 꼭 지금 같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다양한 방식으로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한다. 판타지가 재미있고, 그 진실성이 의미 있는 이유다. 

 

판타지가 우리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의 하나가 ‘결말을 맺는 장르적 특성’이다. 판타지는 결말에 이르러 화합을 추구한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극대화되는 순간에 결말을 짓는 호러 장르와 달리, 판타지는 환상 동화의 전통적인 구조상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갈등을 필수적으로 해결한다. 또한 상상력이라는 동등한 땅 위에서, 캐릭터들은 각자의 세계관이 충돌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사고방식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헐린 웨커의 제목부터 파격적인 《골렘과 지니》에는 1988년 뉴욕의 이민자 집단에서 살아가는 동유럽 출신의 유대인과 중동의 아랍인이 등장한다. 지니와 골렘이라는 서로 다른 전통을 믿는 이들은 서로의 세계를 나란히 겹쳐 나가며, 자신의 신념과 지식이 조건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화합의 결말로 나아간다. 

 

만약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이야기가 갑자기 종료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이야기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는 실제 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무기를 비축하고, 외부인을 악마화하며, 독재자에게 투표한다. 우리는 판타지의 결말을 통해 공포에 압도되지 않고 다른 존재와 공존하는 방법을 배운다.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를 읽는 것으로 현실의 행동을 대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이면을 생각할 수 있고, 두려움 너머를 엿볼 수 있으며, 행동의 계기를 마련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 판타지가 일상을 충실히 재현하는 이야기보다 더 가치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 판타지는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며, 때로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도구가 된다. 

저자소개

저자 : 브라이언 애터버리
미국의 대표적인 판타지 소설 연구자이자 작가다. 아이다호대학에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브라운대학교에서 미국 문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아이다호주립대학교의 영문학과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슐러 K. 르 귄, 캐런 조이 파울러와 함께 《노턴 SF 단편선(Norton Book of Science Fiction)》을 편집했고, 오랜 시간 판타지와 SF 분야에서 활동하며 쌓은 업적을 인정받아 수많은 상을 받았다. 다양한 연구 저서로 세 개의 신화상을, <예술 속 판타지 저널(Journal of the Fantastic in the Arts)>에서 오랜 시간 에디터로 활약하며 판타지 장르에 기여한 공로로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IAFA 우수학술상과 SF 연구 협회 필그림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스토리에 관한 스토리(Stories about Stories)》, 《SF 속 젠더를 파헤치다(Decoding Gender in Science Fiction)》, 《판타지의 전략(Strategies of Fantasy)》, 《미국 문학 속 판타지의 전통(The Fantasy Tradition in American Literature)》이 있다.
번역 : 신솔잎
프랑스에서 공부한 후, 프랑스, 중국, 한국에서 일했다. 다양한 외국어를 접하면서 느꼈던 언어의 섬세함을 글로 옮기기 위해 늘 노력한다. 《살인 재능》, 《밤은 눈을 감지 않는다》, 《레퓨테이션》,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사라진 여자들》 등 마흔 권 이상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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