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 수학 시간이구나.
너희들도 졸업을 하지만 나도 이 수업을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난다. 그러니 오늘 수업은 내가 교사로서 하는 마지막 수업이 될 거다.(p.7)
그 친구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를 내버려두고 혼자만 저세상으로 가 버렸으니 친구에 대해 배신을 때린 건 맞구나. 중학교 때까진 나와 동갑인 절친한 친구였지만 이젠 나이 차이가 너무 나 버려 아직도 친구라곤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녀석이니까.
그 친구는 열여섯, 바로 너희 나이에 목숨을 잃어서 영원히 열여섯으로 남고 말았다. (p. 15)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겠지?
죽은 사람들 앞에선 조용히 귀라도 기울여야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우리에겐 그들한테는 없는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p. 19)
기훈이가 문제집을 사 들고 책방 문을 열고 나가 막 자전거에 올라탈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났다.
군인들은 다짜고짜 자전거에 올라타는 기훈이를 낚아챘다.
“왜 그러세요? 저는 중학생이에요. 동신중학 3학년이에요. 왜 그러세요?”
기훈이는 떨면서도 똑똑히 외쳤다.
군인들은 그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소리쳤다.
“너,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데모꾼들 연락해 주는 거지? 너, 연락병이지?”(p. 49)
드디어 관이 끌어올려지고, 관 뚜껑이 열렸다.
“앗!”
관 뚜껑을 열어젖힌 인부들 사이에서 먼저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얼른 관 속을 들여다본 어머니와 나는 너무 놀라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p.71)
인류가 저지르는 가장 비열하고 끔찍한 일들은 대부분 명령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졌다.
명령을 내린 자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명령에 따라 움직인 자는 명령이란 방패 아래 자신의 억눌린 사악함을 다 드러낸다.
혹은 명령이란 이름 뒤로 뻔뻔스레 숨는다.
명령을 통해 그들은 공생관계가 된다.
수백만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몰아넣어 죽인 것도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고,
단지 명령에 의해 스위치만을 누른 자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p.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