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만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모두가 차갑게만 보이는 날에도
그들 안에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어린 시절 형의 죽음은 '나'에게 말 더듬이라는 흔적을 남겼다.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지만, 학예회에서도, 대입 수험장에서도, 입사 면접에서도 말 더듬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말 더듬이 나의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을 망쳐 버릴 것 같았다. 내 인생이 온통 말 더듬에 발목 잡힌 것 같았다. 돌아보니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말을 더듬지만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인터뷰를 하고, ㅋ 발음이 어려워 콜드브루 대신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지만 가장 앞에 서서 회사를 소개하는 마케터로 일하는 나는 '말 더듬'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마로니에공원에서, 청계천에서 “잠깐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내게 기꺼이 시간을 내준 사람들은 모두 겉모습만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덕분에 나도 말 더듬이 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내 안의 고유한 이야기가 나를 만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차가운 얼굴을 한 사람이라도 그만의 이야기가 있다. 내가 묻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귀를 기울인다.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면 고유함이 곧 특별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