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구성원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줄 때
조직은 성공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간다”
리더라면 꼭 알아야 하는 관계의 네 가지 단계,
그리고 관계에 ‘인간미 불어넣기’
《리더의 덕목》에서 에드거 샤인은 관계를 네 가지 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1단계’, ‘1단계’, ‘2단계’, ‘3단계’로 나뉜 관계의 단계는 각자가 사회적으로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 처했는지에 따라 다르게 소속된다. -1단계는 부정적 관계, 1단계는 업무적 관계, 2단계는 전인적 관계, 3단계는 친밀한 관계를 의미하는데, 이 중 조직 내에서 지향해야 할 관계는 ‘2단계’ 관계인 전인적, 즉 인간적인 관계다. 물론 업무적인 1단계 관계도 나쁘지 않다. 서로를 ‘역할’로 여기고 적당한 직업적 거리감을 유지하며 주어진 일을 수행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1단계 관계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반드시 협력이 필요한 일이 있어도 서로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하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상대방 개인 혹은 집단이 패배하고 실패해야 자신이 성공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는 각각의 개인에게는 소외감을, 집단에게는 부족주의를, 조직 자체에는 파멸로 가는 시작이다.
그렇다면 친밀한 관계인 3단계 관계가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왜 샤인은 2단계 관계를 적절한 단계로 꼽았을까? 바로 가장 부담을 덜 느끼면서도 서로를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고 다음 단계로 발전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면서도 꼭 친밀해질 필요가 없는 적정선은 오히려 조직 내에서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만큼의 신뢰를 쌓으면서 관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싹을 만든다.
업무 관계를 2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은 “우리가 서로 신뢰하고 업무를 훌륭히 완수할 수 있도록 당신을 더 잘 알고 싶습니다”라는 의도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절친한 친구가 되어 서로의 사적인 삶을 시시콜콜 알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업무 관련 사안에 대해 개방적이고 솔직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 이 유형의 관계는 1단계와 비교할 때 1) 서로에 대한 헌신과 약속을 이행하고 존중하며, 2) 서로를 깎아내리거나 합의를 파기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3)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공동 과업에 연관된 정보를 감추지 않기로 다짐한다는 측면에서 더 깊은 신뢰와 개방성을 지닌다. 반드시 친구가 되어 일터 밖에서까지 어울리지 않더라도 직장에서 임무를 완수할 만큼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다. (64~65쪽)
조직 전체가 현재 2단계 관계를 맺고 있다면 직급과 상관없이 서로 그 관계에 머물지 조금 더 단단하게 다지면서 나아갈지 각자가 정할 수 있으며, 이는 리더가 선두에 서서 ‘인간미 불어넣기(personization)’를 시도할 때 가능하다. 인간미 불어넣기는 에드거 샤인이 만든 개념이기 때문에 단어를 검색해도 뜻이 나오지 않는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조직의 구성원을 역할, 즉 인사, 재무, 영업, 홍보 등의 기능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법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리더의 덕목》에서 지향하는 2단계 관계 형성의 기본 방향이다. 인간미를 불어넣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상사나 부하직원, 혹은 동료끼리 서로의 취미나 관심사를 묻는 간단한 질문만으로도 관계 발전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
단순히 “서로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어 다가가고 서로를 조금 더 믿자”고 격려하는 말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행동 없는 말뿐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직이 1단계 업무적 관계에 머무르게 만든다. 하지만 리더가 구성원들을 역할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고 먼저 나서서 교류의 손길을 내밀며 심리적 안전감을 심어준다면, 그 조직은 인간적 관계를 토대로 한 자발적 참여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조직을 바꾸는 열쇠는
하는 ‘척’이 아닌 리더의 진실된 자세다”
겸손한 리더십은 조직문화를 긍정적이고 성공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조직은 위계질서를 기본 구조로 삼는다. 명확한 권한 수준과 서열이 있어야 각자가 적절한 업무 이행과 더불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계질서는 《리더의 덕목》에서 지향하는 겸손한 리더십을 통한 2단계 관계 구축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조직의 모습이다. 특히 상명하복을 본질적 구조로 삼는 군대는 1단계 업무적 관계는커녕 –1단계인 부정적 관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샤인은 겸손한 리더십의 실제 사례를 통해 군대 내에서도 충분히 관계를 2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잠수함정의 새로운 함장이 된 데이비드 마켓은 함정 승무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는 일을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업무로 삼았다. 우선은 부사관들과의 관계를 2단계로 올리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으며 진심을 담아 현재 함정의 현실에 만족하는지, 더 나은 방법을 도입하고 싶은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질문했다. 그저 떠보기 위한 질문으로 받아들였던 부사관들은 데이비드 마켓의 꾸준한 행동과 질문, 그리고 대화를 통해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부사관들과 2단계 관계를 맺는 한 가지 방법은 회의를 소집해 그들의 관점에 대한 상황적 겸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함정의 현실에 만족하나, 아니면 더 나은 방법을 도입하고 싶은가?” 같은 (저의를 드러내기 전에 던지는) 미끼 질문이나 시간 때우기용 대화가 아니라, 마켓이 정말로 자신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부사관들이 깨닫기까지 많은 대화와 교류가 필요했다. 마켓은 이렇게 썼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미리 답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각본이 정해진 회의에서 의견을 청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승무원 집단은 상관의 ‘지휘통제’를 무작정 받아들이는 낡은 체계를 정당화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들은 낡은 체계에서 안전감을 느꼈지만 성취감은 느끼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사기가 저하되고 임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했다. 그렇긴 해도 다들 발전하고자 하는 내재적 의지가 있었기에 마켓의 제안에 화답했다. 어느 집단이든 잘 돌아갈 때에는 변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부사관들은 마켓의 질문을 받고서 자신들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데 동의했다. (106~107쪽)
부사관들은 가장 먼저 모든 상급자에게 보고해야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절차를 간소화해달라고 요청했다.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으니 업무 진행에도 문제가 생기고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을 놓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켓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휴가 보고 단계를 대폭 줄이는 파격적인 행정 절차를 시행했다. 정말로 자신들의 의견을 듣고 이행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사관들은 마켓의 행보로 인해 스스로의 사기와 함정 승무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들은 이 일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마음껏 제시해도 된다는 자신감과 개선하고 싶은 점, 변화 방안을 함장에게 제안해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변화는 마켓이 겸손한 태도로 부사관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덕분이었다.
함정에서 벌어진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마켓은 부사관들뿐만 아니라 일반 승무원들과도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며 함정 내 전체 관계를 인간적인 2단계 관계로 끌어올렸다. 그는 보고 시 사용하는 말투를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규칙을 알릴 때에는 제일 끝에 서 있어야 하는 말단 수병을 자신의 옆자리로 데리고 와 함정 내 승무원을 한 명 한 명 전부 신경 쓰고 있음을 직접 보여줬다. 이를 통해 승무원들은 자신들이 위계질서 내에 존재하는 단순한 역할이 아닌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꼈고, 이런 현상과 리더십은 상급자에서 하급자, 하급자에서 더 아래에 있는 하급자에게로 뻗어나갔다.
전통적 위계질서에서 하급자는 상급자와 형식적인 1단계 관계를 맺는 게 대체로 유리하다. 상사가 명령하는 일만 하는 것, 너무 골똘히 생각하거나 많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게 일반적으로 더 안전하고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상급자가 2단계 관계 연결을 시작하고, 그것도 전술적 교류가 아닌 진심으로 그렇게 한다면 조직을 변혁할 수 있다. 자신이 주목받고 있다고 느끼고 진지하게 대우받는다고 생각하는 하급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마켓 함장의 잠수함 변혁은 주로 사회적 차원에서 추진됐다. 그거 기술적 기능과 흐름에도 변화를 줬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변혁으로 기술적 변화가 수월해지기는 해도 그 반대가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음을 그는 처음부터 똑똑히 알고 있었다. (111~112쪽)
위계질서를 지키면서도 함정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겸손한 리더십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겸손은 성격적 겸손함이 아니다. 리더가 각 상황에 맞게 취해야 할 태도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태도, ‘척’이 아니라 각 구성원이 바라는 바를 경청하는 태도, 그에 맞게 조직을 변화시키려는 태도, 가장 말단에 위치한 구성원까지 바라보는 태도가 이 책에서 말하는 진짜 리더의 ‘덕목’이자 리더가 꼭 지녀야 할 필수 자질이다.
세계 곳곳에 대단한 성과를 낸 리더는 많다. 하지만 존경받는 리더는 흔하지 않다. 즉,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대단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존경받는 리더가 되지는 않는다. 겸손한 리더십은 존경받으며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리더가 되는 필수 덕목으로, 에드거 샤인이 50여 년간 직접 현장에서 관찰하고 연구해 얻은 리더십의 정수다. 그리고 단기적 성과를 넘어 조직이 지속 가능할 수 있는 문화 구축의 토대다.
진실된 마음으로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구성원들이 서로의 업무를 파악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꾸준히 마련하고, 구성원들을 역할이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는 겸손한 리더십을 실천해보자. 바로 당장은 아니더라도 차차 문화와 구성원들의 태도가 바뀌면서 어느새 성공가도를 달리는 조직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