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탐욕으로 망하고, 진보는 위선으로 망한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널리 퍼져 있는 말입니다. 탐욕과 부패는 보수의 가치가 아닙니다. 위선과 분열도 진보의 가치가 아닙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진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욕할 때 하더라도 서로를 좀 더 알고 나서 욕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_14쪽
다음으로 봉건제 속의 장원. 장원은 영주가 가진 토지의 범위를 기준으로 하는 하나의 마을 또는 여러 개의 마을을 뜻합니다. 영주라고 하면 뭔가 그럴듯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지금의 개념으로 보면 작은 장원을 가진 영주는 시골 이장 정도, 비교적 큰 장원을 가진 영주는 대도시의 구청장 정도입니다. 영화 〈겨울왕국〉(2014)의 엘사가 무려 여왕으로 불리지만, 엘사가 다스리는 아렌델이라는 땅을 보면 그냥 딱 소규모 장원입니다. 잘 봐주면 강남구 압구정동 정도(?)입니다. _33~34쪽
프랑스혁명을 체계적으로 주도해 온 가장 강력한 두 세력은 지롱드파와 자코뱅파였습니다. 이 두 세력은 왕정 폐지와 공화정 실현이라는 목표에 대해서는 입장이 같았습니다. 하지만 루이 16세의 처형 문제를 두고 강하게 대립합니다. (중략) 의장석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기준으로, 부유한 계층을 대표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는 지롱드파가 오른쪽, 서민 계층을 대신하고 대대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자코뱅파가 왼쪽에 앉았습니다. 이때부터 느리고 온건한 변화를 원하는 보수 세력은 우파, 빠르고 과감한 개혁을 원하는 진보 세력은 좌파로 불리게 됩니다. _69~70쪽
'나는 늘 보수지만 복지 문제에 한해서는 좌파에 가깝다'라고 말하는 우리나라 정치인이 실제로 있습니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우리 사회 다른 분야의 변화에는 몹시 신중하게 접근하는 보수가 맞다. 하지만 경제, 특히 복지 문제에 관한 한 신속하고 과감한 국가 차원의 개입과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나를 좌파라고 볼 수도 있다. 스웨덴 쫌 괜찮아 보인다.” 이런 뜻입니다. 이 정치인은 본인 말 그대로라면 보수이면서 좌파입니다. _81~82쪽
“보수는 현재를 '과거의 정점'으로 보고, 진보는 현재를 '미래의 출발점'으로 본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니스벳의 분석에서 비롯한) 이 한 문장이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가장 잘 함축하고 있습니다. 보수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눈앞의 현실에 주목합니다. 진보는 현재로부터 시작하여 곧 다가올 미래에 주목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을 현재에 기대도록 만들지만,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사람은 변화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이런 곳이다'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보수, '세상은 이런 곳이어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진보입니다. _94쪽
배트맨은 언제나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는 고담시의 영웅입니다. 조커가 인간의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본성을 드러내려고 할 때마다 배트맨이 도덕적 원칙과 힘으로 이를 막아섭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고담시 시민들이 도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습니다. 도덕적 리더십, 공동체를 위한 자기희생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보수는 사회에 극단적인 위협이 있다면 필요 이상의 강력한 조치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종 법의 경계를 넘어서는 배트맨의 행동 역시 고담시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정당화됩니다. _97~98쪽
결론적으로, 빈부와 선악은 '무조건' 같이 가는 게 아닙니다. 선과 악, 개인의 도덕성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완전히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유한 사람도 선하거나 악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도 선하거나 악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의 부도 그것 자체로 비난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부자라는 것 때문에 막연히 존중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존중받을 일을 했을 때 존중하면 됩니다. 가난 속에서도 훌륭한 도덕성을 유지하는 사람, 부유함 속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한 사람 속에 있는 어떤 본질이 반대의 본질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합니다. _165쪽
부모가 되면서 자신만의 꿈을 잃어버리고 삶의 목표가 자식이 되어 버린 부모. 자기가 못했던 걸 자식이 대신 이뤄 주길 바라는 부모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큰 문제입니다. 현실에서는 운, 환경, 출신배경 등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사회는 개인에게 너무 높은 기대치를 부여합니다. 실패가 곧 개인의 무능력과 나태함으로 귀결됩니다. 이런 인식은 개인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불안을 불러일으킵니다. '나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가?' '나는 충분히 능력이 있는가?' 같은 질문들이 쉴 새 없이 사람을 괴롭힙니다. 끊임없이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개인의 자존감에도 자꾸 조건이 달립니다. 성공하지 못하면, 즉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선에 도달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가치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_212쪽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상대로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자들이 문제입니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나쁜 의도를 갖고 생산된 가짜뉴스를 여기저기 퍼 나르게 됩니다. 어디서 들은 가짜뉴스가 썩 그럴싸해 보이고 이걸 남들은 아직 모를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여러 게시판과 카카오톡에 가짜뉴스로 불을 지릅니다. 나만의 멍청함,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멍청함을 뽐내는 반지성주의가 요새 아주 힙합니다. 이것도 개념적으로 정립된 용어가 있습니다. 'meta‐stupidity(메타 우매성)'라고 합니다. 너무 멍청해서 멍청함 자체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감 있게 계속 멍청한 상태의 멍청함입니다. _256쪽
독일의 국가이미지는 메르켈 덕분에 말도 못하게 좋아졌습니다. 전 유럽 경제의 핵으로,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포용성으로, 소수인종과 사회적약자에 대한 관대함으로, 메르켈 집권기의 독일은 존경받는 국가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저명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메르켈이 있는 지금의 독일이 이 세상 사람들이 본 최고의 독일”이라고 극찬했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메르켈 시대의 정치는 사납지 않았다. 시민들의 생활은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넉넉했다'라고 기억합니다. 극단을 배제한 합리적 타협의 정치, 진보의 어젠다(agenda)까지 너른 품에 아우르는 포용과 융합의 정치, 그것이 독일 국민들이 16년 동안 열광한 앙겔라 메르켈의 정치였습니다. _277~278쪽
오바마의 결론은 두려움이나 걱정이 아닌 희망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오늘 밤 무대에서 내려가지만 내가 (대통령직을) 시작했을 때보다 이 나라에 대해 더 희망적”이라고 밝혔습니다. 희망의 근거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는 “이기적이지 않고, 창의적이고, 애국적인 세대가 오고 있습니다. 공평하고 정의롭고 포용적인 미국을 믿는 세대입니다”라며, “여러분은 끊임없는 변화가 미국의 상징임을 알고 있고,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해낼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오바마는 그러면서 “변화를 가져올 나의 능력을 믿지 말고, 여러분 스스로의 능력을 믿으라”라고 충고했습니다. (중략) 끝까지 '희망과 변화'를 외친 참으로 멋지고 의로운 진보, 미합중국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이렇게 역사의 무대를 떠났습니다. _296~297쪽
빛의 혁명의 주역이 된 우리 시민들부터 앞으로는 특정인의 '이미지'에 끌려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오직 권력욕만 가득 찬 정당에 표를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런 정당이 도무지 존재하지 못하도록 지금의 20~30대가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을 완전히 바꿀 것입니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여러 정당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국회에서 정책으로 대결하는 것. 건설적 경쟁과 협력을 통해 선진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리고 다듬어 가는 것. 우리 시민들의 의지와 수준에 비추어 보면 결코 과한 희망이 아닙니다. _3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