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異世界)와 이 세계를 넘나드는 모험의 시,
시를 향해 돌진하는 바보 기사
서호준의 세 번째 신작 시집 『그해 여름 문어 모자를 다시 쓰다』
“차갑고 발랄한” 시로 “문학을 멀리까지 가져가 보는 모험”을 포기하지 않는 서호준 시인의 『그해 여름 문어 모자를 다시 쓰다』가 열림원 시인선 시리즈 ‘시-LIM’ 두 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전작 『소규모 팬클럽』, 『엔터 더 드래곤』에서 게임 서사와 언어를 시로 호출하며 “변방적 활력”을 발생시킨 그는 이번에는 더욱 정교한 말의 변칙들로 모험을 감행한다. 이번 신작 시집 『그해 여름 문어 모자를 다시 쓰다』는 서호준 시인이 정해진 경로를 거부하고 더 많은 낯선 것들과 접속하며 시의 지형을 확장한 모험 일지이다.
시집 곳곳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어 모자”는 이 시집의 퀘스트 헬멧이다. 우스꽝스럽고, 다소 과장되어 있으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는 형태. 문어 모자를 다시 쓰는 순간, RPG 게임의 숨겨진 맵처럼 메타버스, 이세계물, 게임 서사, 비정규 노동, 번역되지 않는 감정들이 겹겹이 얽혀 나타난다. 익숙한 일상은 갑자기 낯설어지고, 엉뚱한 상상은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무심하고 유쾌한 문장 안에는 ‘하루 더 버티기 위해 쓰는 시’, ‘삶의 부조리를 견디는 말의 힘’이 깃들어 있다. 서호준 시인의 시는 독자를 ‘읽는 자’에서 ‘행위하는 자’, 즉 ‘모험가’로 변화시킨다. 읽고 나면 쓰고 싶게 만드는 시, 기묘한 현실과 현실적인 기묘함을 바라보게 하는 시, 그리고 죽음을 사유하고 체험하게 만드는 시. 만약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이세계물”(「타일, 개, 맘무게」)처럼 느껴진다면, 이곳이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라는 “외부자의 언어”를 통해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시 모험을 시작한다.
“하루 더 살기 위하여 시를 향해 돌진하는 바보 기사.
쓰기의 동맹, 오늘은 서호준과 함께 더 먼 곳으로 간다.”
—송승언(시인)
“죽고 싶다고 말하는 건
우리의 스포츠잖아.”
내일 죽을 사람의 말투로
오늘을 쓰는 유머 감각
이 시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퀘스트 아이템, “문어 모자”는 단지 장난스러운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살기 위해 쓰는’ 행위의 헬멧이며, 현실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갑옷이다. 이 모자를 쓰고 서호준의 화자는 죽지 못한 자(반-존재)들의 이세계를 유영한다. 현실의 규칙과 시의 규칙, 문법과 서사, 정체성과 어조가 고르지 않은 페이스로 흔들리며 중첩되는 문장들. 그것은 일종의 버그처럼 생겨났다가 일시적 광휘를 발하고, 곧 다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는 건 어떤 감정도, 명확한 개념도 아닌, 그냥 어딘가를 떠도는 “동맹”의 가능성이다.
“말을 전하는 데에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잊는 데에는 온 세상이 필요하고”
무력한 존재들의 연대
이름 없는 감정의 교환, 말없는 동행
『그해 여름 문어 모자를 다시 쓰다』는 바로 그 ‘포털’로 기능한다. 이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정해진 의미를 해석하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세계의 규칙을 스스로 다시 짜는 참여자, 곧 모험가가 되는 일이다. 게임, 애니메이션, 이세계물, 인디 감성, 소규모 팬덤의 언어로 이루어진 이 시집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변주하고 돌파하기 위한 시적 장비다. 시인과 함께 낯선 맵을 돌파하며, 독자 역시 “하루 더 살기 위하여 시를 향해 돌진하는 바보 기사”가 된다. 이 시집의 핵심적인 상징인 “문어 모자”를 쓰고 출발하자. 우스꽝스럽고 이상하며, 어딘가 눈물이 나는 형태. 그것을 다시 쓴다는 것은 다시 출발하겠다는 의지이자, 다시 살아 보겠다는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