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점점 중독되고 있다
중독에 취약한 뇌를 우리는 보호할 의무가 있다”
내 아이는 스마트폰에 중독된 걸까
정신건강의학과 여덟 명의 조언
요즘 부모들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라면 의사들은 단연 이것을 꼽는다. “아이가 스마트폰에 중독된 것 같아요.” 때로 이런 질문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하루에 10시간씩 하는데 중독이 아닐 수 있나요? 미디어 때문에 틱이 발생하기도 하나요? 지금이라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리 고민해도 또렷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 건 정말로 정답이 없어서다. 미디어 세상을 미리 겪어본 인류는 없다. 모두에게 처음이니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된 직관도 없다. 그러나 가장 믿을 만한 조언은 있다. 중독된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최신 연구를 검토하면서 지식을 쌓은 의사들의 조언이다.
이 책은 위와 같은 질문을 매일같이 받아온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여덟 명이 집필한 것이다. 이들이 소속된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의 ‘속마음 시리즈’는 그동안 부모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들을 다뤄왔다. 친구 없는 자녀들의 고민을 다룬 『아이들이 사회를 만날 때』, 학습 능력 향상법을 다룬 『공부하는 뇌, 성장하는 마음』에 이어 이번 『중독되는 아이들』에선 미디어 문제를 논한다.
간결하고도 단호한 의사들의 말은 믿음직하다. 모호한 서술로 자의적인 해석을 요하는 구절은 없다. 저자들은 명확하고도 구체적인 서술로 정보를 일상과 연결시킨다. 예컨대 ‘미디어를 최대한 멀리하는 게 좋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생후 18개월까지는 미디어 노출을 일절 금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루에 몇 시간 이상 게임을 하면 중독’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게임 중독은 시간보단 영향 면에서 따져봐야 할 개념으로, 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 가운데 무엇에 더 가까운지 연구 중’이라고 말한다. 답변들 사이사이에 소소한 팁들도 있다. 영상통화는 괜찮은지, 미디어를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할지, 사용 시간은 어떻게 모니터링하면 좋은지……. 책은 미디어의 모든 면을 아우르고 있다.
유아기에는 왜 미디어를 전면 금지해야 하나
뇌 발달에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
전반부에서는 아이들의 발달을 단계별로 조명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와 보내는 유아기부터 학교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학령기,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는 청소년기까지.
그중 유아기는 미디어 노출에 가장 조심스러워야 할 시기다. 이 시기 아이들의 뇌에선 ‘기초 공사’가 한창이다. 보고 듣고 만진 모든 것이 뉴런 사이를 이으며 시냅스를 형성한다. 식물의 가지치기를 떠올려보면 쉽다. 생후 2~3년까지 시냅스(가지)가 무작정 늘어났다가, 생후 6년쯤 되었을 땐 자주 사용된 시냅스(건강한 가지)만 남기면서 뇌의 효율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아기에 디지털 미디어를 많이 사용한다면 그와 관련된 시냅스가 많이 남는다. 그런데 미디어는 매우 직관적이고 단편적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기에 전두엽을 자극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활성을 떨어뜨린다. 전두엽이 인지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익히 들어 알 것이다. 사고력과 자기 조절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을 관장하는 영역이 미디어 때문에 방치된다면, 이 부분이 ‘잔가지’로 취급될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학령기엔 미디어가 학습에 영향을 미친다. 길고 복잡한 글 대신 짧고 단편적인 콘텐츠를 즐기다보니 문해력이 떨어진다. 섬뜩한 것은 문해력과 함께 공감 능력도 저하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읽기를 통해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며 타인을 이해해간다. 한편 짧게 토막 난 미디어 콘텐츠는 깊은 공감을 이끌기엔 불충분해 공감 능력이 점점 쇠퇴할 수 있다.
물론 미디어가 학습을 방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쇄물보다 미디어가 학습에 더 효과적인 조건도 분명 존재했다. 예컨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 이야기 텍스트를 학습시킬 때는 디지털 미디어가 더 효과적이었다. 더 근사한 것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인쇄물로는 읽기 학습이 어려운 난독증 아동이라도 디지털 기기가 제공하는 기능과 함께라면 텍스트를 완주할 수 있다. 텍스트를 음성으로 만들어주는 TTS나, 텍스트와 함께 이미지, 비디오, 오디오를 활용하는 멀티모달 학습 등이다. 영어에 한정된 이야기긴 하지만 난독증 친화적 글꼴(Dyslexic, OpenDyslexic 등)도 개발돼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청소년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이 시기 아이들의 뇌에선 또 한 번 대공사가 벌어진다. 편도체, 해마, 시상하부 등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폭발적으로 발달한다. 인지 기능을 맡는 전두엽도 한편에서 열심히 발달 중이지만 변연계의 속도를 따라잡긴 어렵다. 결과적으로 이성보다 감성의 힘이 더 센 불균형이 초래된다. 이것이 사춘기의 본질이다.
이성보다 감성의 힘이 더 강한 이때는 미디어를 조절하기도 쉽지 않다. 호기심이 강하고 충동성이 높은 데다, 멋진 모습으로 또래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대체로 미디어 조절을 힘들어한다고 해서, 과도한 미디어 사용을 청소년기의 특징쯤으로 치부하고 간과해선 안 된다. 어떤 청소년은 정신적 어려움과 사투하는 과정에서 미디어에 과도하게 의존하기도 한다. 외로움을 잊어보고자 SNS에 탐닉하거나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게임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미디어는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유일한 창구일 수 있다. 야단치거나 미디어를 금지하는 것보다는 그 수면 아래를 들여다보는 게 우선이다.
정서적 전염에 대한 우려
ADHD 치료제로 인정받은 기능성 게임
책은 후반부에서 더 구체적인 문제들로 나아간다. 아이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SNS부터 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한 게임 중독, 갈수록 더 복잡해지는 디지털 범죄까지.
그중 SNS는 이미 사회의 연장이 된 지 오래다. 일상의 즐거움을 나누고 또래와 교류하는 플랫폼에서 얼마나 심각한 일이 벌어질까 싶지만 실상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 예로 트위터에는 ‘#우울계’ 해시태그를 달고 활동하는 계정들이 있다. 자신의 우울감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계정들이다.
문제는 이런 교류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은 ‘정서적 전염’을 통해 남에게 옮아갈 수 있고, 이 현상은 SNS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난다. 우울한 사람끼리 모여 있다면 우울감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계정 특성상 자해나 자살을 자주 언급하는데 이는 곧 친숙함으로 이어진다. ‘우울계’에선 스스로를 해치고 싶다는 생각은 물론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다는 인증 사진, 자해나 자살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까지 공유된다. 그 속에서 청소년은 점차 자신의 고통이 평범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고, 실제로 자신을 해칠 수 있다.
게임은 어떨까. 게임을 많이 하는 아이를 두고 ‘중독자’라며 꾸짖긴 하지만, 과연 약물 중독처럼 심각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게임 중독은 실제로 학계에서 연구되고 있는 개념이다. 2013년에는 DSM에 ‘인터넷 게임 장애’가 조건부 진단으로 추가됐고, 2018년에는 ICD에 ‘게임 장애’가 공식 등재됐다.
여기서도 짚어봐야 할 것은 과도한 게임 사용의 기저에 정신적 어려움이 숨어 있진 않은가 하는 점이다. 게임 중독에 가장 취약한 질환은 단연 ADHD다. ADHD는 질환 특성상 자극 추구와 보상 민감성이 높아, 자극 및 보상이 무수하게 이뤄지는 게임 속 세상에 더 깊이 빠져든다. 이 문제로 진료실을 찾는 학생 대부분이 ADHD만 치료해도 중독 문제가 함께 줄곤 한다. 그러나 게임이 이들에게 위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단순 오락이 아닌 학습과 감정 조절 등을 목표로 삼는 ‘기능성 게임’은 ADHD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엔데버Rx’라는 기능성 게임은 ADHD 치료제로서 FDA의 승인을 받기도 했다.
SNS와 게임 이상으로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디지털 범죄다. 기껏해야 피싱 사기 정도만 접해봤을 부모 세대에게 뉴스 속 이야기는 낯설기만 하다. 아이들이 온라인 도박에 참여하다니. 모르는 사람에게 불건전한 요구를 당하거나, 성적인 영상에 얼굴이 합성돼 고통받는다니…….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영역에서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무기력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이 책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는 방법 또한 수록했다. 어떤 법률로 처벌할 수 있는지, 증거는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 등을 포함해 유형별로 대응하는 방법을 상세히 다루었다. 아이가 그루밍 범죄를 당했는데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면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정황 증거만으로도 사건 접수가 가능하고, 증거가 삭제됐다면 포렌식도 할 수 있으니 저자들의 구체적인 조언을 참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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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의 상담 및 치료 경험과 뇌 연구를 기반으로 쓰인 이 책은 자녀들의 사례를 유형별, 문제별로 구체적으로 알려줘 실용성이 뛰어나다. 저자들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미디어 사용 규칙이다. 이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식사 때나 잠자리에선 미디어 사용을 금해야 한다. 가족 간의 감정 교류나 신체 발달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둘째, 부모부터 사용을 줄여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무작정 통제하는 것보다 충분히 사랑해주는 게 우선이다. 미디어 중독은 정신적 어려움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아 정신적으로 건강하면 애초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낮고, 만에 하나 생기더라도 바로잡기 더 쉽다.
아이들의 뇌는 쉽게 변한다. 미디어에 영향을 더 쉽게 받지만, 그만큼 회복도 더 빠르게 한다. 늦었다며 단념하지 말고 하나라도 시도해보자. 변화는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이를테면 가족 모두의 스크린 타임을 확인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