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원장: 뭐죠? 어떻게 된 거죠?
아롱이 보호자: 회사 밖에서 키우는데 뭘 주워 먹은 건지 아침에 가보니까 낑낑대면서 이러고 있었어요.
어찌 이걸 삼킬 수 있단 말인가? 제 아무리 동물이라지만, 아무리 먹성 좋은 견종이라지만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큰 이물질이었다. 아연했고, 암담했고, 또 비참했다. 철사를 조금만 건들어도 강아지는 침을 질질 흘리며 마구 비명을 질러댔고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쳤다.
나: 아가 미안하다. 내가 도와줄게.
철사를 잡아당겨 봤다. 1~2센티 나오고 뭔가 걸려있어 더는 나오지 않았고 강아지는 더 자지러졌다. 이젠 좀 밀어 넣어 봤다. 들어가지도 않았다. 진퇴양난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독백했다. 강아지는 힘겨워했지만 나는 그 행동을 수차례 반복했다. 목에 걸려있을까? 대체 뭐지 이 물체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 일단 더 들어가지 않게 철사를 구부릴게요.
나는 순식간에 추억의 아침드라마 ‘한지붕 세 가족’의 순돌이 아빠가 되어야 했다. 몸서리치는 강아지를 돕고 싶어서 급히 다용도실에서 허우적거렸고 우당탕 물건들이 제멋대로 나뒹굴었다. 펜치 2개를 용케도 찾아서 진료실로 내달렸다. 사실 다용도실에서 진료실까지 지척이긴 하다. 큰 걸음으로 딱 한걸음이다. 15평 병원에서 뭘 더 바라겠나.
_ 철사를 삼킨 개 中
나: 지금 어디가 안 좋죠?
여자: 지병이 있어요. 췌장염이 온 지 오래됐어요. 밥을 안 먹고 힘이 없어요.
힘 빠지는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앞서 김쌤이 말한 지병이 바로 ‘췌장염’이었다.
나: 췌장염을 봐 드리면 되는 건가요?
여자: 제가 최근에 형편이 안 좋아져서 그냥 주사라도 맞힐까 하고 왔는데.
나: 그럼 신체검사 하고 주사라도 놔드릴까요?
여자: 혹시 췌장염 검사 얼마예요?
나: *** 원입니다.
여자: 음! 네! 그럼 그거라도 해주세요.
나는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했다. 복통이 현저했으며 체온은 40.5도(개 정상체온 38.5~39.0도)에 육박했다. 곧이어 검사를 위해 채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 푸들은 식욕부진에 고열이라서 수액을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돈을 떠나서 최소한의 치료는 해줘야 옳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나: 아이가 힘도 없으니 피 뽑으면서 수액을 같이 맞출까요? 채혈하려면 정맥 혈관을 어차피 잡아야 하니까요.
여자: 그건 또 얼마인가요?
나: *만원 정도 합니다.
여자:(골똘히 고민하더니) 네! 그것까지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주세요.
푸들은 털 관리가 엉망이었고 특히, 우측 앞발에는 엉킨 털이 무성했다. 그래서 시야 확보가 안 되었고 혈관을 찾기 위해 면도기로 앞발 피부 털을 조금 밀었다. 그러나 이것이 뭐라고 양해를 안 구했던 것이 크나큰 패착이었다. 여자는 순식간에 노발대발하며 도발했다.
여자: 거기를 왜 밀어요! 안 밀고도 거기는 잘하던데!!
이미 선을 넘어버린 나였다. 한심한 자승자박 후회가 가득했다.
나: 피부가 잘 보여야 혈관을 잡을 거 아닙니까? 털을 안 밀고 하는 게 절대 위생적으로 좋은 게 아닙니다!
털을 가르마 타서 모세의 기적 모드로 혈관을 잡아도 가능하지만, 원칙적으로 털이 너무 많은 경우 멸균을 위해 제모(털 제거)를 하는 것이 좋다. 뇌수술도 털을 안 밀고 장발로 하지 그러냐고 고객에게 되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_ 만성 췌장염 푸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