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후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는 사회 구성원 전체를 ‘시간 부족’ 상황으로 내몰았다. 이제는 우리 삶의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연장 근로나 야간 노동, 교대제 노동은 물론 연차휴가나 유급병가 같은 문제에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특히 연차휴가나 돌봄휴가 같은 휴식의 정당한 보장은 제도 도입의 지체로 논의되지 않고 있고, 퇴근 이후 일과 연결되지 않을 권리 역시 중요한 과제인데도 관심 밖이다. 더이상 무한 노동이 이어지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성까지 빼앗았던 산업혁명 초기 ‘공장법’ 시대로부터 이어진 ‘일하는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다.
#9쪽_들어가는 말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면 생산성이 향상되고, 조직 구성원들의 동기를 유발한다는 긍정적 효과에 관한 연구들은 2000년대 이후 경험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한국의 몇몇 연구나 유사 연구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이 일과 삶 모두에 만족을 주거나,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고, 여성 고용에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킨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5년 주5일제 도입 이후 그 효과에 관한 분석 연구에서도 10인 이상 근무하는 제조업 노동자의 연간 실질 부가가치가 1.5% 향상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23쪽_1장 두려움에서 벗어나기-왜 주4일제인가
한국은 1953년 하루 8시간, 일주일 48시간 노동을 규정한 근로기준법을 제정한 이후 세 차례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졌다. 그러나 한국은 ILO의 22개나 되는 노동시간 협약 가운데 주40시간(47호, 1935) 협약만 비준한 상태다. ILO, EU 등 국제기구의 일주일 4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한국(17.5%)은 EU 평균(7.2%)의 약 2배 이상이고, OECD 주요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실제로 2023년 김종진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연차휴가를 적게 사용(평균 8.6일, 소진율 66.1%)하는 등 일과 삶의 균형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41쪽_2장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와 과정
우선, 유럽 주요 국가들의 주4일제는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하느냐, 유지하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전자는 프랑스처럼 주당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출근하는 날을 노사 협의를 통해 선택하게 하는 형태다. 후자는 벨기에처럼 법정노동시간을 유지하되 출근하는 날을 노동자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형태다. 아이슬란드와 스페인의 실험도 있는데, 이들 국가는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게 아니라 특정 부문(중소기업)이나 사업장(풀타임 노동자 대상)에서 노사나 개인의 선택을 통해 주4일제를 시행하는 방식이었다. 이 사례는 법률 개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정 기간(아이슬란드 4년, 스페인 3년) 동안 시범사업 형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되 국가가 임금 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59~60쪽_3장 세계 각국의 주4일제 실험들
주4일제 시범사업 참여자들은 전국 평균에 비해 젊고 학력이 높았으며 여성 노동자가 많았다. 노동자 대부분은 주40시간 근로계약을 맺었지만(80%), 컨설팅 및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근무하고 있었다. 실험 이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36.5시간으로 12% 감소(주40시간 이상 비율 79%→20%)하는 등 실노동시간이 줄어들었다. 또 노동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상태를 자가평가한 결과 이 역시 크게 개선되었다. 정신건강 영역을 ‘매우 좋음’ 또는 ‘좋음’으로 분류한 직원 비율이 15%에서 30%로 두 배 증가했고, 신체적 건강 영역은 20%에서 27%로 개선되었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도 11분 늘었다. 결과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고 응답한 비율은 46%에서 17%로 감소했다.
#85쪽_4장 해외 민간부문의 주4일제 실험들
한국에서도 주4일, 격주4일, 주4.5일 등 다양한 근무 형태가 논의되고 있다. 부분 주4일제나 주4.5일제는 언론사(경향신문, 한겨레, 중앙일보)와 출판사(금성출판사, 보리출판사), 제조업(코멕스, 코아드), 유통업(마녀공장, 에이피알) 등에서 이미 시행하는 곳들이 있다. 한국의 주4일제는 산업과 업종은 물론 기업 규모와 시행 방식에 따라 형태가 상이한데, SK텔레콤, 카카오, CJ, 대명노소벨, 포스코, 우아한형제들, 세브란스병원과 같은 대기업, SBI저축은행이나 휴넷 같은 중견기업, 비영리법인이나 NGO 단체 같은 소규모 조직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해외 각국의 주4일제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한국의 주4일제도 주40시간의 법정노동시간 유지 형태와 주32시간의 노동시간 단축 형태로 나뉜다. 또 완전 주4일제로 운영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격주나 월 1회 시행하는 방식의 부분 주4일제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105~106쪽_5장 한국의 주4일제 실험과 추진 과정
미국, 일본, 한국에서는 노동시간 단축형 주4일제보다는 노동시간 유지형 또는 압축 노동 형태의 주4일제가 도입되고 있다. 한국은 서울시, 경기도, 충청남도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육아 돌봄’ 대상자에 한한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4일은 출근하고 1일은 재택근무를 하도록 한 것이다. 일본도 유연 근로 형태의 주3일 휴무제를 국가 및 지방 공무원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해외 몇몇 국가의 사례를 보면 주4일제와 관련된 법률 제정은 주로 의회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방제 국가의 경우 각 주나 지역 의회에서 노동계약에 대한 직접 규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중앙과 지방정부의 주4일제 법제화 추진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132쪽_6장 주4일제 법제도화 추진 과제와 숙제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산업화 이후 그 어떤 나라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919년 국제노동기구의 1호 협약은 ‘하루 8시간 노동’이었고, 유럽연합은 1993년 ‘건강 및 안전 조치의 일환’으로 ‘주35시간제’를 채택했다. 이제는 일의 ‘필요 영역’과 ‘자유 영역’을 구분하고 노동체제를 전환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터의 산업재해와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고, 일과 삶의 균형·성평등한 사회와 일터를 실현해야 한다. 또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주4일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158쪽_부록3 〈한국 주4일제네트워크 출범 선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