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일기'와 '삶의 궤적' 병행 추적으로
쉽게 이해하는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철학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저술을 요약 설명하는 기존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심지어 철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에게도 그는 수수께끼다. 분석철학자로 분류되지만 본인은 분석철학을 좋아하지 않았고, 평생 저술에 몰두했다지만 생전에 낸 책은 팸플릿에 가까운 소책자 한 권(『논리-철학논고』, 이하 『논고』)뿐이다. 유작으로 출간된 책들도 사실은 그가 남긴 유고와 일기들을 제자들이 석연치 않은 방식으로 편집해 낸 것들이다. 심지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철학적 탐구』(이하 『탐구』)에 대해서조차 편집과 체제의 타당성에서부터 내용에 대한 해석에 이르기까지 갑론을박이 무성할 뿐 확정된 답이 없다. 그를 알고자 하는 교양인에게 이러한 상황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절망으로 다가온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안내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안내서 간 견해 차이가 아니라 그것들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다. 안내서들은 예외 없이 그의 『논고』와 『탐구』를 요약 설명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두 작품이 그의 전기와 후기 사상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저 두 작품에 대한 요약 설명을 따라가면서 그게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맥락을 알기 어렵다. 그냥 그가 중요한 철학자라니 그리고 저 두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라니 요약을 통해서나마 섭렵한 셈 치자고 자위하며 읽어 가지만, 읽고 난 다음에는 곧 내용을 잊게 된다. 자신의 삶과 그의 철학이 대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그의 철학이 난해해서만이 아니라 접근 방식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런 식으로는 역시 그는 어려운 철학자이고 그의 사상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해 별로 와닿는 게 없다는 느낌만을 주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저런 식으로 철학을 한 사람이 아니다.
종래의 비트겐슈타인 안내서에서 간과되었던
'일기'의 현장성과 '삶의 궤적'을 생생하게 복원하다!
비트겐슈타인은 포연이 자욱한 살육의 전쟁터, 피오르의 외딴 오두막, 아일랜드 해변 등 험지로 부단히 자신을 몰아세우며 극한의 상황에서 철학을 했다. 유럽 최고의 가정에서 성장한 데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재벌 2세인 그는 유산도, 그리고 지식인이면 누구나 선망하는 케임브리지대 교수직도 모두 팽개치고 청빈한 구도자의 길을 고집했다. 그 길을 걸으며 그는 평생에 걸쳐 일기를 비롯한 저술 활동에 몰두했고, 이것이 『논고』, 『탐구』 등을 위시해 여러 책으로 편집되어 나왔다. 일기라는 장르가 암시하듯 그의 철학은 그의 삶과 밀착되어 있다. 그에 대한 종래의 안내서는 바로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을 빠뜨리고 있는 셈이다.
『구도자의 일기』에서 이승종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그가 살았던 삶의 궤적, 그리고 그가 평생에 걸쳐 써 내려간 일기를 병행 추적함으로써 이해하고자 한다. 이 교수는 이것이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비트겐슈타인을 이해하려면 그의 삶을 일기에 적힌 생각들과 함께 간접 체험하는 것만한 방법이 없다. 그가 자신을 어떤 상황에 내던져 거기서 어떤 생각을 길어 올렸는지를 따라가 보자는 것이다.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았던 철학자인 만큼 비트겐슈타인의 일기 역시 아주 흥미진진하다. 거기에서 편집되어 나온 그의 책들이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게 읽히는 까닭은 편집의 과정에서 일기가 지녔던 현장성이 거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현장성을 복원한다면 그의 일기는 그리 어렵게 읽히지 않는다. 그랬을 때 그가 살았던 삶과 철학은 주목해야 할 하나의 값진 모범으로서 독자에게 생생히 각인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윤리와 종교'였다.
간과되었던 주제를 바탕으로 세심하게 풀어낸 성찰들
『구도자의 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구도자의 삶”, 2부는 “윤리”, 3부는 “종교적 믿음”이다. 1부는 비트겐슈타인의 삶의 궤적을 좇아 그로부터 그가 어떻게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길어 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해 낸다. 그의 저술의 상당수가 일기 형태로 작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삶과 철학은 다른 어떤 철학자들의 경우보다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삶을 완정(完整)한 연대기나 전기의 형태로 짚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유가 시대와 현장에 어떻게 접맥되어 있는지를 체험하는 것이 『구도자의 일기』 1부의 목적이다. 그 때문에 1부 1장 “삶으로부터”는 시대를 배경으로, 2장 “구도자의 길”은 삶의 현장을 배경으로 그의 치열했던 사유의 생성 과정을 들여다본다. 3장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그의 철학을 다양한 각도에서 심화하고 비판하고 계승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의 철학에서 발견되는 미진한 점들과 오류를 들춰내 비판하기도 하고, 그가 던진 사유의 싹을 나름의 방식으로 틔워 보기도 하고, 그와 대척점에 있는 입장들에 마주 세워 양자의 차별성을 첨예하게 부각시키기도 한다. 1부의 2장과 3장은 대우 Cross Talk 특별강좌의 원고를 발전시킨 것인데 각 장 말미에 이 강좌 중 청중들과 주고받은 토론을 수록했다.
『구도자의 일기』 2부에서는 부와 명예를 마다하고 스스로 택한 고독하고 신산(辛酸)했던 삶에서 형성된 윤리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성찰을 그의 참전 일기와 그로부터 비롯된 『논고』, 슐릭(Moritz Schlick)과의 토론, 「윤리학에 대한 강의」 원고 등을 중심으로 조명해 본다. 2부는 저 텍스트들을 가지고 연세대에서 행한 강의에 기초하는데 강의 중에 학생들과 주고받은 토론을 수록하였다. 아울러 2부의 초고를 주제로 한 한국사회윤리학회에서의 논평, 답론, 토론을 수록하여 독자들이 동시대 학자들과의 학술 교류 현황을 직접 고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이 책의 논지가 보다 명료해지고, 논의가 깊이를 확보하고, 시각이 입체성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구도자의 일기』 3부는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적 믿음에 대한 강의」를 주 교재로 이승종 교수가 연세대에서 행한 강의에 기초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대에서 행한 저 강의에서 종교언어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일상적인 예들을 들어가며 비교적 상세히 개진하고 있으며, 그가 수강생들과 주고받은 토론도 유익하다. 그의 강의를 텍스트로 연세대에서 이승종 교수가 선보이는 강의는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을 최대한 풀어서 해명하고 이에 대한 수강생의 열띤 참여와 토론이 잇따르고 있는데, 독자들에게는 케임브리지대 강의실에서의 토론과 연세대 강의실에서의 토론을 비교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3부의 일부를 요약한 이 교수의 글과 이에 대한 강언덕 신부의 논의를 수록하였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이면서도 경시되어 왔던 윤리와 종교에 대한 그의 성찰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