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기를 쓴 건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흔적 없이 사라진 하루들이 쌓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됐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었다. 인쇄가 잘못된 책처럼 인생의 페이지가 듬성듬성 비어 버린 기분이었다.
그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일기를 쓰자,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자,
기록이 다시 기억이 될 수 있도록.
(본문 16쪽)
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비싸진 않지만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며 얼마 있지
않은 돈을 낭비하듯,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트위터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살 수
도 없는 물건들을 검색하면서 얼마 있지 않은 시간을 낭비한다.
오늘 내가 트위터 피드를 끊임없이 새로고침하고, 유튜브에서 진공관 앰프 리뷰를 찾아보고,
온라인 서점과 레코드점을 뒤지면서 당장 살 돈도 없는 책과 레코드 들을 장바구니에 꾸역꾸역 담으며 하루를 보낸 것처럼.
(본문 18쪽)
중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지금 내 나이쯤이면 내가 밴드를 만들고 싶다고 《벼룩시장》에 낸광고를 보고 모인 친구들과 함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센세이셔널한 데뷔 앨범을 내고, 나쁘지 않지만 첫 번째 앨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두 번째 앨범을 내며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리다가, 음반사와의 계약 때문에 아무리 좋게 말해도 망작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세 번째 앨범을 내고,
술과 사랑과 다른 악마들이 낀 추문 끝에 해체를 선언한 후,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며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동안
가끔 쓰고 부른 노래들을 묶은 거의 기타 한 대의 연주가 전부인 느리고 사색적인 솔로 앨범을 한두 장 내고, 어쩌다 다른 밴드들의
녹음이나 공연에 깜짝 등장하기도 하면서 세월을 보내다, 뾰족하던 구석들이 어느덧 둥글어진 조금쯤 늙고 지친 멤버들과 다시 뭉쳐 어떻게 봐도
명반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오래된 팬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한두 곡쯤은 제법 감동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네 번째 앨범을 내고, 소소한 전국 투어를 돌고,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다음, 어떤 야심도 조급함도 시기심도 없는 마음의 상태로
강원도 어디쯤에 있는 작은 펜션을 스튜디오 삼아 멤버들과 함께 숙식하면서 지금까지의 음악과는 다르고 세상 어떤 음악과도 다른 다섯 번째 앨범을
만들고, 비평가들로부터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지만 상업적으로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어쩐지 조금은 후련한 마음으로 이제 정말 끝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 후,
포르투갈의 작은 해변 마을에서 커다란 개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마흔두 살쯤에는.
(본문 35~36쪽)
내 생각에, 글을 쓰는 사람이 카프카의 일기를 찾아 읽는 데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
장점은 글쓰기의 어려움, 차라리 불가능을 토로하는 하루하루의 카프카를 보며 공감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거다.
단점은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나까지 덩달아 우울해진다는 것. 좋아, 초반엔 아직 젊으니까 그렇다고 쳐. 근데 마흔 넘어서도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혹시 다른 사람들도 내 트위터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본문 40쪽)
문득 10년 전에 첫 책을 내던 때가 떠올랐다. ‘서서비행’이라는 제목과 표지, 비행에 빗대장 제목을 붙인 것까지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결국 그대로 나왔다. 제발 본인을 한 번만 믿어 달라는 담당 편집자의 말에 약간,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같은 기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나는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으로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이렇게 나올 운명인 모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내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도 책은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고,
일단 세상에 나온 책은 자신만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부디 나쁘지 않은 생이기를 바랄 수 있을 뿐.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표지 시안 이미지를 보여 주며 “이게 아빠 책이야. 어떨 것 같아,
재밌을 것 같아?” 물으니 나윤이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응, 재밌을 것 같아.”
(본문 69쪽)
그로부터 석 달 후에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된 안네와 가족들은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이듬해 안네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다. 전쟁의 끝을 보지도, ‘은신처’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지도 못하고. 사후에 출판된 일기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지만 안네의 소망이 이루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두 달이 넘었다. 그런 생각들은 제주도를 향하는 비행기에 앉아 있는 내게 일종의 죄책감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황급히 눈을 감았다.
(본문 80~81쪽)
언제나처럼 정지돈과 내가, 글을 잘 써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다고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 힘들어질 뿐이다,
같은 이야기를 조금 과장을 섞어 징징대며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자 시인 겸 평론가인 강보원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니, 전에도 말했지만 여러분은 잘 쓰기라도 해야 된다니까요. 생각해 봐요, 못 쓰면 어떡할 건데요?”
그러게, 못 쓰면 어쩌지…. 우리가 글까지 못 쓰면 정말 답이 없는 거 아닌가….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늘 그런 것처럼, 했어야 했던 말은
뒤늦게 떠올랐다. 그 자리에 없던 우리의 친구 오한기는 한국에서 가장 저주받은 걸작(‘가장’이 ‘저주’를 수식하는
지 ‘걸작’을 수식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음), 시와 일기와 꿈이 뒤섞인 아름다운 소설『홍학이 된 사나이』의 5월 18일 일기를 이렇게 썼다.
잘 쓰지 않아도 걸작이 될 수 있어.
(본문 216~217쪽)
그런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야심 없이 글을 쓰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쓰고 있는 글에 다소 의아할 정도로(사람들이 “당신이 쓰는 글에는 그만한 공력을 들일 가치가 없어”라고 말할 정도로)
집착하며 그 때문에 종종 길을 잃는 사람이. 글을 쓸 수 없어 덜컥 겁을 먹고 벌벌 떨다가 바짝 뒤를 쫓는 마감에 밀려 겨우 원고를 넘기고,
또 그런 일을 반복하는 사람이. 브라이언 딜런은 그런 사람이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딜런은 말한다. “에세이란 ‘평생을 작가로 살면서
도무지 한 가지 과제를 위해선 살지 못하는 데 대한 핑계’는 아닐까? 에세이가 그 핑계가 되어 주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일기는 내가 아는 최고의 핑계다.
(본문 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