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공일오. 비둘기와 고양이가 벌레에 물려요.”
‘벌레는 생물무기. 바이러스 테러다.’
한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국제? 아니면 초국적입니까?”
그녀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표정을 보니 모르는 듯했다.
“2026년에 벌어졌던 질병청 관리국 변이 바이러스 테러 사건. 기억해요?”
“김인만 관리국장 사망사건. 미제로 남았죠. 이번에도 바이러스입니까?” (20쪽)
비몽사몽간에 커뮤니티 알림 소리를 들은 리나는 침대에 누워 모니터를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홀로그램 모니터에 비치는 쥐들의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털이 듬성듬성 벗겨져 붉은 발진이 올라왔고 마치 몸 안에서 혈관이라도 터진 것처럼 피투성이로 죽어 있었다. 항문이나 입과 눈이 터진 쥐도 적지 않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독성 약품을 단체로 흡입했다고 한들 이런 모습으로 죽을 리 없었다. 6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바이러스 연구사인 리나가 8급 이하 공무원들이 나가서 현장 조사할 사안을 직접 보고 확인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지의 위험한 바이러스가 출현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25쪽)
혁진의 이미지가 사라짐과 동시에 현미경으로 확대한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길이가 다른 두 개의 가는 물체가 엉키더니 8자 모양을 만들었다가 떨어지곤 했다. 길이가 긴 건 중간에 두꺼운 부분이 있어 지렁이를 떠올렸다. 리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바이러스 두 개를 결합시킨다고?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야.” (37~38쪽)
“특별한데요, 이건.”
한은 그녀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양미간에 주름을 세웠다. 리나가 말을 이었다.
“그쪽에서 보여준 바이러스랑 같아요.”
한이 놀라서 잠시 멍해졌다. 리나가 한발 다가와 나직이 말했다.
“누가 일부러 하지 않고서야 향기도의 쥐들만 죽을 리 없겠죠. 이제 저게 어디서 나왔는지 찾아내시면 되겠네요.” (45쪽)
짧은 전자음이 서랍이 열렸음을 알리자, 리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확인할 수 있다. 2026 바이러스가 쥐에서 나온 바이러스와 같은지. 아니, 2026 바이러스 자체를 볼 수 있다. 리나는 그것만으로도 흥분됐다. 둘은 긴장한 표정으로 서랍이 앞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동시에 짧은 탄성을 질렀다.
“뭐예요, 이게?”
리나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진영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당황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서랍은 비어 있었다. (58쪽)
‘2026년, 사망한 전 질병청 관리국장 김인만에 스파이 의혹이 있었다. 바이러스 정보 유출 의문. 그는 자신이 만든 바이러스에 당했나? 은정욱 기자.’
…… “오랜만에 아버지 이름을 본 소감이 어때요?”
여성 요원의 목소리에 리나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질문이 이어졌다.
“배리나 씨, 정말 서랍의 샘플 안 가져갔어요?” (74쪽)
“9월 10일 새벽 4시에 바이오 샘플 센터 정전이었잖아요. 평소에 전기를 많이 쓰면서 정전돼도 다닐 수 있는 거.”
“단 몇 분 만에 이렇게 문제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거.”
“충전된 안드로이드.”
둘은 잠시 마주 보다가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111쪽)
“엎드려!”
한의 외침에 리나가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며 책장에 바짝 붙었다. 갈색 총알이 그녀를 스쳐 사무실 벽에 박혔다. 놀라서 돌아보니 태호가 소음기를 장착한 글록17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순간, 태호의 눈과 손가락 끝이 푸른빛을 냈다. 선우와 유상에게서 빛나던 그 불빛이었다. (122~123쪽)
“김린 씨.”
리나는 순식간에 머리로 피가 확 쏠렸다. 손으로 차 문을 거칠게 닫고 운전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 본명 말하면 뭐? 너도 나 협박하겠다는 거야? 나에 대해 이렇게 다 안다고 정보력 자랑이라도 하는 건가? 니들 그 잘난 정보망 갖고 여태 뭘 했는데? 고 김인만 국장 누명은 왜 못 벗겨?” (142쪽)
양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박스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이거다. 내일이면 대한민국을 바꿀 미지의 공포, V2026. 정욱은 박스를 배낭 안에 넣고 훌쩍 일어났다. 그러고는 하늘을 향해, 내려다보이는 서울을 향해 한국말로 냅다 소리를 질렀다.
“니들은 이제 끝났어!” (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