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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생명·우주

마조히즘에 대한 들뢰즈의 이해로부터 살펴본 <자연과 영성(靈性)의 일치 가능성>에 대하여


  • ISBN-13
    979-11-94513-09-4 (9316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그린비출판사 / (주)그린비출판사
  • 정가
    27,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04-25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조현수
  • 번역
    -
  • 메인주제어
    서양철학: 1800년부터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마조히즘 #들뢰즈 #프로이트 #탄트리즘 #서양철학: 1800년부터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52 * 224 mm, 368 Page

책소개

들뢰즈는 철학적인 주제가 될 것 같지 않은 마조히즘이라는 현상에 그의 철학 탐구활동의 전 기간을 거쳐 몇 편의 글을 남겼다. 이 글들 속에는 마조히즘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매우 놀라운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언뜻 철학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마조히즘에 이 위대한 철학자는 왜 그토록 집요하게 천착했을까? 

 

이 책은 들뢰즈의 마조히즘의 이해로부터 우리 인간 모두의 삶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비밀을 파헤친다. 프로이트와 들뢰즈, 다윈, 베르그송을 거쳐 탄트리즘으로 이어지는 흐름 끝에, 우리의 세속적인 성욕에는 자기변형을 지향하는 성스럽고 영성적인 열망이 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 성과 영성의 일치 가능성에 대하여 4

서장: 마조히즘을 통한 성의 참모습의 발견과 새로운 생명의 철학, 그리고 탄트리즘 15

 

I. 마조히즘이란 무엇인가? — 마조히즘의 증상론 87

‘엄마의 세 가지 이미지’라는 환상이 들려주는 이야기

1. 마조흐와 마조히즘: 마조흐의 소설들이 갖는 중요성 87

2. 마조흐의 세 여인 97

3. 마조흐의 환상과 바흐오펜의 시대 구분론의 일치 102

— 이 일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4. 엄마의 세 가지 이미지와 두 번째 엄마의 수수께끼 109

5. 두 번째 유형의 여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12

— 계약: 마조히즘적 관계를 성립시키는 본질적인 요건

6. 마조히즘의 ‘상징적 질서’: 엄마의 ‘상징적 기능’ 115

7. 마조히즘: 환상을 좇는 이상주의 126

8. 죄책감이라는 마조히스트 특유의 증상의 이유 129

9. 마조히즘의 가장 핵심적인 증상 132

10. 마조히즘의 자연주의 136

11. 마조히즘의 증상론에서 병인론으로 140

 

II. 마조히즘은 왜 발생하는가? — 마조히즘의 병인론 143

1. 마조히즘의 병인론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해 147

2. 마조히즘의 병인론에 대한 들뢰즈의 이해 179

 

III.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 199

 

IV. 생명과 무의식: 베르그송의 ‘생명의 약동’ 이론 249

1. 프로이트 대 베르그송 249

2. 지속과 무의식 257

3. 생동하는 무의식: 본능의 신비 275

4. 변성 의식상태의 의미 307

5. 생명에 대한 베르그송의 이해를 통해서 본 마조히즘의 의미 318

 

V. 탄트리즘: 성과 영성의 근본적인 일치 329

1. 내재성의 존재론과 종교의 초월주의의 화해 330

2. 탄트리즘의 우주론 355

참고문헌 365

본문인용

마조히즘이라는 예외적이고 기형적인 병적 현상에 집착하는 위대한 현대철학자의 모습, 이것은 단지 오늘날의 철학이 겪고 있는 내적 빈곤을, 우주의 운명이나 존재의 본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온통 과학에게 다 빼앗겨 버린 채, 염치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과거의 철인(哲人)들은 차마 입 밖에 꺼내 놓기를 힘들어했던 세속적이고 타락한 주제를 거침없이 터놓고 까밝히는 데서 자신의 구차한 연명을 위한 수단을 찾으려 하는 철학의 몰락한 현주소를 증언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마조히즘에 대한 들뢰즈의 연구가 어느 일탈적인 개인의 사소하고 병적인 성적 판타지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이 이상한 현상의 기저에 실은 생명과 우주 전체에 관한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우리 인간 모두의 삶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해 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

달을 수 있게 되었다. (16~17쪽)

 

 

쾌락을 추구하면 그에 대한 대가(결과)로 고통(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법이 세우는 원래의 논리이지만, 마조히스트는 선제적으로 고통(벌)을 먼저 자청해서 받음으로써 이 논리의 앞뒤 순서를 뒤집는다. 즉 먼저 자청해서 매질(거세를 대신하는 매질)의 고통(벌)을 당함으로써, 이 고통(벌)의 위협이 금지하고 있던 쾌락을 맛볼 수 있는 면죄부를 미리 얻게 되는 것이다. 마조히즘에서 나타나는 ‘고통과 쾌락의 연관’이 논리적 인과 관계(일치의 관계)가 아니라 시간적 선후관계인 것은, 즉 마조히스트가 그의 파트너와의 성적 관계에서 먼저 고통을 겪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쾌락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버지의 법을 뒤집는 마조히스트의 이와 같은 반전의 논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들뢰즈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183~184)

 

 

 

마조히즘에서 발견되는 초개인적인 환상이라는 문제는 우리를 한순간 이와 같은 신비로운 상념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우리는 곧 다시 냉철한 이성의 고개를 저으며 이런 물거품 같은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오려 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성의 눈으로 볼 때, 이 같은 생각들은 참으로 실소를 자아내는 병리적 망상으로 보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실로 들뢰즈는, 비록 단 한 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전부이긴 하지만, 이와 같은 초개인적인 환상이 개인의 우연적 삶을 넘어서는 초개인적인 운명으로 마조히스트를 이끌어 가는 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204)

 

마조히즘에 대한 들뢰즈의 논의가 실은 단지 마조히즘이라는 하나의 병리적 사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본성이 무엇인가라는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현대 유럽 철학의 근본적인 믿음을 뒤흔들 수 있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해를 모색하고 있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PSM에서 논의되고 있는 초개인적인 환상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초개인적인 환상의 존재와 연결되는 초개인적인 운명의 문제는 이 최초의 글이 가리키고 있는 무의식에 대한 융의 이론을 배경으로 할 때, 아직 석연치 않게 남아 있는 그 비밀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서서히 드러내게 된다. 마조히즘에 대한 들뢰즈의 모든 논의는 이 최초의 글에서 논의되고 있는 융의 이론과 연결될 때 비로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마조히즘에 대한 들뢰즈의 논의가 함축하고 있는 이 본래의 의미가 바로 베르그송의 생명의 약동 이론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임을 역시 이 최초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7~208)

 

우리는 바로 베르그송에게서 이러한 ‘프로이트의 부정’에 해당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 ‘프로이트 이후’의 이론들이 무의식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해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새로운 변주나 아류를 만들어 내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들인 반면, 베르그송은 바로 무의식이 무엇이냐는 이 출발점 자체에 있어서 프로이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해의 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단추가 어떻게 꿰어지느냐에 따라 나머지 다른 단추들의 운명이 달라지듯이, 무의식에 대한 베르그송의 새로운 이해는 또한 각종 정신병리적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제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잉태한다. (256)

 

마조히즘은 이 둘 사이에 이와 같은 대립과 반목의 관계가 아니라 실은 가장 근본적인 일치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조히즘을 통해 우리는 성과 영성의 완전한 일치라는 불가사의한 세계이해를 말해 온 동양의 오랜 신비주의인 탄트리즘(밀교密敎)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우주의 가장 근원적인 비밀이 바로 우리 자신의 성 속에 있으며, 그러므로 깨달음(해탈)의 완성은 바로 우리 자신의 성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해 온 탄트리즘의 ‘성-신비주의’, 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해 주는 마조히즘은 과연 이 탄트리즘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일까? (328)

 

그러므로 탄트리즘에 따르면 해탈은 성욕에 대한 부정과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욕에 대한 긍정에 의해서, 성욕의 참모습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성욕의 참모습이 가진 가능성의 올바른 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탄트라는 말한다. 피하려 하지 말라. 회피는 이미 불가능하다. 초월하기 위해서는 본능 그 자체를 사용하라. 싸우지 말라. 초월하기 위해서는 본능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성을 회피하려 하는 것, 본능을 회피하려 하는 것, 그것은 생 자체를 회피하려 하는 것이다 (339)

서평

성(性)스러운 것이 가장 성(聖)스러운 것이다

 

들뢰즈가 집착한 마조히즘의 비밀

우리의 성욕은 어떻게 영성이 되는가

 

위대한 현대철학자 들뢰즈는 왜 마조히즘이라는 예외적이고 기형적인 병적 현상에 집착했을까? 이것은 우주의 운명이나 존재의 본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온통 과학에게 빼앗겨 버린 철학의 내적 빈곤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염치를 알았던 과거의 철인(哲人)들은 차마 입 밖에 꺼내 놓을 수 없는 세속적이고 타락한 주제를 거침없이 까밝히는 데서, 철학의 구차한 연명을 위한 수단을 찾으려 했던 것일까?

 

마조히즘이라는 현상은 어떤 엽기적인 성향의 개인이 저지르게 되는 한갓 병리적이고 일탈적인 현상으로 이해되기 쉬워 보인다. 그런데 마조히즘의 진실에 대한 들뢰즈의 새로운 이해는 이 이상한 현상의 기저에 실은 생명과 우주 전체에 관한 놀라운 비밀,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해 내고 있다. 이 책을 끝까지 넘겨본다면 우리는 가장 세속적인 성욕 안에 자기변형을 지향하는 영성적인 열망이 내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과학의 진리를 넘어

성(性)을 통해 이야기하는 종교의 진리

 

영성을 추구하는 종교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세계의 진리에 대해 과학과는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진리가 우리에게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이성을 활용한 자신의 합리주의적인 세계이해 속에서 이와 같은 요구는 찾을 수 없다고 반박한다. 과학이 발견한 우주의 기원이나 시간과 공간의 구조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가장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것들로 보인다. 이보다 더 궁극적이거나 근본적인 진리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보통 우리는 우리 내면이 자신이라는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어떤 사적(私的)인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는 세계의 참모습을 인식하기 위해 내면으로 들어가는 의식의 전환을 요구하면서, 우리 내면에 세계의 객관적이고 근본적인 진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초개인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의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들뢰즈의 마조히즘 이해는 성sexuality에 대한 감각적 육욕의 모습을 넘어 초감각적인 영성의 차원으로, 가장 근원적인 자연성으로부터 우리를 영성적인 것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성애를 극복한 새로운 인간,

들뢰즈가 이해한 마조히즘

 

들뢰즈는 마조히즘의 원인과 고유한 증상에 대해 정신분석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설명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성을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육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해되는 성이란, 마치 식욕처럼 자신을 보존하려는 현상 유지를 지향한다. 그러나 들뢰즈에게 마조히즘은 엄마를 비롯한 여성을 성적으로 탐하는 자신의 남성적인 감각적 육욕 자체를 죄로서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마조히스트는 감각적 육욕을 극복하려는 또 다른 성향의 성이다.

 

들뢰즈의 마조히즘 이해는 우리 존재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성 속에,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모습’을 넘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려 하는 성향이 본래부터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조히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변형을 지향하는 ‘초월에의 성향’이 모든 인간의 성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들뢰즈는 마조히즘을 발생시키는 성의 운동이 지향하는 목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새로운 인간 (…) 성애(性愛)를 극복한 인간….” 이 책에서는 그 가능성을 무의식에 대한 칼 융의 이해와 베르그송의 ‘생명의 약동’ 이론을 통해 정당화한다.

 

 

성(性)과 성(聖)의 일치를 주장한 탄트리즘

들뢰즈의 마조히즘으로 재발견하다

 

많은 종교 가운데 흔히 ‘밀교’라고 불리는 불교나 힌두교의 탄트리즘은 우리의 시선을 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성(성욕)이란 종교적 과제의 장애물로서 인식된다. 그러나 탄트리즘은 오히려 성을 종교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며 필수적인 수단으로 인식한다. 성에 대한 탄트리즘의 긍정은 성(性)과 성(聖)이 실은 서로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같은 하나’라는 것을 말한다.

 

탄트리즘이 이해하는 이와 같은 성(性)의 모습은 놀랍게도 들뢰즈가 마조히즘을 통해서 발견한 성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탄트리즘은 그간 이단시되고 금기시되는 불온한 소수적 흐름이었다. 만약 들뢰즈가 옳다면, 그간 사람들의 금기시 아래 은밀한 비밀로서 숨죽이며 지내 와야 했던 사상이 어쩌면 세계의 참모습에 대한 가장 올바른 이해로서 재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조현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연세대, 성공회대, 서울과학기술대, 서울여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능인대학원대학교 명상심리학과에서 철학 담당 교수로 재직했다. 지은 책으로는 『성·생명·우주: 마조히즘에 대한 들뢰즈의 이해로부터 살펴본 〈자연과 영성(靈性)의 일치 가능성〉에 대하여』가 있으며, 그간 주로 베르그송과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과 관련하여 많은 논문을 발표해 왔다. 번역한 책으로는 자크 모노의 책 『우연과 필연』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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