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는 진지한 눈빛으로 진어(眞魚, 준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종복들을 시켜 적당히 배분한 진어를 토호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매년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움직이는 ‘진어’는 생선 중에 가장 맛있어서 으뜸이 되는 먹을거리다. 하지만 진어는 살이 통통해 맛은 일품이지만 가시가 많아서 먹기에는 다소 불편한 물고기다.
옛사람들은 관직에 나아가는 친지에게 진어를 선물하곤 했다. 가시가 온몸에 박혀 먹기 불편한 진어에 권력이나 재력이 맛있다고 넘치게 탐하면 목에 ‘가시’가 걸려 필시 낭패를 본다는 의미를 담아 충고한 것이었다.
101쪽
이교는 수군들 사이에 시비가 붙으면 무조건 옥에 가두고 하루 동안 쫄쫄 굶긴다고 했다. 이튿날 이들은 서로 마주 앉아 이교가 내리는 음식을 말없이 먹어야 한단다. 그리고 그 후 각자의 사정을 조곤조곤 설명해야 하는데, 이 일에 단 한 가지 철칙이 있단다. 그건…… 화를 먼저 내는 쪽이 무조건 지는 것이란다. 그렇게 군사들이 치솟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서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후엔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106쪽
경회루와 아미산 후원. 하나를 허물어뜨리면서, 또 다른 하나를 얻은 곳.
조선이 개국 후에 가장 신경 써서 지은 경회루는 명나라 사신이 올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그런데 경회루를 지을 때 연못을 파내어 얻은 흙으로 만든 곳이 바로 아미산 후원이었다.
아미산은 인공산이었던 것이다. 버려진 흙덩어리에 정성껏 꽃과 나무를 심어 마침내 아름다운 후원이 된 것이다.
“하나를 허물어뜨리고도 그로써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 부분적으로 명을 따르기에 당장은 잃는 것 같더라도 그로써 더 멋진 조선을 만드는 것…… 그게 핵심이다.”
114-115쪽
‘음식’으로 대국을 설득해서 여진족을 정벌하시겠다는 뜻 역시 이와 통하는 것이옵니다. 그간 조선은 대국의 힘에 눌려 그 뜻을 무조건 따라 왔으나, 향후의 조선은 더 이상 대국의 힘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조선은 새로운 힘을 창출해낼 것이다.
……중략……
]즉 조선의 제도와 문물 속에서 드러나는 ‘품격’이라는 힘은 ‘빼앗는 데’ 뜻이 있지 않다. 이 힘은 ‘지키는 데’ 그 뜻이 있다. 그리고 그 품격의 힘으로 지켜내야 할 건 오
로지 조선의 백성뿐이다. 이렇게 찬란한 힘을 지닌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138쪽
‘사신들이 오가는 경회루 옆에 초가라니. 사신들을 융숭히 대접하고 나서도 자신은 초가로 향했다니. 조선의 왕은 명에 대한 책무를 다하면서도 한시도 백성의 지난(至難)한 삶을 잊은 적이 없었겠구나. 사신들의 횡포에 절치부심(切齒腐心)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향했겠구나. 물건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도 오랜 세월 앞에서 무뎌지기 마련이거늘…… 조선의 왕은 결코 초심을 잃은 적이 없었겠구나. 이 초가를 볼 때마다 느슨해지려는, 편안해지려는, 누렇게 빛바래려는 마음을 다시 다잡았겠구나. 참으로 속을 가늠할 수 없는 자로구나. 참으로 무서운 자로구나. 참으로 대단한 자로구나.’
212-213쪽
고래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의 문제는 항상 권력과 맞닿아 있었다. 황제들은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응당 천하의 음식들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황제들이 먹는 데 쓰는 비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았다.
……중략……
명 황제는 큰 땅덩어리에서 올라오는 각종 산해진미를 자신의 권력 과시로 이용하면서도, 그마저도 온전히 즐기지 못한 채 독살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철저히 경계하는 것이다. 황제의 밥상은 권력이자 동시에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 왕의 밥상엔 두려움 대신 오롯이 백성이 있었다. 황제는 밥을 먹으면서도 불안해했지만, 조선 왕은 밥을 먹으면서 백성을 살피고 있었다.
216-217쪽
“조선의 왕은……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리게 하는 군주였습니다.”
“하아…….”
황제의 애타는 질문에 위명은 네 글자로 답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까지 겸허히 다다른다. 그렇게 물이 닿는 곳곳마다 반드시 생명이 싹튼다는 뜻이었다.
위명은 자나 깨나 백성을 생각하는 조선의 왕을 이처럼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리고자 애쓰는 왕 밑에서 백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태평성대를 누리는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황제를 향해 일침을 날린 거였다
238-2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