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벼락이 내리쳤다.” 미셸 푸코는 들뢰즈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벼락은 21세기의 사반세기를 지나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성계의 하늘을 수놓고 있다. “아마도 언젠가, 이 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불릴 것이다”라는 푸코의 예언은, 오늘날에 이르러 오히려 조심스러운 과소평가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들뢰즈 철학의 지속적인 낙뢰를 ‘신유물론적 비인간주의’라는 관점에서 읽어 낸다. 그리고 그 독해의 방법론으로, 들뢰즈의 저술을 각 장의 중심축에 배치하고, 그 장의 서두에는 영화를, 말미에는 들뢰즈의 영향을 받은 신유물론 학자를 나란히 둠으로써, 각 장을 하나의 회집체로 조직해 낸다.
이 회집체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장은 《돈 룩 업》이라는 영화로 시작하여 들뢰즈 철학에서 지구행성이 갖는 의미와 그 철학의 비인간주의적 면모를 탐색하면서 책의 내용을 개괄하고 있다. 그리고 2장은 영화 《솔라리스》로 포문을 열어 들뢰즈의 주저인 『차이와 반복』 이전 철학사 연구 시기를 논한 뒤,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비인간 현상학과 들뢰즈 철학의 문제의식 간 긴밀성을 밝혀내고 있다.
다음으로 영화 《컨택트》로부터 『차이와 반복』으로 이어지는 3장은 들뢰즈 존재론의 비인간적 지도를 그리고, 이를 로지 브라이도티의 비인간 휴머니즘과 연결하고 있다. 4장은 영화 《메모리아》에서 시작해 『의미의 논리』를 통과하며 인간중심적인 의미의 논리를 뒤집어 창발하는 의미의 논리에 대한 복원을 시도한 뒤, 퀑탱 메이야수의 비인간 유물론을 들뢰즈의 철학과 비교하고 있다.
최근의 계엄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 《서울의 봄》으로 시작하는 5장은 『안티 오이디푸스』를 통해 비인간적 무의식을 다루고, 이를 그레이엄 하먼의 비인간 지향적 존재론과 대조하고 있다. 이어서 6장은 『천 개의 고원』을 관통하는 물음인 “지구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에서 시작해 영화 《윌러드》를 통해 회집체의 ‘되기’를 드러내며 비인간주의의 차원에서 인간적 사례 연구를 논의한 뒤, 이를 육후이의 테크노-비인간 개념과 연결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7장은 『시네마』를 중심으로 《파프리카》, 《인셉션》, 《새》 등의 영화를 제시하면서 영화 이미지로 제시되는 들뢰즈의 비인간적 이미지를 살펴보고, 도나 해러웨이의 비인간 물질-기호를 탐색한 뒤, 들뢰즈의 이야기 꾸며대기와 해러웨이의 새로운 이야기하기를 대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8장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시작하여 들뢰즈의 철학적 유언이라 할 수 있는 「내재성: 생명…」을 탐색하며 들뢰즈가 그려 낸 꿀렁이는 지구행성이 생명 자체라는 사실을 밝히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구성을 통해 들뢰즈 철학이 단지 인간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지구행성적이자 비인간적인 사유임을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왜 이 세기는 여전히, 그리고 더 깊이, 들뢰즈의 세기인가?” 그 물음에 대한 응답이 이 책 곳곳에 번개처럼 스며 있다. 어쩌면 푸코가 들뢰즈를 벼락에 비유한 것은, 그 철학이 인간이라는 피뢰침 바깥에서 내려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