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폴 오스터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되는 생애 마지막 작품, 『바움가트너』
기억과 삶, 상실과 애도, 상상과 우연을 엮어 나가며
삶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와 사랑에 대한 애틋한 사유를 전하는
폴 오스터의 빛나는 최종 장(章)
이것은 삶을 가득 채우는 부재와 지속되는 상실의 기록이다. 당연한 슬픔이 있지만, 단지 슬픔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상실 속에서도 바움가트너는, 그리고 오스터는 상상력의 힘, 〈아니, 그냥 간단하게, 꿈의 힘〉을 발견한다. 허구이지만 진실보다 더 강력한 그 무엇을. ― 금정연(작가)
마법과도 같은 문학적 기교와 번뜩이는 재치, 날카로운 관찰력과 심오한 지성을 바탕으로 인간사의 다채로운 면모를 그려 내는 폴 오스터. 그는 〈떠오르는 미국의 별〉이라는 찬사 속에 데뷔하며 반세기 넘도록 소설과 산문 모두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견고히 자리 잡았다. 또한 문학적 기인이라 불릴 만큼 개성 있는 독창성과 담대함, 빛나는 유머 감각을 선보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작가〉, 〈가장 훌륭한 문장가〉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소설 『뉴욕 3부작』, 『달의 궁전』, 에세이 『빵 굽는 타자기』.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등의 대표작이 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자 폴 오스터 1주기에 발간되는 『바움가트너』는 은퇴를 앞둔 노교수 사이 바움가트너를 통해 상실과 애도, 기억과 현재, 시간의 흐름과 삶의 의미 등을 내밀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폴 오스터의 초기작들을 연상시키면서도 삶의 막바지에 이른 작가의 원숙한 사유를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9년 전 허망한 사고로 아내를 잃은 노교수 바움가트너는 사지가 절단된 뒤 환지통을 겪듯 그 상실을 안고 살아간다. 소소한 사고가 끊이지 않던 어느 날 까맣게 타서 부엌 바닥을 뒹구는 냄비를 물끄러미 보던 그는 창밖으로 눈을 돌려 새들을 보고, 문득 아내와 함께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아내가 평생 써왔으나 한 번도 발표한 적 없던 글들과 바움가트너가 집필하고 있는 원고가 삽입되며 내적인 여정과 긴밀하고도 자연스럽게 뒤얽히고, 이윽고 허구와 환상,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두려움 없이 돌아볼 수 있게 된 바움가트너는 비로소 아내와의 과거에서 벗어나 삶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음을 느낀다. 온전히 현재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바움가트너에게 청혼을 결심하게 만드는 새 연인, 그리고 아내의 미발표 원고를 연구하겠다는 젊은 여성 학자가 차례로 나타나 그의 삶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더해 가는데…….
오래된 기억의 정원을 걸으며 톺아보는
사소하고 우연적인 삶의 아름다움
생의 끝에 서서 돌아본 상실과 빈자리
그곳에서 발견한 눈부신 기억의 파편들
〈정원사〉라는 뜻을 가진 그의 성씨와 같이, 바움가트너는 기억의 정원을 걸으며 나뭇가지처럼 얽혀 있는 삶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기 시작한다. 소설은 1968년 뉴욕에서 가난한 문인 지망생으로 아내를 처음 만난 이후 함께한 40년간의 세월, 뉴어크에서의 어린 시절, 옷 가게 주인이자 실패한 혁명가였던 폴란드 출신 아버지에 대한 회상까지 여러 장면들과 에피소드들을 펼쳐 보이며 한 인물의 내적인 서사를 따라간다. 『4 3 2 1』(열린책들, 2023) 이후 6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면서 그와 대조적으로 200면 남짓한 짧은 작품으로, 폴 오스터가 평생을 다뤄 왔던 주제인 글쓰기와 허구가 만들어 내는 진실과 힘, 그리고 우연의 미학에 대한 사유가 간결하고도 집약적으로 담겨 있는 기념비적 소설이다.
이 작품은 인생의 가장 큰 상실을 경험한 바움가트너라는 인물을 통해 이전 같지 않은 나이 들어 가는 몸과 더불어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또한 평생을 함께 해온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 어떤 방식으로 상실을 애도하고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그 어느 때보다도 내밀하게 살펴본다.
그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다루어진 〈죽음〉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폴 오스터는 바로 그 죽음에 더없이 임박한 감각 속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맺고 있는 관계와 그 각각의 개인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가디언』, 2023년 11월 18일) 그는 〈사랑을 일종의 나무나 식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며, 삶에 존재하는 사랑과 관계, 타자의 불가해함과 그 모든 것의 복잡한 〈얽혀 있음〉 자체에 주목한다. 그러나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얽혀 있음이 필요하다고, 모든 관계가 〈이어져 있음〉을, 심지어는 복잡하고 낯선 이상함까지도 포함하여 서로 얽히고 이어 나가며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삶 속에 존재하는 사소하고 우연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폴 오스터의 예리함이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 생의 끝에 서서 찬찬히 톺아본 관계와 사랑에 대한 애틋한 사유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