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말할 때 왜 ‘여성’이라는 단어는 빠져 있는가?
마약, 알코올, 도박, 성형, 쇼핑, 성중독까지…. 중독은 어느덧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키워드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문제를 여성의 삶과 연결해 사유하는 경우는 드물다. 《중독된 그녀들》은 바로 이러한 공백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책이다. 여성 중독자의 사례를 다룬 이 책은 회복자의 자전적 서사와 질적 연구를 함께 엮어 펴냈다. 여성에게 중독이 어떻게 발생하고 지속되는지, 그리고 회복한다는 의미에 있어 무엇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중독이 개인의 도덕적 실패나 의지력 부족이 아님을 말하며, 오히려 그것이 여성에게는 생존을 위한 구조적 선택이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드러내는 책이다. 왜 중독이 유일한 친구였으며, 그들은 어찌해서 벗어나기보다 숨기를 선택했는가. 이에 관한 질문은 단순히 그 삶을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돌봄, 연대, 말하기의 공간을 되묻게 한다.
이 책의 중심에는 네 명의 여성 회복자가 있다. 그들은 단순한 인터뷰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을 ‘말하는 사람들’로서 등장한다. 가정폭력, 빈곤, 돌봄의 책임, 사회적 낙인 등 여성이라는 이유로 중첩된 억압을 받아온 이들은 중독이라는 고통을 통해 오히려 자신을 주체로 인식해 나간다. 이들이 중독에 빠지게 된 계기 역시 완전한 쾌락과 일탈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생존의 본능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중독 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이중의 낙인이었다. 중독자로서의 낙인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가져야 할 품위와 책임을 저버렸다는 비난이 뒤따른 것이다. 남성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여성은 더 많은 죄책감을 짊어지게 되고, 회복의 길마저도 훨씬 험난하게 펼쳐진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보고서나 연구 결과의 나열이 아니라 ‘들리지 않았던 여성의 목소리’를 끝까지 경청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중독을 여성의 문제로 다시 말하는 것은 여성만의 치료 모델이 따로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지금까지 구축된 중독 담론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자는 거다. 회복 공간에서도 여성은 소외되고, 상담자마저 남성 중심의 시선을 견지한다면 여성 중독자는 어디서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다. 이 책은 여성의 중독을 새로운 언어로 명명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회복 이후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서술과 분석을 넘나드는 이 책은 단순한 중독 서사에서 벗어나 중독과 젠더를 교차해 읽을 수 있도록 하며, 결국 우리 사회가 그러한 중독의 양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끊어낸 것은 중독만이 아니었다, 낙인과 침묵… 그 모든 것들
중독에 빠졌던 사람들이 회복의 길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여러 차례 들어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익숙한 서사의 틈을 비집고, 그 안에서 배제됐던 여성의 목소리를 끄집어낸다. 이 책은 네 명의 여성 중독 회복자의 내밀한 생애 이야기를 통해, ‘회복은 가능하다’는 진부한 말에 생생한 현실을 입힌다. 여성 중독자의 회복은 남성과 전혀 다른 경로와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며, 때로는 훨씬 더 가파르고 험난한 여정이 된다. 사회는 중독 여성에게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묻기보다 ‘왜 그렇게까지 되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중독을 치료받고 나서도 이들은 ‘정상적인 여성성’으로 돌아오기를 요구받는다. 회복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이중의 시선, 그것이 여성 중독자가 끊어야 할 또 하나의 사슬이 아닐까.
이 책에 등장하는 회복자들은 대부분 중독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마약, 알코올, 도박, 쇼핑, 성중독에 이르기까지 그 탐닉은 생존의 수단이자 일상의 해방구였다. 폭력과 결핍, 무관심 속에 살아남기 위한 막다른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유일한 자기 위안이자 생존 전략이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싸움닭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말처럼, 이들의 중독은 개인의 쾌락 추구가 아니라 사회가 제공하지 않은 돌봄의 대체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중독자가 된 여성에게 돌아온 것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었다. 여자답지 못하다든지, 엄마로서 책임감이 없다는 말들은 남성 중독자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구조적인 형태로 그녀들을 옭아맨다. 이 책은 그런 낙인의 언어를 드러내고 해체하는 동시에, 여성 중독자가 겪는 ‘살아남기 위한 고립’의 시간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바로 ‘희망’이다. 회복은 고통스러운 여정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네 명의 여성들은 어느 날 갑자기 중독을 끊었다기보다, 오랜 시간 자신과 싸우며 주변과 단절된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절실했던 것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관계’였다. 이 책은 회복을 정의하는 방식을 변화하게 한다. 완벽하게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끌어안고도 살아갈 힘을 기르는 일 말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가 그 힘을 북돋우는 안전한 발판이 될 수 있기를 요구한다.
회복은 끝이 아니라 시작, 다시 삶을 구성해 나가는 여성들
우리가 중독에 관해 쉽게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끊는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치료를 받고, 약물이나 행위에서 벗어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끝이라는 식의 생각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이면에 놓인 복잡한 현실을 낱낱이 보여 준다. 마약, 도박, 알코올, 성중독 등을 경험한 여성 회복자 네 명의 삶을 통해 회복이란 단지 금단의 상태가 아니라 다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조건을 하나하나 회복하는 일임을 말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단절되었던 인간관계, 부재했던 돌봄, 위태롭기만 했던 자존감 같은 이 모든 것이 회복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치료기관의 프로그램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회복의 본질에 이 책은 질문을 던진다. 그녀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고 말이다.
네 명의 중독 여성은 오히려 ‘끊은 뒤의 삶’에서 더 깊은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병원과 센터를 벗어나 사회로 돌아온 순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립된 생활, 반복되는 경제적 불안, 그리고 ‘다시는 실패하면 안 된다’라는 식의 강박이었다. 특히 여성 회복자들에게는 여선히 모성, 아내, 딸이라는 역할 기대가 작동하며 그들의 회복을 제약한다. 회복 과정에서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단순한 치료나 처방이 아니라, 안전한 대화 공간이나 자기를 이야기하는 시간, 낙인이 아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관계였다. 이 책은 이들이 다시 자기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말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삶을 재구성하는 회복’의 순간을 그려낸다. 치료는 출발선일 뿐, 회복은 다시 살아갈 힘을 회복해야 하는 훨씬 더 긴 여정이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책은 중독으로 무너졌던 삶이 다시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일어서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여기서 회복이란 우리가 말하는 ‘정상적인(이라고 치부되는) 사회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고,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경험을 되찾는 일이다. 이 책은 단지 중독 회복의 서사가 아니라 치유 이후의 삶을 어떻게 구성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제의도 잊지 않는다. 중독 이후에도 삶은 계속될 테고, 그 삶은 이전보다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이 네 명의 여성이 몸소 증명한다. 그리고 그 증언은 지금 순간에도 중독의 늪에서 희미하게 빛을 찾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지만 강력한 생존의 신호가 되어줄 것이다.
≪중독된 그녀들≫은 단순히 중독의 실태를 고발하거나 회복의 감동을 전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중독이라는 현상을 여성의 삶이라는 맥락 안에서 다시 써 내려간다. 중독에 빠지게 된 사회적 구조, 중독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이중의 낙인, 그리고 회복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존의 무게까지. 이 모든 걸 그대로 마주하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기도 하다.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회복이란 정말 가능한가, 그리고 ‘우리는 회복 이후의 삶을 어떻게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 이들의 용기와 증언은 누군가에게 거울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며, 우리 모두에게는 여성의 회복을 다시 정의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 바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