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으로 철학하기’는 21세기 기술 혁명과 철학적 사유가 만나는 지점에서 알고리즘의 체계적인 사고방식을 철학 개념에 적용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으로부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인간 사고의 본질을 탐구하며 인류 지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죠.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알고리즘 같은 기술 개념들이 철학의 전통적 질문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3쪽
컴퓨터과학에서 표상은 현실 세계의 객체, 개념, 상태 등을 기호나 구조로 나타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계산의 기초가 되죠. 복잡한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표상은 특히 고대 신화의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노타우로스가 갇혀 있는 미궁에 들어간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사용해 탈출하는데, 이 과정은 표상을 활용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실타래는 이동 경로를 표시함은 물론 미로라는 복잡한 환경에서 안전한 탈출 경로를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86쪽
컴퓨터과학에는 ‘탐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알고리즘이 있습니다. ‘탐욕적’이라는 이름은 이 알고리즘이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최적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을 반복하는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매 단계에서 가장 큰 이익이나 최소 비용을 선택하는 방식이 탐욕스러운 의사결정과 닮아 이런 이름이 붙여졌죠. -137쪽
확률 알고리즘과 우연성은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질서와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확률 알고리즘은 난수와 무작위성을 활용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최적의 해를 탐색하며, 실행 과정에서 점점 더 나은 답을 찾아갑니다. 반면 우연성은 철학적으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나 상황을 통해 삶의 새로운 기회와 변화를 만들어내는 요소로 작용하죠. 두 개념 모두 불확실성을 장애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잠재력을 가진 과정으로 재해석합니다. -201쪽
그동안 철학은 사유라는 창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았다면, 이제 컴퓨터와 AI는 그 창을 거울로 바꾸어 우리를 되비추기 시작합니다. 인간 정신의 복잡한 미로를 탐험하던 철학의 길 위에, 기술은 빛을 더해 새로운 길목을 열고, 그곳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2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