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그 모든 순간을 겪어내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요.”
겉으로는 다들 행복하다. 인스타그램과 카톡 프로필에는 자신의 멋진 순간만 전시된다. 이 거대한 쇼윈도 월드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매력적인 바깥세상과 별 특별할 것 없는 자신과의 이질감에 끙끙거리며 앓는다.
언젠가부터 영화관람의 핵심 목표는 재미있는 영화를 고르는 것 대신 재미없는 영화를 피하는 것이 되었다. 웹소설은 ‘사이다’가 매회 등장하지 않으면 매우 높은 확률로 버림받는다. 육아와 교육의 최우선 목표는 아이에게 실패를 경험시키지 않는 것이 되었다. 투자, 인간관계, 심지어 외교에서도 디리스킹이 유행이다.
한국 사회에서 특별하게 성공하지 못하면 곧 실패가 되고, 곧 나쁜 것이 되었다. 연예인도 과거에는 자수성가한, 이른바 ‘캔디’ 유형을 더 쳐주었지만, 지금은 좋은 집안과 학벌, 티 없이 자란 듯한 태도가 플러스 요인이다. 실패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으며 마치 이방인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취급을 받고 있다. 과연 온당한 일일까.
여기 책만이 유일한 인생의 도피처자 돌파구였던 서평가가 있다. 남편을 정어리 통조림으로 만들어 마땅할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극작가도, 오른손으로는 시를 쓰고 왼손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무명한 시인이자 화가이자 교수도, 학교폭력의 뼈저린 경험을 비폭력의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시인도, 귀신이라도 필요한 창작과 육아의 겸업을 ‘귀신의 시’로 옮기는 시인도, 버림받은 기억을 책임감으로 승화시키는 기획자이자 소설가도 있다.
이 여섯 명의 작가들은 자신을 ‘마이너’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이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 모두 사적인 불행을 작가적 수련의 기회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지금도 현실의 장애와 맞서 싸우는 중이다. 『나의 왼발』은 서로에게뿐 아니라, 이 세상의 다른 마이너들에게 보내는 응원이며, 그들이 겪었던 아픔과 고난에 대한 격려다.
작가들을 대표해서 서문을 쓴(‘글쓴이의 말’) 김미옥 작가는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성공담만 넘쳐나고 실패한 이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아니 사라져야 마땅한 것만 같이 취급된다. 모임에 가도 성공한 이들의 무용담만 들려오고 실패한 친구들은 소식조차 들리지 않는다. 성공하려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세상이 다그친다. 사람들은 남들의 실패가 자기 옷깃에 묻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그는 이 글에서, 그리고 이어지는 세 편의 에세이에서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을 결연히 거부한다.
“‘나의 왼발’은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마다 나보다 먼저 아팠다.
아프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저자 김미옥은 성공과 실패 이전에 삶 그 자체가 있다고 말한다. 살아낸 것만으로도 모든 존재는 특별하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의 경험에도 선악은 없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에세이 「나의 왼발」에서 말하다시피, ‘아프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잘 살게까지는 못하더라도 크게 나쁘지는 않게’ 살도록 해준다. 결핍은 오히려 삶을 배울 기회를 부여한다. 실제로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은, 모든 것을 성취하고만 살았으면 쉬이 쓸 수 없는 글들이기도 하다.
극작가이자 소설가, 동화작가인 하서찬 작가는 가족에 대한 세 편의 에세이로 참여했다. 각각 사이비종교에 빠졌지만, 아니 어쩌면 빠졌기에 건강 그 자체가 되어 있는 아버지, 돌아오면 통조림이 될 각오를 하고 정어리 머리를 썰러 간 남편, 그리고 장례식장에 빨간 코트를 입고 찾아온 언니가 그 주인공이다. 가난하고 답답한 삶이지만, 아니 어쩌면 그런 삶이기에, 또는 그저 삶이기에. 저자는 소박한 기지, 또는 웃기려는 태도를 잃지 않는다. 저자의 그런 모습이 독자에게도 작은 위로를 건넨다.
시인이자 왼손 화가(오른손잡이다)인 김정배 작가는 무명작가로서 사는 삶에 대한 에세이 세 편을 내놓았다. 첫 번째 편은 등단했지만 등단하지 못한(중앙 일간지나 유명 문예지로 등단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무명작가로 데뷔하게 된 자전적인 이야기다. 두 번째 편은 무명작가로서 독자들을 기다리며 자신에게 원고 청탁서를 보내게 된 후 일어난 일들에 대해, 세 번째 편은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상실과 마주하게 된 이야기를 썼다. 박지음 작가는 강연회에서 그런 인생의 실패와 극복을 이야기하는 그의 입담을 들으며 이 책을 구상했다고 이야기한다.
김승일 시인은 학교폭력의 아픈 기억을 면면이 되짚으며 시를 쓰고, 강연을 다니며, 이 책을 위한 두 편의 수필을 기록했다. 혹시 비인격적인 입시제도가 평범한 다수의 학생들을 학교폭력의 범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몇십 년이 지나도 그때만 떠올리면 눈물을 흘리는 피해자들이 학교폭력으로부터 치유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질문들이 시와 에세이에 담겼다. 김승일 시인의 다른 한 편의 기고작은 ‘수포자’지만 별을 좋아하는 학생이 과학자 대신 시인이 되었다는, 귀여운 내용의 이야기다.
강윤미 시인의 에세이는 상실에 관한 것이다. 섬에서 타지로 나온 작가의 놓고 온 것들, 또는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해 다루었다. 「귀신의 시」는 바깥세상을 멀리하며 여린 심성으로 시를 쓰던 어린 날의 시인이 육아를 거치면서 다시 멀리 떠나오는 이야기다. 「피아노의 숲」은 피아노로 은유되는 시에 대한 지향이다. 「안부」는 섬과 죽음이라는, 이중의 이별이 낳는 그리움에 대해 말한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봄꽃처럼 조금은 설레고 따뜻해지길 바랍니다.
이 책은 ‘우리’가 손을 맞잡고 당신에게 전하는 다정함입니다.“
이 책의 기획자인 박지음 작가는 「바리데기」에서 버림받을 뻔한, 또는 형제에 비하면 사실상 반쯤 버려진 딸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어머니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지만,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우정으로 삶이 환해지기를 기대하며」는 실패한 우정에 보내는 앨레지다. 「마이너를 위하여」에서는 실패가 엮은 인연과 실패한 여행이 남긴 고마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지음 작가는 ‘기획의 말’에서 이야기한다. “마이너들이 실패를 딛고 ‘오늘’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가. 자신의 길을 어떻게 열어가고 있는가. 패배감에 젖은 지금 세대에게 우리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아이디어가 반짝였고 이 책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