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9~10
“기온 상승을 1.5도까지로 억제하는 것이 전 세계가 세운 중대 목표인데, 그걸 일시적으로라도 넘으면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훨씬 심각해져. 온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가 배출해도 되는 이산화탄소량이 정해져 있어. 그걸 탄소 예산이라고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 6년 남짓밖에 안 남았어. 그때까지 남은 시간을 보여 주는 것이 기후 시계지. 그러니까 기온 상승을 막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는 디지털시계인 거야.”
p.17
열다섯 살에 겪게 된 좌절. 그 감정을 질질 끌며 살아온 한 달 남짓이다. 나는 아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무기력하다. 결석하지 않고 학교에는 가지만, 타성으로 다리만 움직이는 상태였다. 가고 싶지 않았던 고등학교에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했다. 공부는 그럭저럭한다. 그것만이 최소한의 자존심과 의지였다.
p.24~25
초등학생 때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 배웠으니까. 그러나 온난화가 왜 문제가 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기후 변화에는 자연환경에 의한 것과 인간 활동으로 일어나는 것이 있는데 19세기 이후로는 주로 인간 활동, 화석 연료 연소로 인한 온실 효과 가스의 발생으로 인해 기온이 상승한다는 것을 알았다. 애매모호했던 단어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은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라는 단어도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온난화나 변화라고 하면 아직 여유 있어 보이는데, 위기라고 하니까 단순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생활이 그렇게까지 위험해지나? 설마, 하고 고개를 저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p.39~40
사람을 바보로 여기는 표정이 생생히 떠올랐다. 어쩜 이렇게 남을 얕본담?
“어차피…….”
무심코 입에서 나오려고 한 것은 자기 비하다. 나는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주눅 든 인간이 된 걸까. 고등학교 입시 실패. 내가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가지 못했다는 생각. 그래도 역시 이대로 있기에는 화가 났다.
p.55
“정상화 편향이라는 말 알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직면했을 때, 그럴 리 없다는 편향, 즉 치우친 사고가 작용해서 모든 것이 정상 범위라고 자동으로 인식하게 돼.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건데, 이게 도를 넘으면 비상 사태에 대처하지 못하지.”
그렇구나, 하고 들으며 역시 말투가 내려다보는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잠자코 있자 료마 선배가 계속 설명했다.
“비상 알람이 울려도 오작동이라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이 도망치지 않으니까 나도 괜찮다고 여기는 거야.”
“즉, 기후 변화가 있어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네요? 남들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렇지.”
“신경 쓰는 사람이 괴롭겠어요.”
“현실을 보지 않고 힘든 일을 겪는 것과 괴로워하면서 위기를 회피하는 것 중 뭐가 좋을까?”
p.75
“그래도 시즈호, 금요일은 안 되지?”
“응, 매주 금요일에 동네 절에서 어린이 식당 일을 돕거든. 요리하는 것도 돕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거나 그림책을 읽어 주는 것도 조금 해.”
“……시즈호, 자원봉사하고 있었구나?”
나는 시즈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가볍게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뭐랄까, 시즈호를 다정하긴 해도 태평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던가. 조금은 시건방지게 내려다본 것 같다…….
“그보다는 나를 위해서야. 사실은 말이야, 일주일에 한 번 먹을 걸 제공한다고 뭐가 되겠나 싶어. 게다가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고, 애초에 자기만족이 아닌가 싶어서.”
p.95~96
“남자 친구, 뭐든 자기가 정하려고 하는 것 같아. 모모네 기분이 어떤지 말하지 못하는 거 아니니?”
“그렇지 않아! 간지는 나를 생각해서 말해 주는 거니까.”
너야말로 화를 내잖아.
그래도 우리는 오래 알고 지낸 만큼 서로를 잘 아니까 언제 물러나야 하는지 안다. 문제 될 것 없는 대화를 나누고, 조금 어색하긴 해도 평온하게 헤어졌지만…… 역시 떨떠름했다.
나는 속이 좁다. 모모네가 날 내려다보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지만, 예전의 내가 모모네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여동생 같은 성격이고 응석받이여서 내가 하는 걸 따라 한다고 무시하지 않았던가?
모모네, 불안할 것이다. 좀 더 다르게 말해 줄 순 없었을까.
p.113~114
료마가 강한 힘으로 팔을 당겼다. 눈이 마주쳤다. 일순간 주변이 멈췄다. 빗소리도, 사라졌다. 그래도 그건 정말 잠깐으로, 료마의 얼굴도 어깨도 순식간에 젖어 버렸다.
왠지 웃음이 차올랐다.
“있지, 나, 료마를 좋아하나 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 왜 웃는 건데, 나. 료마의 얼빠진 얼굴. 재미있다. 그래서 웃음이 북받쳤다.
“나, 나를? 왜?”
“그거야 모르지. 그런 마음이 들었으니까 어쩔 수 없어.”
나는 또 웃었다.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뭐랄까, 사쿠라기학원에 떨어진 열등감이나 나 자신을 향한 오기나 떨떠름한 마음이 전부 세찬 장대비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p.131
즐거운 건 중요하다. 있잖아, 또 같이 어딜 갈 수 있다면 기쁠 거야. 속으로 말을 걸었다. 이미 곁에 없는 상대에게.
소중한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을 긍정한다. 그 소중한 사람 중 하나다…….
만나서 다행이다. 나의 좋아하는 감정은 보답받지 못하겠지만. 그를 만난 덕분에 내 세계가, ‘엄청나게’는 아니어도 ‘조금’보다는 더 많이 넓어진 것 같다.
p.159
나는 앞으로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료마에게 밝히기로 정했다. 이제부터 말할 생각이다.
“친구를 데리러 다녀올게.”
시즈호에게 말하자 “친구 맞아?”라며 생글생글 웃었다.
료마는 정문 옆에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언젠가 봤던 저 모습, 역시 좋아한다. 료마가 고개를 돌리고 나를 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료마가 걷는다, 나를 향해서. 나도 달려가서 말했다.
“있잖아, 료마,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