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장
조금 춥긴 했지만, 머리맡에 있는 알람 시계가 울리기 전까지 꼼짝하지 않고 버텼다.
p9
치바현의 북서부에 있는 후나오카시는 인구 30만 명의 중간 규모 지방 도시이다. 전쟁의 재해를 입지 않았으며 바다를 접하고 있어서 패전 직후 물자의 집산지로 암시장이 융성했던 곳이다. 당시에는 ‘일본의 상하이’라는 거창한 별명까지 붙었으나 현재는 전형적인 베드타운이다. 인구가 많다 보니 주요 역 주변에는 상업 시설이 나름대로 발전했지만, 수준은 전부 2급 이하다. 쉽게 말해, 시골에 있는 번화가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 어중간함이 별별 잡다한 인간들을 끌어모았다. 마모루가 후나오카가 아닌 이웃 동네에 사는 건 직장과 거리를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신 건강’을 고려한 것이다.
15p
생활 보조금 부정 수급은 현재 커다란 사회 문제이다. 경제력이 없는 약자로 위장하여 나랏돈을 탐내는 인간들이 있다. 그 돈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된 것이니 공분을 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그 창끝이 지급을 관리하고 있는 관공서 종사자들에게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38p
미소라는 아이미가 열일곱 살 때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다. 상대는 아이미와 열두 살 이상 차이 나는 연상이었다. 그 남자는 아이미의 임신 소식을 듣고 바로 모습을 감췄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자는 결혼 상대가 따로 있었다. 아이미는 교제 상대가 아니라 단순한 잠자리 상대였던 것이다.
67p
마모루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미야타 유코가 새삼 무섭게 느껴졌다. 항상 정론을 뱉어 내는 그녀 앞에 있으면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지독하게 추악한 생물처럼 느껴진다. 마모루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 봤자 소용없다. 결국은 위에서 판단할 일이다. 말단인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분 탓인지 몸이 나른해졌다. 심각한 얘기를 해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지친 것 같다.
98p
유타의 아빠이자 카스미의 남편이었던 유이치로는 4년 전 유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트럭 운전사였던 유이치로는 심야에 산길을 달리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벼랑에서 떨어졌다. 졸음운전이었다. 남편이 가입한 보험 회사에서 300만 엔의 돈이 나왔지만 4년 동안의 생활비로 나가고 별로 남지 않았다. 물론 그사이 카스미도 일을 했지만 주부의 파트타임 급여로는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파트 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304p
마모루는 부엌으로 들어가 싱크대 밑에서 식칼을 한 자루 꺼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했다. 손에 든 예리한 식칼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칼의 단면이 형광등 불빛을 희미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모루는 한발 내디뎠다. 아이미의 등 뒤에 섰다. 식칼을 든 손이 멋대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