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 글
‘지역인재정책’이다! 이 여섯 글자가 책명(冊名, book name)으로 정해지기까지 제법 오랜 시공간의 축적과 시행착오의 집적이 있었다. 이 책의 이름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잠시 시간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본다. 그리하여 지난 30여 년간 ‘지역인재정책’이란 책명이 나오기까지, 1997년부터 각 시기별 ‘간접적 계기’와 2021년 이후의 ‘직접적 계기’로 나누어서 간추려 본다.
‘간접적 계기’가 처음으로 시작된 때는 1997년 IMF 경제 위기이다. 이때 우리 경제가 받은 깊은 상처 중에서 ‘실업문제’가 처음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대부분의 경제 지표는 2~3년 만에 회복세를 보였으나, 고용 상황만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10%를 넘나드는 청년 실업률은 국정과제의 핫 이슈로 부상했다. IMF 경제 위기 이전에는 ‘노사관계’가 노동문제의 핵심이었다면, 이후에는 ‘고용’이 핵심 화두였다. 이로 인하여 많은 노동경제와 지역경제 연구자들이 ‘실업’과 ‘고용’ 문제로 관심을 돌렸다.
2000년대 초반, ‘지역고용’과 ‘지역노동시장’이란 말이 학계와 언론에 자주 등장하던 시기에 연구공간의 집적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 부산에서는 이미 부경대 류장수 교수와 경성대 박성익 교수가 노동 및 산업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필자는 1998년에 경성대로 합류했다. 다행히 부경대와 경성대는 한 울타리라 할 만큼 지척의 거리였다. 연구자들의 이러한 공간적 집적의 장점으로 인해, 우리 셋(류장수·김종한·박성익)은 25년 전부터 자주 만나 담소를 나누었고, 2000년대 초부터는 ‘지역고용’이란 주제를 중심으로 의기투합했다.
이러한 교류는 2006년 7월 ‘부산지역고용파트너십포럼(2010년 이후 ‘부산고용포럼’)’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류장수 교수가 초대 고용포럼 상임대표를 맡았고, 이후 2020년까지 필자와 손정은 대표, 박성익 교수, 부산외대 권기철 교수가 차례로 상임대표를 이어갔다. 우리는 고(故) 이근호 운영위원장과 김은미 사무국장을 비롯한 10여 명의 포럼식구들과 함께 부산지역 고용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실천적 활동과 정책연구를 전개하였다. 우리는 부산고용포럼에서 수행한 부산지역 일자리 관련 사업운영과 정책연구를 통해 산 경험을 축적하였다.
이 시기 부산고용포럼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 타 지역 포럼과 차별화되는 대표적인 사업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 하나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고용노동부의 지역맞춤형 일자리창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수행한 「부산광역시 고용촉진지구 시범사업(이하 ‘시범사업’)」이다. 다른 하나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수행한 「부산형 착한기업 프로젝트 사업(이하 ‘착한기업 사업’)」이다. ‘시범사업’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산광역시 사상구라는 특정 공간에 10여 개의 세부 고용촉진사업을 패키지 형태로 3년간 수행한 사업이었다. 이 사업수행을 위해 전국 최초로 민간차원의 ‘원스톱취업지원센터’를 설립·운영하였고, 고용과 복지가 하나로 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였다.
특히, 「부산형 착한기업 프로젝트 사업」은 당시 지역맞춤형 일자리창출지원사업 가운데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기에 충분한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고용노동부가 주최하는 ‘2015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 경진대회’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추진성과를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이 사업은 2012년부터 10여 년간 100여 개의 ‘생활기술형 창업기업’과 400여 개 이상의 ‘채용약정형 OJT 기업’ 지원을 통해 1,500여 명의 새로운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우리는 이 사업 성과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7년에 『부산형 착한기업 2012~2016』(김종한·류장수·박성익·이근호)이라는 책자를 출간하였다.
이런 노력은 2013년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2013년 10월에 고용노동부는 법률 조항 개정을 통해 부산을 비롯한 14개 지역에서 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Regional Skills Council: RSC)(이하 ‘지역인자위’)를 설치하였다. 이 위원회는 지역·산업 맞춤형 신규인력 공급 기반 구축을 통한 지역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였다. 우리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이 위원회의 (선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인적자원개발 거버넌스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이에 따라 우리는 지역인적자원개발과 지역고용 거버넌스 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이를 전담하는 기구로 지역 테크노파크와 같은 ‘(가칭) 지역일자리파크’의 설립을 주창하였다. 이 밖에도 우리는 부산광역시노사민정협의회, 부산광역시일자리위원회, 부산광역시노동권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산시 일자리정책 개발과 운영에 적극 참여하였다. 당시 우리는 경성대 조장식 교수 등과 함께 고용노동부의 지역 일자리 창출 관련 다양한 연구프로젝트와 정책개발에도 참여하였고, 다양한 평가와 심사 활동을 하는 등 종횡무진으로 지역 일자리 창출에 노력을 다하였다.
마지막 계기는 2018년에 찾아왔다. 이때 우리는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이하 ‘균형위’)에서의 활동과 지역상생형 일자리사업의 일환인 「부산형 일자리사업」을 함께 추진하면서 산지식을 집적하였다. 2018년 6월부터 2년간 균형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방소멸과 균형발전의 심각성을 체감하기 시작했고, 지역주도형 일자리 창출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부산형 일자리사업의 기본모형은 노사상생, 기술상생, 지역상생이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첨단 전기차부품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기술상생이었다. 우리는 부산형 일자리사업을 통해 ‘R&D 지역인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책명인 ‘지역인재정책’이 나오기까지의 간접적 계기이다.
그런데 우리의 지역고용 및 인적자원개발 활동은 딱 여기까지였다. 지난 십수 년간 지역에서, 예를 들어 1천 개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골똘하게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을 수행해 놓으면, 이듬해엔 늘 그 이상의 ‘일자리 소멸’이 일어났다. 마치 고대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Sisyphos)처럼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 정상에 올리면, 돌은 다시 굴러 내려와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려야만 하는 것과 같았다. 조금 과장한다면 우리말 속담의 “말짱 도루묵”이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 아니었다. 십수 년간 열정적으로 의기투합해 온 지역고용정책에 큰 벽을 만난 느낌이었다.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헤어나오기 어려운 늪처럼 무기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이 책을 저술하게 된 ‘직접적 계기’를 말하려 한다. 필자는 2021년 말에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지역발전특위 회의에서 지난 20여 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지역인재’ 관련 주제발표를 한 적이 있다. 2022년 1월 초, 일자리위원회 일자리기획단으로부터 지난번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3월 말까지 ‘지역인재 집적’ 관련 보고서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때 늘 함께해 온 류장수 교수는 한국직업능력연구원장으로 막중한 공무를 수행하느라 잠시 부산을 떠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맞은편 연구실의 박성익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알리고, 둘이서라도 ‘지역인재’에 초점을 맞추어 함께 집필하기로 하였다. 3개월여의 짧은 기간 동안 집중하여 작성된 보고서명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산업특화 인재집적 방안」(김종한·박성익, 2022)이었다. 이 과제는 워낙 급하게 마무리되어 pdf 파일로만 제출된, 문재인 정부 일자리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였다. 정식 인쇄출판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간직한 채, 2022년 8월부터 필자는 안식년을 맞아 1년간 지나온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숲을 보려면 숲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처럼, 2023년 3월부터 몇 달간 느긋하게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때였다. 이 시기에 ‘지방소멸’과 ‘저출생·고령화’ 문제가 연일 매스컴에 등장하였고, 국정 최대과제로 부상했다. 지방소멸과 지역고용의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로서 ‘지역인재’라는 화두가 다시금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2024년 4월경 잠시 잊어버렸던 일자리위원회의 보고서가 떠올랐고, ‘지역인재정책’이란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그 보고서를 전면 개편하는 책을 저술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보고서의 공동저자였던 박성익 교수와 이러한 아이디어를 공유했고, 함께 마무리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자료의 업데이트와 한두 개의 장을 추가하는 정도로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일을 벌이고 보니 새로운 책을 쓰기보다 힘든 난제가 많았다.
결국 이 책은 기존 보고서의 아이디어를 모태로 하지만, 지난 1년여의 산고 끝에 전면 개편된 『지역인재정책-‘지방소멸’에 ‘지역인재’로 답하다』라는 새로운 책으로 탄생하였다. 기존 보고서는 총 6개의 장에 불과했지만, 이 책은 총 13개 장에 분량도 2.5배나 증가하였다. 대략 기존 보고서 내용의 30%가 재인용되었고, 70%는 새롭게 작성되거나 데이터가 갱신되었다. 이 책에서 1장, 2장, 3장과 7장, 8장, 11장, 13장은 필자가 초고를 작성하였고, 4장, 5장, 6장과 9장, 10장은 박성익 교수가 초고를 작성하였다. 이 책의 핵심 장인 12장은 공동으로 초고를 작성하였다. 이후 우리는 여러 차례의 윤독을 거쳐 마침내 2024년 말에 원고를 출판사로 넘겼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일반 독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지역인재정책과 지역고용정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자료 제공을 목적으로 저술하였다. 이 분야의 전문가에게는 단순한 참고자료의 집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학부 수준의 대학생들이 읽기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책은 지역인재뿐만 아니라 지방소멸, 지역고용, 지방대학, 지역경제 위기 극복에 관심을 가지는 관련 공무원과 실무자에게 정책적 아이디어 개발과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지방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지역경제정책 관련 공무원과 유관기관 실무자에게 유익한 도서로 회자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이 시대 최우선 국정과제인 저출생·고령화와 지방소멸이라는 대한민국의 인구문제를 해결하고, 양극화 해소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지난 30여 년간 참으로 많은 분께 신세를 졌다. 개략적으로만 보아도, 고용노동부와 부산광역시,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일자리 담당 부서의 수많은 전현직 공무원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기억한다. 그리고 한국지역고용학회와 한국지역사회학회를 비롯한 각 대학 고용분야 교수님들, 한국고용정보원과 한국노동연구원을 비롯한 국책연구원의 산업·고용 관련 박사님들의 연구성과와 지혜가 이 책에 배어 있다. 그리고 부산연구원을 비롯한 부산시 산하 유관기관의 연구자 및 실무자분들과 함께한 노고가 이 책 어딘가에 담겨 있다. 나아가 부산 지역 노사단체 및 시민단체 분들과의 사회적 대화 역시 이 책을 서술하는 데 풍부한 자양분이 되었다. 지난 30여 년간 함께해 온 각 기관의 연구자와 실무자들을 이 자리에서 일일이 다 명기할 수 없어서, 별도의 지면을 할애하여 「감사의 글」로 남기려 한다.
무엇보다 너무나 어려운 사회과학 도서 출판환경에도 불구하고 고심 끝에 흔쾌히 출판을 결정해 주신 김영훈 문우사 대표의 용단이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문우사 김 대표를 비롯하여 이 책이 나오기까지 꼼꼼한 편집을 해준 전영완 부장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면서 이 책의 완성도를 높여준 전 부산지방고용노동청장이자 노무법인 초이스인사노무컨설팅 최기동 대표, 경북대 김영용 연구교수,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박사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꼼꼼하게 오탈자 교정까지 묵묵히 보아준 경성대 도시재생대학원 박사과정 김현용 조교와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과 대학생 독자의 관점에서 장문의 글을 나누어 읽고, 오탈자 수정과 소감을 피력해 준 부산광역시 김효경 과장, 문화체육부 국제문화정책과 이경수 주무관과 중앙대 김수린, 이유정 학생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늘 곁에서 건강을 챙겨준 저자들의 내자(허경희·차선희)와 곧 2주기를 맞이하는 고(故) 이근호 박사께 이 책을 바친다.
2025년 2월 중순 어느 날
상학관 연구실에서 저자 김종한·박성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