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황청 한국 대사는 국가 공무원일까, 가톨릭 신부일까. 교황청(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데다 종교 국가나 다름없는데, 그곳에 파견된 대사는 과연 무슨 일을 할까. '교황청 대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교황청 대사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몇몇 지인들이 좀 황당한 질문을 했다. “이 대사님, 교황청 대사는 대체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인가요?” 3년 일하고 온 사람에게 이런 무례한(?) 질문을 하다니!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그리고 인류 평화를 위해….” 약속이나 한 듯 동석한 사람들이 껄껄껄 웃었다. 웃음이 멈출 즈음 꼭 이 말을 해주었다. “교황청 대사가 하는 기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 〈바티칸에서 평양을 보다〉 중에서
통역 시간을 빼면 교황과의 실질적인 독대 시간은 10분밖에 안 된다. 이 짧은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궁리했다. 이탈리아어 통역사를 미리 만나야 했다. 교황청의 전실에서 알려준 통역사는 서울대교구 출신으로 바티칸뉴스에 파견되어 있던 김남균 신부(시몬)였다. 김 신부를 미리 만나 교황에게 반드시 전달해야 할 내용들을 알려줬다. D-1일에는 리허설을 야무지게 했다. 모든 준비는 외무고시 출신의 베테랑 외교관인 박수덕 공사가 지휘했다. 박 공사가 PD 역할을 했다. 박수덕 연출, 이백만 주연이었다. - 〈교황과 독대, 그리고 설 선물〉 중에서
2022년 2월 24일 새벽,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선전포고를 하고 미사일 세례를 퍼부었다. 서방 강대국들의 대응 수위는 의외로 낮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달랐다. 교황은 전쟁 개시 다음 날 주교황청 러시아대사관을 직접 방문하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일국의 국가원수가 분쟁 중에 있는 특정 국가의 대사관을 찾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교황은 이런 외교 관례를 깨고 러시아 대사관에 들어가 '반전 시위'를 벌인 것이다. 세계를 향한 고발 이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경고였다. “푸틴, 당신이 틀렸어. 전쟁은 안 돼!” -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누구인가〉 중에서
바티칸에는 세금이 한 푼도 없다. 일반 국가의 경우 정부가 세금의 일부를 특별히 감면해주는 면세점, 면세구역 등이 지정되어 있으나, 바티칸의 경우에는 국가 전체가 세금이 전혀 없는 '무세無稅 천국'이다. 관세, 갑근세(근로소 세), 법인세, 재산세, 부가가치세 등 세금 관련 용어 자체가 없다. 교황청도 여러 부처나 박물관 등 산하기관에서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고 그들에게 봉급을 준다. 직원 수가 약 3,000명에 달한다. - 〈세금 한 푼 없는 '무세 천국'〉 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노 디스포니빌레' 발언은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일본은 안절부절못하며 긴장했고, 중국은 대륙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조용히 관망했다. 요시오 나카무라 일본 대사는 2018년 2월 첫 만남에서 자신의 미션을 솔직히 털어놨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을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다. 취임하자마자 아시아 국가로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느냐. 일본 방문은 아직 계획이 없으시다. 한국에는 현재 추기경이 두 분 계시는데, 일본에는 한 명도 없다. 교황님의 방일을 성사시키고 추기경 한 명이 탄생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미션이다.” - 〈일본의 긴장, 중국의 관망〉 중에서
북한 전문가들은 분단 전에 세례를 받은 신자 중 홀로 숨어 신앙생활을 하는 '침묵의 신자'가 북한 전역에 2,000~3,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짐작일 뿐이다. 교황청의 중국 출신 사제는 “한 번 신앙을 가지면 결코 버릴 수 없다. 중국의 사례를 봤을 때 북한에도 분명히 '침묵의 신자'가 있을 것이다. 중국의 가톨릭 신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문화혁명 때 공산당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낮에는 모택동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가 한밤중 또는 새벽 두세 시에 예수님 사진을 꺼내놓고 기도했다”라고 말했다. - 〈북한의 가톨릭 현황〉 중에서
교황은 한국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들려줬다. 내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한국 대사가 오면 말해주고 싶었는지 이야기보따리를 줄줄이 풀어놓았다.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에 대한 감사의 회고였다. “한국 수녀들에 대한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르헨티나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와서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봐주셨어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 따뜻한 미소로 깊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환자들 모두가 좋아했어요. 환자를 살리고 병원을 살렸습니다.” - 〈교황님, 교황님, 우리 교황님!〉 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중단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교황은 한반도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일까.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교황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때 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기도를 해주면서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를 강력히 지지했다. 2019년 '하노이 노 딜' 때에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면서 아쉬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과 평양, 워싱턴과 평양을 연결하는 '평화의 다리'를 놓고 싶어 한다. 평양 하늘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서울과 워싱턴 하늘에는 인공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 〈폰티펙스의 중재 외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