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언어로 세상을 읽는 사람
사라져가는 초목을 수호하는 식물분류학자의 일과 삶
★ 나희덕 시인, 이정모 前 국립과천과학관장 추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일하고 있는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신간 산문집 『숲을 읽는 사람』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식물분류학자로서 일하는 풍경과 그 과정에서 마주친 식물들에 대해 들려준다.
식물분류학자 하면 조용한 연구실에 앉아 식물 표본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저자가 일하는 현장은 그와 달리 때로 여러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험준한 산속이다. 책에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식물들을 추적하고 기록해 자연을 복원해나가는 여정이 그려진다.
나희덕 시인이 추천사에 적은 것처럼 허태임 저자는 식물의 언어로 세상을 읽어내는 “식물적 인간”이다. 그의 세심한 시선을 거쳐 찔레꽃, 팽나무, 붉나무, 박주가리, 너도밤나무 같은 초목들이 생기롭게 되살아난다. 직접 찍은 산과 식물들의 사진은 생생함을 더한다.
식물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사랑의 끈 같은 것을 생각한다. 서로를 잇고 있는 끈을. 겨우내 눈 속에 묻혔던 씨앗은 다음 봄이 오면 되도록 좋은 유전자를 고루 섞은 새로운 싹으로 피어난다. 그 싹은 군락을 키우고 영토를 넓히는 방식으로 힘을 보태 세대를 잇는다.
― 『숲을 읽는 사람』에서
홀로 그리고 함께
식물분류학자가 일하는 방식
저자의 일터는 언제 곰이 나타나거나 진드기에 물리거나 해가 져서 깜깜해질지 모르는 인적 드문 산속이다. 저자는 식물에 대한 애정을 품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어간다.
저자는 해발고도 1300미터 이상에서만 피는 바람꽃을 보기 위해 산 정상을 오르고, 노랑팽나무를 찾기 위해 59번 국도를 따라 이곳저곳을 누빈다. 울릉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너도밤나무를 기록하기 위해 울릉도 태하령의 너도밤나무숲을 탐사하기도 한다. 때로 진드기에 물리고, 산에서 길을 잃어 어둠 속에 갇히기도 하지만, 식물을 향한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땅 속에 뿌리를 내려 주변 환경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식물처럼, 저자는 홀로 숲을 탐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일을 해나간다.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을 추적하는 동물학자 우동걸 박사와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의 동식물에 대한 생태 조사를 하고, 전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인 시드볼트 중 하나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를 꾸려나간다.
‘너도’로 시작하는 따뜻한 어조의 말은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와 너를 결속해 하나로 묶어주는, 어딘가에 연결돼 있으니 외로워하지 말라는, 거기가 어디든 힘내서 발붙이고 살라는, 누군가의 존재를 지탱하게 해주는 힘을 지닌 그런 말.
― 『숲을 읽는 사람』에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마주한 초록의 온기
식물과 사람이 물들어가는 시간
『숲을 읽는 사람』에는 산속에서 채집한 식물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화려한 장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수수한 모습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찔레꽃,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씨앗에 독성 물질을 심어놓는 귀룽나무와 씨앗에 날개를 달아 훨훨 날게 하는 박주가리, 다른 존재와 공생하는 겨우살이의 이야기가 조곤조곤 이어진다.
이 책의 특징은 식물분류학자로서의 일에 대한 글과 식물에 대한 글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책의 구성은 내용과도 맞닿아 있다. 저자가 식물에게서 받은 온기 어린 이야기는 주위 사람들과의 다정한 경험으로 확장된다.
어린 시절 식물을 향한 사랑을 처음 일깨워준 할머니, 올괴불나무꽃 향기에 여전히 소녀처럼 기뻐하는 엄마, 호야 화분을 선물로 건넨 두봉 주교, 비무장지대를 나란히 누비며 우정을 나눈 다큐멘터리 감독과의 기억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와 화음을 이루면서 읽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모자라고 부족한 생명체다. 그것을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는 힘은 절대적인 단 하나의 몫이 아니라는 것. 접목이라고 했던가. 자연 속에서 과학을 하면서 나는 식물이라는 타자와의 소통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 『숲을 읽는 사람』에서
기후 위기, 전쟁, 산불,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숲은 점점 더 파괴되어가고 있다. 『숲을 읽는 사람』은 매번 그 파괴의 현장을 마주하면서도 끝내 회복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 식물분류학자의 이야기이다.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잎을 떨군 자리에 새로운 싹을 틔우는 식물처럼 다시금 찾아올 봄을 온전히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