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에서
조타실을 나오자마자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케우치가 평소처럼 요란한 몸짓을 섞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일행이 그를 에워싸듯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아, 히토! 잠깐 이리 와봐. 다케우치가 말이야…….”
이시다가 터질 듯 웃으며 나에게 손짓했다.
아이들처럼 떠드는 여섯 사람에게 차례대로 시선을 던진다. 하시모토 료마, 오오이시 유, 다케우치 슌스케, 가란 유이코, 우라이 게이지, 이시다 지아키──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역시 하나뿐이다. 원래 인간은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서는 살 수 없는 생물이니까.
놓치지 않겠다고 속으로 뇌까렸다.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죽여주마. 이것은 복수다.
1막, 27p.
──하시모토가 죽어서 기쁜가?
대답은 아니요였다. 전혀 기쁘지 않다. 내가 죽이고 싶었던, 내가 죽여야 했던 자니까.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분명 그들을 독살할 작정이긴 했지만 이번 사건은 결단코 나와 무관했다. 범인은 누구인가.
1막, 71p
“좋은 아침. 오늘은 도로공사도 없다니까 평소처럼 작업 잘해 달라는 내용. 열사병 조심하고.”
“예, 알았어요. 그럼 가자.”
내가 반말을 섞어 말하지만 욧짱과 기이짱은 쉰 살이 넘는 아저씨들이다.
오사카시 클린센터 수거작업원은 대부분 남성이고, 오랫동안 채용이 없어서 평균연령이 높다. 기능직 중에 젊은 여성은 나 혼자여서, 작년 4월에 근무하기 시작할 때는 매우 튀는 존재였다. 아저씨들도 처음에는 나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여자’인 내가 외계인이나 희귀동물이 아니고 똑같은 인간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로 일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2막, 278p
“허어, 2001년생이군. 스물두 살. 젊네. 혼자 지내나?”
“아뇨, 동거인이 있는데.”
오빠와의 관계를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말을 맺지 못했다.
“남성 동거인? 애인과 지내는 건가?”
“남자랑 사는 건 맞지만, 남녀 사이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오빠 같은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이부형제나 이복형제 같은 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 아이들은 문란하다니까, 라는 듯한 눈초리를 보내지만 오빠는 그냥 오빠일 뿐 서로 손가락 하나 건드린 적도 없다. 아니, 애초에 누구랑 살든 나의 자유 아닌가.
2막, 293p
히토 사건이 일어난 직후, 어느 주간지가 범행성명 전문을 실어 히토가 피해자들을 증오하게 된 원인──즉 피해자들의 과거 행적에 대하여 가차없이 폭로했다. 그 기사에 나온 ‘당해도 싼 가해자들’이라는 문장을 계기로 SNS에서 ‘#당해도_싸’ 해시태그가 유행하고 피해자들이 과거에 저지른 상해 사건의 자세한 내용이 널리 알려졌다.
그 해시태그는 지난달 28일, 주인공이 적에게 복수하는 내용의 인기 TV드라마가 방송되면서 다시 떠올랐다.
2막, 32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