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늘고 있는 내면이 불안정한 아이들은 각종 문제와 갈등을 날마다 일으키며 교육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교사의 에너지를 고갈시킵니다. 차분히 앉아 배울 수도 없고, 규칙을 지킬 수도 없는 상태인 이 아이들로 인해 교사들은 매 순간 극한의 감정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로 인해 교사의 근무 환경은 나날이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전반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교육학자도 교육부도 문제의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5쪽
교사들이 이토록 치명적인 내상을 입게 되면, 아이를 사랑하고 돌보며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교사의 따뜻한 심장은 딱딱하게 굳어가게 됩니다. 괜한 일은 만들지 않고, 안 되는 아이를 가르치려 애쓰지 않으며, 문제가 분명한데도 질끈 눈을 감아 버리고, 최소한의 업무와 수업을 감당하면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게 됩니다. 아마도 이 나라의 고위 교육 관료와 교육학자와 정치가들은 이 현상을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7쪽
현실을 외면한 채 고통을 차단하기 위해 갑각류의 껍질 속에 자신을 감추는 선택은 교사를 정서적으로 더욱 불행하게 만듭니다. 교사는 매 순간 아이들과 직면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앞에서, 이 실체의 시공간과 관계들을 부정한 채 주어진 일만 하면서 얽히지 않고 사는 것이 설령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런 삶에서 진정 살아 있다는 행복감을 단 한 순간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요. 직면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9쪽
교육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최근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예외 없이 국민의 약 20%는 현실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부적응자, 더 나아가 심각한 심리 장애인입니다. 로봇이 인간 대신 일하는 시기는 점차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 간의 양극화는 더 심화할 것입니다. 이제 지식과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판단(예, 재판 등) 및 의학적 진단 등은 인공지능이 더 잘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인간은 지식보다는 지혜를 더 필요로 할 것입니다. 지혜를 갖춘 자는 공감을 잘하고 개인의 꿈을 차근차근 실천해서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13쪽
신규 교사로 발령받고 처음 교실에 들어서는 젊은 교사는 마치 생존에 필요한 도구는 하나도 준비하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정글 속으로 내던져지는 것과 같은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직 이수 과정에서는 낡은 이론을 공부했을 뿐 정작 젊은 교사들이 곧바로 부닥치게 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배운 적도 없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후배 선생님들은 말합니다. 2월 말에 하는 신규 임용 교사 연수에서 수백 명의 젊은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마다, 이 젊은이들이 아무런 대비도 없이 곧바로 어떤 상황 속으로 내던져지게 될지를 생각하면, 정년퇴직을 앞둔 늙은 교사인 저도 긴장감을 느끼며 불안과 근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29쪽
서툰 아이들. 편의상의 분류일 뿐 실제의 이 아이들은 매우 다양하고 편차가 심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매우 명석하건만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명랑하고 대인관계도 좋은데 즐거운 것만 추구하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도전과 성취를 하지 못하는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때로 규칙을 어기거나 참고 집중해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해내지 못하는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31쪽
이 아이들에게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학급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도움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참여하고, 기여하고, 거기서 얻는 소속감과 성취감이 자기를 성장하게 한다는 걸 알게 될수록 아이는 힘든 일을 견디고 당장에 집중해야 할 과제를 중시하게 됩니다. 친절하고 단호하게, 느슨하지만 일관되고 끈질기게 규칙을 잘 지키도록 훈련하고, 관계의 기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상호 존중과 배려, 규칙 준수 등에 익숙해지면서 자신의 뇌를 더욱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하며 자기조절능력을 길러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모와 만나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조금만 조율하도록 조언하면 부모도 아이도 금방 변화하고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32쪽
불안정한 아이들. 이 아이들은 교사들이 가장 다루기 힘듭니다. 어릴 때 부모의 정서적 방치로 공허하고 우울한 내면의 상태이기에 무기력한 아이, 행동의 경계를 배운 적이 없어 제멋대로에 자기조절능력이 없고 충동적인 아이, 부모의 심한 불화나 감정적 폭력이 가득한 환경에서 자라 불안이 높고 타인을 믿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반드시 부모와 관계를 다시 조율하여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인간관계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익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의 성장과 성취에 대해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정신과 의사나 전문상담사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부모를 잘 설득해야 하지요. 그러려면, 먼저 아이에게나 그 부모에게나 교사인 내가 안전하고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33쪽
불안정한 아이들은 서로 뭉치거나 배척하고 날마다 갈등을 빚고 다양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교사의 권력을 이용해 상대 아이를 공격하려고 거짓말과 술수를 쓰며 교사인 나를 뒤흔들려 할 것입니다. 문제를 일으켜 놓고는 해결해 달라며 매달리기도 할 것입니다. 이때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교사인 나의 목표는 아이가 이런 일을 되풀이하거나, 반복하여 겪지 않도록 가르쳐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대개는 자기조절능력이 없어서, 또는 사회정서 능력이 미숙해서 잘못된 방식으로 대응하다가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그 일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도와주고 올바른 해결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35쪽
대다수의 선생님이 업무가 힘든 것은 그럭저럭 견딜 수 있지만, 가르치기 힘든 아이들과 수업해야 하고, 학급을 운영해야 하는 것은 매 순간 극한의 감정노동이라는 것에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순간순간 갖가지 갈등을 일으키고 사건에 휘말립니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고 교사의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하게 합니다. 게다가 학부모는 자기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학교나 교사를 원망하고, 심지어 민원을 넣고 고발하기도 합니다. 애쓰고 노력해봤자 아이는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요. 왜 내 아이만 가지고 난리냐며 학부모가 민원이라도 제기하면 누구도 함께 나서거나 도와주지 않고요. 상처받고 절망하는 순간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게 되면, ‘그래, 되도록 학부모와 얽힐 일은 만들지 말자, 힘든 아이들을 굳이 가르치려 하지 말자.’고 결심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는 순간부터 바로 교사의 따뜻한 심장을 서서히 굳어버리게 만드는 치명적인 나날이 시작됩니다. 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