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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위한 변명

이스라엘포비아, 새로운 형태의 반유대주의


  • ISBN-13
    979-11-985328-1-7 (03340)
  • 출판사 / 임프린트
    님로드 / 님로드
  • 정가
    20,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03-1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제이크 월리스 사이먼스
  • 번역
    김양욱
  • 메인주제어
    지정학
  • 추가주제어
    역사 , 중동사
  • 키워드
    #지정학 #역사 #중동사 #반유대주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시온주의 #이스라엘포비아 #이스라엘혐오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53 * 210 mm, 250 Page

책소개

 

『이스라엘을 위한 변명』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옹호하거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의 비극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진화하는 반유대주의의 변형이 문화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무기화했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인 제이크 월리스 사이먼스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반유대주의 급증과 그 뿌리가 수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스라엘을 비판한다는 명분으로 반유대주의를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좌파 정치인, 활동가, 언론인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이유는 유대인을 비방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이스라엘 국가를 비난하는 데 집중하는 반유대주의의 오랜 저주에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려스러운 새로운 트렌드가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그리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스라엘 혐오라는 용어는 최근 몇 년간 급증한 반이스라엘 정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정의를 확장하여 반유대주의의 정치화를 설명하기 위해 유대인 국가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종교를 포함시켰다. 이스라엘 혐오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이스라엘을 비하하는 것. 둘째, 행동주의자들이 유대인과 유대인 국가를 비난하며 이를 무기화하는 것. 셋째, 소련과 나치 시대의 선전을 활용하여 시온주의의 목표를 폄하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소련과 나치가 이스라엘의 야망을 폄하하며 활용한 정교한 선전 기술은 오늘날 많은 아랍인의 시각을 반영하는 폭력적인 반이스라엘 서사를 구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저자는 ‘히틀러는 팔레스타인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몇 년 만에 이스라엘, 유대인, 서방에 대한 아랍 국가의 광범위한 증오를 공식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번성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선전의 효과는 9/11 테러의 가해자 중 한 명이 ‘유대인의 세계 음모’를 믿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고 재판에서 주장하면서 주목받았다. 소련은 또한 아랍 세계에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반이스라엘 선전에 열을 올렸고, 전 세계 좌파 운동가들과도 유착했다.

 

저자는 서구 좌파가 이스라엘을 인종차별적 독재국가로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 철저한 비판을 가하는 한편, 이스라엘의 민주적 가치와 법치에 대한 존중, 특히 중동의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점들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호소하고 있다.

 

목차

1장

새로운 증오 · 12

우리는 너희의 피를 원한다 | 이것이 문제다 | 본말이 전도되다 | 당신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 돌연변이

 

2장

이스라엘 혐오(이스라엘포비아)란 무엇인가? · 36

 

3장

악마화, 이스라엘 혐오의 첫 번째 특징 · 42

여러분이 판단하십시오 | 유대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 살 만한 나라 | 비판적인 친구들 |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 | 역사와 후무스 | 새로운 시작 | 역사적 부당성 | 팔레스타

인의 미래 | 당신도 그렇게 한다 | 중간에 갇히다 | 두 가지의 낡은 방식 | 문어발 로비

 

4장

무기화, 이스라엘 혐오의 두 번째 특징 · 100

좌파의 이름으로 |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 슈뢰딩거의 유대인 | 모든 것이 인종에 관

한 문제 | 어느 세대의 정치 구호 | 크나큰 실수 | 미디어 속의 하마스 | 다 같은 백인 |

정체를 숨기다 | 언어 사용에 신중하다 | ‘인종차별’ 비난 | 검문소 점검 | 점령이라 말

할 수 있는가? | 미래의 지도자들

 

5장

조작과 왜곡, 이스라엘 혐오의 세 번째 특징 · 164

사우론의 눈 | 레모네이드 정상회담 | 탁월한 거짓말 제조기 | 행성 사이의 유대인 |

유유상종 | 히틀러의 망령 | 광기를 넘어서 | 러시아에서 불어닥친 증오의 바람 | 시온

주의의 비판자들 | 총과 올리브 가지 | 모스크바, 반이스라엘 선전의 중심 | 그들이 모

르는 것 | 테헤란, 이스라엘 혐오의 새로운 중심

 

6장

사실과 대응 · 226

여덟 가지 사실과 다섯 가지 대응 방안

 

마지막에 덧붙여 · 234

 

감사의 글 · 235

 

주 · 236

본문인용

p.18~19 반유대주의는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만화에서 유대인은 매부리코에 돈주머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페이긴과 베니스의 상인이 바로 그 모습이다. 스페인 종교재판, 동유럽 집단 학살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는 대부분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또 다른 문제다. 이스라엘은 이제 가스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익숙한 유대인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이스라엘은 이제 맞서 싸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이 조종하는 전투기가 아우슈비츠 상공으로 정기적으로 출격한다. 이스라엘 시민들은 육체적으로 강인하고 적극적이고 애국적이며 우디 앨런 식의 자기 비하하곤 거리가 멀다.

 

 p.24  20세기에도 반유대주의는 인종적인 문제로 대두되어 사이비 과학을 이용해서 도덕적인 우위를 주장했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나치 친위대 장교들은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을 멸살했기 때문에 인류애적 선의를 실현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을 세계의 미래를 위해 가장 처참한 일을 행하는 영웅으로 여겼다.

 

p.90~91  1881년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에 의해 끔찍하게 암살당했을 때, 유대인은 신과 같은 차르를 살해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 500만 명의 유대인이 전근대적인 살인과 윤간을 당했는데도 유대인 상인에게 경제 불황의 책임이 있다는, 보다 현대적인 음모론이 힘을 얻었다. 새로 즉위한 황제 알렉산드르 3세는 지독한 반유대주의자였다. 즉위한 지 1년 후인, 1882년 반유대인 법을 도입해 대규모 박해와 학살의 파장을 일으켰다. 그 효력은 자신과 같은 편견을 지닌 아들, 니콜라이 2세에 의해 유지되었다. 『시온 장로 의정서』는 니콜라이 2세 재위 기간에 처음 나왔고, 극우 민족주의 신문 『즈나먀』에 연재되었다. 1917년 혁명군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였던 니콜라이 2세는 이 위조된 문서를 가족 앞에서 큰소리로 읽기도 했다. 시대가 유대계 러시아인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많은 이가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수백만 명이 미국과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약 4만 5,000명이 시온주의를 받아들여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갔다.

 

p.94~95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와 그가 받은 30닢의 은화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세계 금융을 주무르는 유대인 은행가, 정치인을 매수하는 시온주의자의 상징이 되었다. 탐욕스러운 유대인이 다른 민족의 땅을 노리는 이스라엘인이 되었다. 11세기 기독교 세계에서 널리 퍼진, 뿔, 발굽, 꼬리가 있는 유대인에 대한 묘사는 이스라엘인을 현대판 악마인 나치로 묘사하는 데 반영되었다.

 

p.125~126  1948년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반유대주의자에 따르면 유대인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전적으로 나쁜 존재로 간주된다’라고 썼다.

 

그에게 미덕이 있다면, 그것도 그의 것이기에 악덕으로 변하고, 그가 행하는 일에는 반드시 오명이 따른다. 다리를 건설한다 해도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 다리는 시종일관 좋지 않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똑같은 행동을 해도 두 가지 경우의 다른 의미가 있다. 유대인은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을 내가 모르는 형편없는 품질로 오염시키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유대인은 그가 숨 쉬는 공기까지도 오염시킨다.

 

p.132  1945년 조지 오웰은 『영국의 반유대주의』라는 수필에서, 어느 ‘젊은 지식인, 공산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의 발언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래요, 저는 유대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결코 숨긴 적이 없습니다. 그들을 인정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반유대주의자는 아닙니다.」

거의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놀랍게도 이런 모순적인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p.134~135  이스라엘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유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들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이스라엘의 문제이지, 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이스라엘 때문에 제게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괴롭힘을 당하는 남학생이 남들보다 먼저 자신을 비하하는 것처럼, 결국에는 자신의 조국을 비난한다. 많은 사람이 이를 편견의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해 호응할 것 같아 우울해진다. 유대인 배우 스티븐 프라이는 반유대주의에 관한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스라엘인이 아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 서안지구 정착촌이 얼마나 싫은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영국인 친구들이 푸틴이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과하지는 않잖아요.”

 

p.143  아렌트가 기록한 것처럼, 제3제국의 문서는 추방, 멸종, 총살 또는 살해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았다. 대신에 ‘최종해결책’, ‘특별 대우’, ‘철수’, ‘재정착’, ‘동쪽에서의 노동’이라고 표현했다. 유대인 남성, 여성, 아이들의 제거에 책임이 있는 SS 친위대는 엄격한 ‘언어 규정’을 따랐고 이러한 완곡어법으로 평범한 사람도 대의라는 명분 아래 가장 타락한 범죄를 저지르는 데 쉽게 가담할 수 있었다.

사회 정의 운동과 나치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용어를 무기화하려는 시도는 종교 지도자와 선거 전략가에서 경영 컨설턴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최악의 상황에는 사회적 강압과 살인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p.161  현재의 학생들이 미래의 지도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 정의 운동의 대열에서 한 축을 담당한다. 명문 대학의 학위와 강한 신념으로 무장한 그들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에 자리를 잡고 대부분의 국민을 냉담하게 만드는 급진적 정체성 정치를 밀어붙인다. 이스라엘 혐오는 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어 새로운 정설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전 선동을 분별하는 데 필요한 중동의 역사나 지정학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유대인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쉽게 동화된다. 이런 방식으로 허용된 반유대주의는 각급 학교, 대학교, 좌파 미디어, 박물관, 미술관, 출판사, 헤드헌터, 광고회사, 영화사, 진보 성향의 소셜미디어 기업들을 통해 주류 사회에 스며든다. 평범한 사람들은 성별, 성, 인종, 노예제도, 식민주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제한된 신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비판받거나 ‘배제’당할 위험이 있다는 압박을 늘 받는다. 이 방정식에서 패자는 항상 똑같다. 유행에 맞지 않는 의견을 가진 사람과 유대인이다.

 

p.166~167  전쟁이 다가오자, 영국은 아랍의 분노가 번지는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체임벌린 정부는 아랍 측을 달래기 위해 시온주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한다는 백서를 발간했다. 그 조건은 세 가지였다. 유대인 이주의 엄격한 제한, 유대인에게 토지 매각 제한, 아랍인 다수가 통치하는 2개 민족으로 이뤄진 단일 국가 준비였다. 당시 유대계 팔레스타인인에게 이것은 재앙과도 같았다. 홀로코스트가 명백하게 증명하듯이, 시온주의 핵심은 자기방어 능력을 갖춘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는데, 아랍인 밑에 산다는 것은 수 세기 동안 극심한 고통을 인내하며 버텨 온 유랑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 된다. 곧이어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나치의 상상 속에서 유대인은 연합군 배후의 핵심 조종자였다. 베를린의 선전가들은 수년간 독일인에게 유대인 꼭두각시 주인이 영국, 미국, 러시아를 조종해 독일 국민과 갈등을 일으켰다고 선동하며 전쟁의 책임을 유대인에게 돌렸다. 1941년 독일 국방군이 북아프리카에서 중동까지 진출하면서 베를린의 전략가들은 이슬람의 이용 가치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만약 아랍인이 유럽인처럼 세뇌당한다면, 나치는 연합군 격퇴를 위한 발판으로 이 지역에서 반영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불길을 더 지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p.167~168  히틀러의 선전가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국의 지배력을 내부에서부터 약화시키려고 했다. 1941년 스토러는 그가 남긴 메모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총통이 유대교에 맞서 싸우기 때문에, 이슬람에서 총통의 입지는 확고했다.」

다시 말해, 유대인과 영국 지배자를 향한 기존 아랍인의 분노와 잠재되어 있던 무슬림의 반유대주의 편견이 결합해 이를 악용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었다. 유럽의 기독교 전통에서 종교적 반유대주의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나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이상적인 수단인 코란에는 오랜 유대인 증오가 내재되어 있었다. 이후 이슬람 세계에 불을 지핀 증오는 지역의 토착 문화, 종교, 정치적 뿌리와 기독교 문명의 고대 반유대주의가 더해져 나치에 의해 인종화되고 현대화되었다.

 

p.176  힘러와 팔레스타인 지도자는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1943년 힘러는 무프티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보를 보냈다.

「위대한 독일의 국가사회주의 운동은 처음에는 세계 유대인에 대한 투쟁을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나치의 국가사회주의 운동은 자유를 사랑하는 아랍인,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아랍인의 투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적에 대한 공동의 인식과 투쟁으로 독일과 전 세계의 자유를 사랑하는 무슬림 사이에 굳건한 기반이 구축되었습니다.」

 

p.179~180  이집트 주재 영국 영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중에 나치 독일에 대한 아랍인의 시각이 바뀌었고 허위 사실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수천 년의 세월을 함께한 유대인의 역사가 남아 있는 땅이 있음에도, 이스라엘을 식민주의자로 치부하거나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의 강제수용소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무슬림의 예루살렘 성지 출입을 제한한다는 허위 주장을 퍼뜨리고 나치 방식의 ‘대학살’을 이스라엘이 자행한다는 거짓 비난을 일삼으며, 시온주의자가 ‘로비’의 힘으로 세계 문제를 비밀리에 통제한다는 식의 이스라엘 혐오 서사를 오늘날까지 지속하고 있다. 

 

p.181  1942년 7월 유대인이 처음으로 소비보르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했을 무렵, 한 연설자는 「유대인이 우리를 죽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유대인을 죽이자」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면서, “우리의 재산을 강탈하고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음모를 꾸미는 유대인을 죽여야 합니다.”라고 성토했다.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아랍인이여, 무엇을 망설이고 있습니까? 유대인이 우리의 여자를 범하고 아이들을 죽이고 우리를 파멸시킬 계획을 꾸미고 있습니다. 무슬림의 종교는 유대인을 몰살시키는 것이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의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권리를 빼앗고 국가에 불행과 파멸을 가져오는 이 더러운 인종을 없앨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유대인을 죽여야 합니다. 그들의 재산을 불태우고 상점을 파괴하고 영국 제국주의 부역자의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유대인이 우리를 학살하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몰살하는 것입니다.

 

p.185  1928년 히틀러의 숭배자였던 광신적인 알 바나는 무슬림 형제단을 창설했다. 강경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은 하마스를 탄생시키고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에 영감을 주었다. 무프티도 무슬림 형제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실제로 그는 궐석의 상태에서 조직의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현대 이슬람 원리주의(지하디즘)에 근거한 이 단체는 후세이니가 남긴 오랜 독성을 지닌 유산의 통로가 되었다.

 

p.187~188  2006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9/11 테러 조직의 생존자, 무니르 엘 모타사덱의 공개 재판이 열렸다. 그와 함께 코란 강독 모임을 한 동료 학생은 증인으로 출석해 모타사덱이 ‘세계 유대인 음모론’을 맹신해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 제2차 세계 대전을 기획했다’라며 확신했다고 증언했다. 증인은 세계무역센터 테러범들이 뉴욕을 ‘유대인 세상의 중심’이라 여겨 특별하게 관심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모타사덱과 함께 거주했던 사람들은 그가 다가올 ‘거사’에 관해 자랑하면서, ‘유대인이 불에 타 죽을 것이고 결국 우리가 그들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출 것이다’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증언했다.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미국 최악의 테러 사건의 배후가 후세이니에 의해 중동에 전파되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무슬림 형제단에 의해 확산된 나치의 선전에 심취한 사람들임이 밝혀졌다.

 

p.188  제프리 허프는 “9/11 테러범은 좌파도 반제국주의자도 아니다. 부분적으로 그들은 중동에서 지속되고 있는 나치즘의 여파로 발생한 산물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치즘은 1945년 유럽에서 패배하면서 주요 정치적 동인으로서의 수명을 다했지만, 무슬림 형제단과 그 분파인 하마스나 알카에다에 빙의해 왕성한 사후 세계를 누렸고 반유대주의 음모론을 동력 삼아 서방에 대한 9/11 테러 공격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p.191~192  이슬람 세계가 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서구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히틀러의 패배는 독일과 다른 나라들이 단호하게 과거와 결별하고 반유대주의가 결정적으로 불신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중동에서는 그 반대였다. 많은 무슬림에게 히틀러의 패배는 연합국이 승리한 후 3년 뒤에 세워진 이스라엘로 인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이 영국의 지원을 받아 나라를 세운다는 나치의 선전이 실제로 옳았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였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옳았다면 유대인이 나머지 지역도 정복하고 이슬람교도도 학살해야 했을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거의 9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무슬림 사이에서 히틀러에 대한 애정은 아직도 남아있다. 201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칼럼니스트 이맘 알카와이플리는 『알 와탄』 신문에 비판적인 글을 썼다.

「아랍 세계에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즘에 대한 동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진실에 눈을 감고 선한 사람들을 악마로 표현하는 상상 속의 웃음거리일 뿐이다.」

홀로코스트 부정과 그 변형도 일상이 되었다. 충격적이지만, 나치의 유대인 학살 계획이 존재했었다면, 이를 지지했을 거라 이야기하는 아랍인의 목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2002년 이집트 국영 신문 『알 아크바르』에 이런 내용의 사설이 실렸다.

「프랑스 학자들은 그것이 조작에 불과하다고 입증했다. 나는 히틀러에게 불만이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형제여! 만약 당신이 그 일을 했다면, 그래서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유대인의 악행과 죄가 없는 세상에서 한숨 돌리게 되었을 것이다”.」

 

p.194~195  2020년의 아브라함 평화협정은 지정학적으로 획기적인 순간이었다. 협정이 체결된 다음 날, 아랍에미리트의 이슬람 학자 와셈 유세프f는 유튜브 방송에서 폭탄 발언을 이어 갔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모스크를 폭파한 것은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시아파를 자극해 수니파와 싸움을 붙인 것도, 이집트의 콥트 교회에 폭탄을 터뜨린 것도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이슬람국가(IS)를 탄생시킨 것도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아랍인들이 이런 조직들을 키운 것입니다.”

격정에 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이스라엘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세요. 당신들이 평화를 비방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세요. 서로에게 무기를 겨냥하는 동안 당신 자신을 돌아보세요. 당신들이 시리아를 불바다로 만들고 이라크에 폭탄을 터뜨렸고 리비아를 무너뜨렸습니다. 당신들이 레바논을 갈라놓아 서로 싸우게 했습니다. 시리아에서 아이들의 머리 위에 드럼통 폭탄을 떨어뜨렸어요. 그냥 입 닥치고 잠자코 계세요. 당신들의 공허한 구호에 이젠 진절머리가 납니다.

 

p.201~202  1967년과 1988년 사이, KGB는 세계를 이스라엘 혐오의 망상으로 뒤덮은 ‘시온주의자 정부’라는 대규모의 허위 정보 유포 작전을 실행했다. 이 작전은 소련의 세계관과 목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계획을 주도한 사람은 KGB의 수장, 유리 안드로포프로 1984년 사망할 때까지 소련의 최고 권력자였다. 부드러운 말투와 도회적이고 지적인 모습의 이면에는 강경 노선으로 반대자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냉혹한 모습이 있었다. 그를 현대 이스라엘 혐오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자신의 유대인 혈통을 평생 숨겼던 것이 사망한 뒤에 밝혀졌다.

 

p.221~222  그들은 유대인 개척자들이 침략군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폭도의 지배 속에 살아온 조상의 땅에 나라를 세우려는 열망을 갖고 모여든 난민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시온주의를 줄곧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와 비교했다(헤르츨이 언급한 것처럼, 유대인이 단지 원했던 것은 ‘매부리코를 가졌든, 검고 붉은 수염이 있든, 안짱다리를 가졌든 간에 멸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마침내 스스로 자유민으로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백인 우월주의 제국주의자들의 정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p.227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 이어진 반유대주의는 나치가 만든 인종 기반의 거대 이념에 포함될 때까지 수 세기를 지배했다. 이는 다시 유대인 국가를 향한 맹렬한 증오를 수반했다. 그 과정에서 베를린, 모스크바, 테헤란의 선전 조직은 광범위한 활동을 펼쳐 많은 사람의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능숙한 솜씨의 조작과 왜곡 작업을 실행했다. 지난 세기는 여러 면에서 현대적 사상을 형성하는 전쟁터였고, 전선의 선두에 몰린 것은 유대인이었다.

 

p.233  문화 전쟁이 격화되면서, 이스라엘이 사람들의 정치적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해결 과제 중의 하나다. 이스라엘 혐오가 제러미 코빈이 대표 시절, 노동당의 기저에 깔린 문화였을 때, 보수당 전당대회 중에 열린 이스라엘 친선 보수당 의원 행사에 대기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키어 스타머 경이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이스라엘 친선 노동당 의원 행사의 대기 줄은 보수당 행사 때보다 더 길었다. 이 모든 것이 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미래의 이스라엘이 악마화되거나 숭배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여러 면에서 놀라우며 또 어떤 면에서는 문제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영웅도 악당도 있는, 그저 평범한 나라로 취급받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스라엘 혐오가 종식될 수 있다.

 

 

서평

‘유대인 세상의 중심’ 뉴욕을 파괴하라. 9/11 테러

2006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9/11 테러 조직의 생존자 무니르 엘 모타사덱의 재판에서 증인들은 모타사덱이 ‘세계 유대인 음모론’에 근거해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 제2차 세계 대전을 기획했다’라는 주장에 몰입했다고 증언했다.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미국 최악의 테러 사건의 배후가 무슬림 형제단에 의해 확산된 나치의 선전에 심취한 사람들로 밝혀졌다.

‘9/11 테러범들은 좌파도 반제국주의자도 아니다. 부분적으로 그들은 중동에서 지속되고 있는 나치즘의 여파로 발생한 산물이다. 나치즘은 1945년 유럽에서 전쟁에 패배하면서 주요 정치적 동인으로서의 수명을 다했지만, 무슬림 형제단과 그 분파인 하마스, 알카에다에 빙의해 왕성한 사후 세계를 누렸고 반유대주의 음모론을 동력 삼아 서방에 대한 9/11 테러 공격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혐오란 무엇인가?

이 책의 원제는 ‘Israelophobia(이스라엘포비아)’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서 벌어진 유혈 충돌로 다시 점화된 반유대주의의 감정은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로 전이되어 새로운 혐오를 확산하고 있다. 이스라엘 혐오자들은 흔한 변명으로 ‘나는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다. 유대인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20세기 나치가 저지른 인류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로 인해 반유대주의가 지구상에 설 자리를 잃게 되자 유대인에 대한 증오의 불길은 이스라엘로 향했다. 현재 ‘유대인을 몰아내자’라는 구호나 주장은 인종차별로 낙인이 찍히지만, 유대인을 ‘강에서 바다까지’ 즉,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밀어버리겠다는 팔레스타인 저항 단체의 구호는 세계 곳곳의 반이스라엘 시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을 교묘히 피해 가며 공략의 목표를 이스라엘로 수정한 것이다. 이런 전략 방향은 현재까지 아주 성공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예멘 분쟁, 미얀마 사태, 중국과 대만 문제와 같은 전 지구적 이슈 가운데 이스라엘은 이 모든 의제를 압도할 만한 관심과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누가, 왜 이스라엘을 악마화하는가? 

왜 이스라엘은 이렇게 비난당하고 악마화되는 것일까? 저자는 그 원인을 인류에 DNA처럼 남아있는 반유대주의도 요인 중에 하나지만 중동에서 제국주의가 물러난 진공 상태에서 벌어진 민족과 종교 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로마의 팔레스타인 정복 이후 조상의 터전을 잃은 유대인은 ‘선택받은 민족’과 ‘예수를 팔아넘긴 자’라는 이중적 인식 아래 박해와 조롱을 받았고 결국 20세기에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인 참상을 겪었다. 시온으로 돌아가려는 유대인의 염원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실현되었지만, 팔레스타인 정착민들과 생존 투쟁이 뒤따랐다. 중동 지역에서 영국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아랍 민족주의자들의 열망과 지정학적인 분쟁을 일으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던 나치 독일의 이해가 일치해 유럽을 넘어 중동 지역에서도 ‘유대인 절멸’의 시나리오가 진행되었다. 전쟁 이후 나치의 공백을 메운 것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냉전 시대에 미국의 궤도로 빨려 들어간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아랍 국가들을 지원했지만, 이들이 이스라엘에 궤멸적인 패배를 당하자 큰 충격에 빠졌다. 이후 소련은 정보기관 KGB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적극적 조치’라는 흑색선전을 펼쳤는데, 이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공격했던 선전 기법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유대인에서 시온주의자로 공격 대상을 집중했지만 오래된 반유대주의적 편견은 그대로였고 이스라엘을 새로운 혐오의 숙주로 삼아 이스라엘 혐오(이스라엘 포비아)라는 바이러스를 세계에 퍼뜨렸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서구의 좌파 진영은 낡은 반유대주의 정서를 되풀이했다. 유대인이 세계 경제, 금융, 언론을 장악한다는 세계 유대인 음모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체성 정치의 일환으로 인종 문제, 탈식민주의, 젠더 이슈와 같은 ‘사치스러운 신념’에 집착하며 팔레스타인을 진보 정치의 핵심 의제로 삼았다. 반유대주의가 이스라엘 혐오(포비아)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대학은 혐오 확산의 온상이 되었다. 미국과 영국의 대학에서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은 대학 캠퍼스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대학가에 불어닥친 사회 정의 운동은 유대인 학생과 교수들을 배제했고 이스라엘을 억압적인 인종차별 국가로 묘사하며 탈식민주의 시대 이후에 생겨난 새로운 정착민 식민 지배자의 전형으로 낙인찍었다.

 

사회 정의 운동을 트로이 목마 삼아 이스라엘 혐오를 조장

 

1990년대 소련의 붕괴로 이데올로기 경쟁은 종말을 고했지만, 서구 사회에서 정체성 정치의 영향력은 미국의 민주당과 영국의 노동당을 통해 크게 발현되었다. 반유대주의적 행보로 논란을 빚은 제러미 코빈이 영국 노동당의 대표가 되면서 영국 사회에서 반유대주의 논쟁은 거세졌다. 핵무장 반대 운동과 마르크스주의의 주변부에서 성장한 노회한 사회주의자인 제러미 코빈은 영국 공산당 선언에 동조한 『모닝스타』 신문의 칼럼니스트로 오랫동안 일했다. 소련 대사관과 소비에트 정보국과도 인맥을 유지한 제러미 코빈은 소련의 반유대주의 선전과 이스라엘 혐오에 영향을 받았다. 온라인 행동주의로 청년 세대의 이목을 끈 제러미 코빈의 영향력은 그가 노동당 대표에 오르면서 절정에 달했다. 제러미 코빈을 연호하는 청년 세대에 그의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 혐오의 정서가 녹아들었다. 그동안 종교적 증오, 외국인 혐오, 극우 민족주의라는 익숙한 언어와 연결되었던 반유대주의는 자의식이 강한 좌파의 이름 아래 이스라엘 혐오로 위장했다. 이런 돌연변이는 오래된 변종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자메이카계 노동당 의원 다이앤 애보트는 ‘유대인은 빨간 머리처럼 약간의 차이가 있는 백인일 뿐’이라며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었다. 노동당에서 징계를 받긴 했지만, 2천 년 세월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경시한 사례로 정체성 정치의 이념이 영국과 서구 사회에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가 사회를 권력을 지닌 자본가와 억압받는 노동자 간의 투쟁으로 바라보았다면, 정체성 정치의 젊은 추종자들은 기득권을 가진 인종과 힘없는 소수 인종과의 투쟁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공통분모는 피해 의식이다. 두 세대 모두 자신이 싫어하는 모든 것을 이스라엘에 투영하고 있다.’

 

나치에서 소련 그리고 이란까지, 이스라엘 혐오의 실체와 진실

 

‘유대인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이고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은 선동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흑색선전은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한 선전 기관에서 조작되었고 막대한 인원과 자원이 투입되었다.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보이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향한 혐오 선전은 2개의 권위적인 정권에서 시작되었는데, 바로 나치와 소련이다. 나치의 상상 속에서 유대인은 연합군의 배후 조종자였다. 중동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간파한 히틀러는 영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도자 후세이니와 손을 잡고 중동에서 유대인 말살 계획을 세웠다. 비록 전쟁에서 나치는 패배했지만,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이스라엘 혐오로 이어져 소련과 이란의 선전에 활용되었다. 미국과 냉전을 주도했던 소련은 KGB는 물론 동유럽 위성 국가들의 정보기관까지 활용하며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KGB의 수장으로 이스라엘 혐오 공작을 주도하며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유리 안드로포프는 사망할 때까지 그의 유대인 혈통을 숨겼다. 그는 현대 이스라엘 혐오의 아버지로 불린다. 중동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려는 소련의 노력은 정교한 선전 선동으로 서구 좌파들을 포섭하며 이스라엘 혐오를 전 세계에 확산시켰다. 이스라엘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정치, 미디어, 금융 시장을 주무른다는 ‘세계 유대인 음모론’이 바로 소련의 선전 선동에서 비롯되었다. 모스크바의 선전 활동은 베를린의 나치 선전 활동보다 더 성공적이었다. 유대인에게 민족 해방 운동의 의미를 지닌 시온주의를 걷어낸 공간에 대신 인종주의, 파시즘, 나치즘, 대량 학살, 제국주의, 식민주의, 인종차별을 연계한 선전은 성공적이었고, 소련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스라엘 혐오 확산을 위해 사용했다. 오래된 반유대주의와 유대인에 대한 고정 관념을 결합한 선전 활동은 전 세계에 이스라엘 혐오의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소련이 붕괴하자 힘의 공백이 생긴 중동의 지정학적 공간에 이란이 이스라엘 혐오의 기수로 자처했다.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팔레스타인 저항 단체와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며 이 지역을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낡은 편견과 오래된 증오를 극복하기는 불가능한 것일까?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로 민주적 제도, 자유, 인권을 보호해왔다. 하지만 적대적인 주변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불법성, 백인우월주의, 인종주의를 주장하며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가 없다’라고 비난한다. 물리적 충돌과 분쟁으로 이어지는 극한 대립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평화 프로세스 정착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하마스와의 충돌이 결국은 양측에 큰 상처만을 남긴 채 마무리되고 있다. 이 지역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합의와 타협이 있어야만 낡은 편견과 오래된 증오를 극복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어느 한쪽이 사라지는 무한 투쟁의 장이 아니라 두 국가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이렇게 평화와 공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저자의 주장처럼 이스라엘이 음모론의 주인공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처럼 악당도 영웅도 있는 평범한 나라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이스라엘 혐오도 사라지게 된다.  

 

저자소개

저자 : 제이크 월리스 사이먼스
제이크 월리스 사이먼스 Jake Wallis Simons
영국의 저널리스트, 소설가. 런던 출생.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피터스 칼리지에서 영문학 전공.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서 문예창작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BBC를 비롯한 영국 주요 일간지의 해외 특파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주이시 크로니클』의 편집장으로 이란과 모사드에 관한 세계 특종 보도로 유명하다. 『스펙테이터』의 칼럼니스트이고 스카이뉴스 Sky News와 BBC 라디오 4, 월드 서비스에 논평가로 출연하고 있다.
번역 : 김양욱
런던대학 소아스와 런던시티대학교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글로벌 미디어를 전공했다. 국립영상제작소, 데이콤, GS홈쇼핑을 거쳐 티알엔에서 미디어콘텐츠사업부장을 역임했다. 『인터넷 자유 투쟁』(공역), 『분노와 희망의 네트워크』, 『옥스퍼드 초엘리트』(공역)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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