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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민주항쟁사

4·3, 4·19, 5·18, 6·10 한 권으로 끝내는 4대 민주항쟁!


  • ISBN-13
    979-11-6810-347-4 (4391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식회사 태학사 / 주니어태학
  • 정가
    16,8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5-04-1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우일문
  • 번역
    -
  • 메인주제어
    어린이, 청소년 교양: 역사, 과거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어린이, 청소년 교양: 역사, 과거 #현대사 #항쟁 #한국사 #제주4.3사건 #5.18민주화운동 #4.19혁명 #6.10민주항쟁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청소년
  • 도서상세정보
    148 * 215 mm, 232 Page

책소개

아무리 강한 권력자라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다!

 

위기에 저항하는 뜨거운 외침,

4·3, 4·19, 5·18, 6·10 

한 권으로 끝내는 4대 민주항쟁!

 

대한민국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항쟁과 연대의 역사다. 지금 우리 사회의 성숙한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닌, 평범한 국민이 모여 부정과 억압에 맞서 쟁취한 역사적 산물이다. 제주 4·3 사건부터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항쟁까지,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가 지워질 뻔한 순간마다 항상 국민이 힘을 모아 목소리를 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민주항쟁사》는 4·19 혁명부터 6·10 민주항쟁까지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어 놓은 4번의 항쟁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살펴본다. 항쟁은 왜 일어났고, 그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 교과서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까지 생생하게 담아냈다. 독자들은 역사의 주인이 국민임을 확인하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국민은 어떻게 나쁜 권력에 맞섰을까?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4대 항쟁 이야기! 

 

국민들은 일제강점기, 분단, 군사 정권을 거치는 순간마다 훼손된 민주적 질서의 회복을 위해 들고일어나 권력자를 끌어내렸다. 하지만 이는 ‘미완’의 승리다. 권력자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으나, 군사 쿠데타가 이어지며 혁명의 성과가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주 4·3 사건부터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항쟁이 이어졌고, 촛불 혁명도 진행 중이다.

 

제주 4·3 사건의 배후에는 권력자였던 이승만과 미군정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수탈당하며 궁핍한 생활을 이어온 제주도 사람들은 이승만과 미군정이 보낸 응원경찰과 극우 단체의 횡포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무장대와 주민들은 권력에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제주 4·3 사건은 국가폭력이 국민적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의 제주도 탄압은 대한민국 단독 정부 수립과 연관이 있다. 권력을 쥐고 싶었던 이승만은 단독 정부 수립 과정에서 부정 선거를 저질렀다. 부정 선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사오입’ 개헌안 등으로 영구집권을 노린 이승만의 행동에 분노해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학생들은 대구 2·28 민주 운동과 3·15 마산 의거를 일으켜 나쁜 권력에 맞섰다. 이는 4·19 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났으나,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대한민국의 뼈아픈 역사, 군사 정권의 시작이다. 군사 정권 시기에 민주주의를 외친 많은 사람이 있었다.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애썼던 전태일의 죽음과 긴급조치에 저항하며 일으킨 부마 민주항쟁은 훼손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저항의 외침이었다. 김재규의 총탄에 박정희가 죽었지만, 전두환이 권력을 쥐는 과정에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광주 지역을 휩쓴 잔혹한 폭력의 그림자는 국민의 마음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상처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박종철과 이한열의 사망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국민은 참지 않고 6·10 민주항쟁을 벌였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될 때마다 국민이 나서서 손으로 직접 바로잡은 것이다.

 

민주주의를 왜 알아야 할까?

항쟁으로 꿰뚫는 대한민국 현대사!

 

2024년 12월 3일, 새로운 비극이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국가 권력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권리를 또 침해한 것이다. 과거의 항쟁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거리에 모여 평화적으로 응원봉을 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소년이 현대사와 민주주의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과거의 경험으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스스로가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항쟁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꿰다 보면 민주주의가 왜 중요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형태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간 교과서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역사도 담겨 있어 대한민국 현대사를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차례

 

들어가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주 4·3 사건

제주도는 어떤 섬이었을까

- 길고 긴 수난의 역사

한반도는 어떻게 남북으로 나뉘었을까 

- 미군정의 등장

친일파는 어떻게 한국인을 괴롭혔을까 

- 모리배와 간상배

3·1 사건은 왜 일어난 것일까

- 경찰의 무모한 총격

응원경찰은 왜 제주도로 모였을까

- 제주도를 쓸어버린 그림자

극우 단체는 왜 제주도로 갔을까

- 서북청년단과 대동청년단의 행패

누가 제주도를 공격했을까

- 4월 3일의 비극

평화 회담은 어떻게 물거품이 되었을까 - 오라리 방화 사건과 경찰특공대의 만행

제주도의 목소리는 어떻게 가로막혔을까 - 잠들지 않는 남도

4·3 이후 ― 4·3의 진실을 밝혀라!

 

4·19 혁명

대한민국 정부는 어떻게 세워졌을까

- 해방과 단독 정부

이승만은 어떻게 개헌안을 통과시켰을까

- 거짓말과 조작의 시작

사사오입은 무엇일까

- 희한한 논리와 억지

고등학생도 민주화 운동을 했을까

-대구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

어떻게 막걸리와 표를 바꿀 수 있었을까

- 3·15 부정 선거

김주열의 죽음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혁명의 불씨가 되다

누가 시위를 주도했을까

- 4·19 혁명

이승만은 어떻게 쫓겨났을까

- 하와이로 쫓겨난 대통령

4 ·19 이후 ― 줘도 못 먹은 민주당

 

5·18 민주화 운동

쿠데타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 5·16 군사 쿠데타

박정희는 누구일까

- 다카기 마사오와 공산주의자

박정희는 이승만과 달랐을까

- 장기 집권의 욕심

박정희는 왜 긴급조치를 발동했을까

- 유신과 긴급조치의 나라

서울의 봄은 정말 봄이었을까

- 12·12 군사 반란

왜 진압 준비부터 했을까

- 신군부의 치밀한 계산

광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 시민을 죽인 군인들

광주 시민들은 왜 끝까지 싸웠을까

- 시민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5 ·18 이후 ― 5 ·18을 기억하려는 기록

 

6·10 민주항쟁

전두환은 누구일까

- 새로운 군사 정권의 등장

국민에게 〈헌법〉은 어떤 의미였을까

- 직선제 개헌 투쟁

박종철은 어떻게 사망한 것일까

- 대공분실이 숨기는 비밀을 찾아서

진실은 어떻게 조작되었을까

- 거리로 나온 국민의 외침

전두환은 무엇으로 민주주의의 입을 막았을까

- 이한열의 죽음

국민은 어떻게 독재와 맞섰을까

- 6·10 민주항쟁

명동성당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명동성당 싸움과 6·29 선언

6·10 이후 ― 국민이 만든 직선제

 

더 알아야 할 민주항쟁

 

후기

이미지 출처

본문인용

책 속에서

 

일제강점기 제주도로 온 일제의 수탈도 조선과 다르지 않았다. 1932년 1월 7일 일제의 횡포를 참다못한 세화리 해녀 300여 명이 시작한 시위는 이후 1만 7000여 명이 합세해 제주도 최대 항일 운동으로 기록됐다. 이를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이라고 한다. 1945년이 되어 일제에서 해방되었지만, 제주도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21쪽

 

1947년 1월 서귀포 법환리 출신 재일동포들이 전기 가설을 위한 자재를 고향에 기증했다. 그런데 자재를 싣고 제주도에 입항한 배를 경찰이 밀수선으로 적발해 자재를 압수했다. 이 사건에 제주 경찰 총책임자인 제주경찰감찰청장이 연루돼 파면됐고 미군정 장교 등도 의심을 받았다. 제주도 사람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모리간상배에게 자기 재산 빼앗기는 걸 견딜 수 없었고, 경찰도 미군정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 32쪽

 

3·1 사건과 총파업을 겪은 후 제주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전북 출신 극우파 유해진이 제주도지사로 임명되었고, 서울 출신 김영배가 제주경찰감찰청장으로 부임했다. 도청과 감찰청 간부도 제주도 출신을 배제하고 육지 출신으로 바뀌었다. 특히 유해진은 부임 당시 ‘서북청년단’ 7명을 경호원으로 데려왔다. 서북청년단은 서북지방, 즉 평안도나 황해도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만든 극우 반공 단체다. 이들이 나중에 제주도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리는 역할을 한다. -42~43쪽

 

제주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초토 작전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펼쳐졌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미국의 원조를 받기 위해서는 가혹한 방법을 써서라도 제주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진압군은 산간마을에 사는 주민에게 해안마을로 내려와 경찰 조사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순진하게 해안마을로 내려온 주민들은 무장대 근거지를 대라며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64쪽

 

이승만은 미군정청에서 일하던 관리들을 정부 관리로 등용했는데 대부분 일본 총독부 관리 출신들이었다. 오랜 해외 생활로 국내 정치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해방 후부터 친일파와 손을 잡았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79쪽

 

전쟁 중에도 이승만은 종신 대통령을 굼꿨고, 자신이 다음 대통령이 될 길을 찾고 있었다. 이때는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직접 선거’가 아닌,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간접 선거’였다. 그런데 이승만은 국회와 사이가 단단히 틀어져 간접 선거로는 당선 가능성이 없었다. 방법을 찾던 이승만 정권은 국회에 직선제 개헌안을 냈다. -84쪽

 

대구 지역 고등학생의 시위는 전국에서 최초로 독재 정권에 맞선 학생 시위였다. 이를 ‘대구 2·28 민주 운동’이라고 부른다. 이에 자극을 받아 3월 1일에는 서울에서 “공명선거 실시하라!”라는 유인물이 ‘전국대학생투쟁위원회’ 명의로 뿌려졌다. 3월 5일 서울, 3월 7일 부산, 3월 8일 대전, 3월 10일 수원 등 시위는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외친 ‘학원의 자유’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이승만 정권을 상대로 ‘공명 선거’를 외치는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했다. 어른도 하지 못한 민주주의 씨앗을 고등학생들이 뿌렸다. -96~97쪽

 

3월 15일의 부정 선거, 폭력 선거를 보다 못한 경남 마산 시민과 학생이 가장 먼저 시위를 벌였다. 민주당 마산시당도 한창 선거 중인 오전 10시 30분, 부정 선거를 폭로하며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거리로 나왔다. 오후 7시 30분에는 1만 명의 학생과 시민이 개표 중인 시청으로 몰려갔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소총을 쏘고 최루탄을 터트렸다. 결국 경찰이 쏜 총에 8명이 죽었고 수백 명이 잡혀갔다. 행방불명된 사람도 있었다. -102쪽

 

4·19 혁명은 2월 28일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시작해 3·15 마산 의거를 거쳐 서울에서

대학생이 응답했고 시민과 교수단이 합류해 완성됐다. 그러나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뒷짐 지고 구경만 하다가 거저 정권을 인수했다. 정치인들은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그 못난 정치인들 때문에 민족의 비극은 다시 싹텄다. -119쪽

 

민주공화당은 부정 선거로 얻은 표로 박정희가 대통령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3선 개헌안’을 통과시켰고, 대학생 시위를 막기 위해 전국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하지만 휴교 조치되었던 학교들이 개학하면서 다시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노동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이다. -142쪽

 

5·18 민주화 운동 기간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열흘간이다. 그러나 그 기간은 군인들이 총칼로 선량한 민주시민을 제압한 기간일 뿐이다. 박정희와 똑같은 방식으로 정권을 차지하려는 전두환과 신군부의 등장이, ‘김대중이 광주사태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라는 뉴스를 도배한 신군부의 거짓말이 광주 시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고, 시민항쟁을 만들었다. -174쪽

 

1980년 10월 22일 국민투표에서 전두환 정권의 ‘헌법개정안’은 95.5퍼센트의 투표율과 91.6퍼센트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압도적인 찬성률에 민주화 운동 세력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계엄령 아래에서 군대와 경찰, 통반장의 선거 개입은 예상된 일이었다. ‘개정헌법’에 따라 전두환은 국회와 정당을 해산했고,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어이없는 입법기구를 만들어 156일 동안 국회를 대신해 입법부 기능을 하게 했다. -185쪽

 

아무리 포악한 전두환 정권도 한국 천주교의 본산인 명동성당과 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경찰은 물러났다. 명동성당 농성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1000여 명의 대학생은 남대문시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성당 안에서 천막생활 하는 상계동 철거민들은 농성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6월 10일 하루로 예정되었던 국민대회는 국본 지도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6·10 민주항쟁’으로 진화했다. -214쪽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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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우일문
지은이 우일문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인문과 사회 분야 편집자 및 기획자로 일했다. 장편소설 《고산자 김정호》을 비롯해 어린이, 청소년 대상의 역사 동화와 역사 교양서도 쓰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민주항쟁사》는 4·19 혁명부터 6·10 민주항쟁까지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어 놓은 4번의 항쟁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살펴본다. 항쟁은 왜 일어났고, 그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 교과서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까지 생생하게 담아냈다. 독자들은 역사의 주인이 시민임을 확인하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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