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만 아이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싶어 한다. 불행하게도 아이를 사랑하고, 선의를 가진 부모도 아이를 비난하고, 창피 주고, 꾸짖고, 조롱하고, 위협하고, 매수하고, 낙인찍고, 처벌하고, 설교하고, 훈계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부모들 대부분이 말이 가진 파괴적인 힘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옛날에 자기 부모에게 들었던 말을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입으로 말하고 있다. 본래는 입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던 말을, 자기도 좋아하지 않았던 어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5-6쪽
부모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떻게 대화를 풀어야 할지 몰라 짜증을 낼 때가 자주 있다. 다음 이야기를 보자.
“어디 갔었니?”
“바깥에요.”
“뭘 했니?”
“아무것도 안 했어요.”
때에 따라서는, 이런 대화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자녀를 대하려고 노력하는 부모를 얼마나 맥 빠지게 하는지 모른다. 24쪽
부모와 아이가 나누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보면, 그들이 주고받는 말에는 굉장한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대화는 마치 서로 다른 두 개의 독백처럼 들린다. 한 사람은 나무라며 지시하고, 또 다른 사람은 부인하고 변명한다. 25쪽
부모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감정을 함께 나누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도 자주 있다. 불행한 일이다. 31쪽
이렇게 감정을 숨기고 꾸민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꾸미거나 숨기지 않은, 진실 그대로의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감정에 대한 교육은 아이가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깨닫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45쪽
개성을 직접적으로 칭찬하는 것은 마치 곧장 내리쬐는 햇빛 같아서, 눈을 불편하게 하고 부시게 한다. 눈앞에서 너는 훌륭하다, 천사 같다, 너그럽다, 겸손하다고 하면 누구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꼭 그렇지는 않다고’ 조금은 부정하려고 할 것이다. 55쪽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그래서 감정이 매우 격렬하게 요동치는 한가운데서도 거의 아무런 맞대응을 하지 않았을 때, 이를 제일 자랑스러워한다. 혹자는 그것을 인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부모한테서 배워야 하고, 또 배워서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감정에 맞게 행동하는 태도이다. 아이는 부모한테서 진짜 감정을 비춰 주는 표현을 듣고 싶어 한다. 70-71쪽
아이가 마음으로 얼마나 이해하고 따르느냐에 따라, 우리가 가르치고 싶어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가치라는 것은 그저 가르친다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치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경쟁하는 가운데 몸에 배고, 또 몸의 일부가 된다. 118쪽
“오늘 힘들었나 보구나.”
“누가 널 못살게 굴었나 봐.”
질문은 호기심을 전제로 하지만, 사실에 대한 진술은 공감을 전달한다. 부모가 공감하는 표현을 했다고 해서, 아이의 시무룩한 기분이 금방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이는 자기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모의 말에 담긴 사랑의 감정을 남김없이 빨아들일 것이다. 122쪽
부모가 감정과 생각을 고려해 주지 않는 아이는 자기의 생각이 어리석거나 주목받을 가치가 없으며, 자기는 사랑을 할 수도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존재라고 결론짓는다.
부모가 말을 귀담아들어 주고, 격한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해 주면, 아이는 자기의 견해와 감정이 존중받는다고 느끼고 나아가 자신을 존중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 준다. 자신의 가치를 느끼게 되면, 아이는 사건과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 좀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126쪽
아이가 불필요한 죄책감을 갖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대할 때, 부모는 숙달된 정비공이 고장 난 자동차를 다루듯 해야 한다. 정비공은 자동차 주인에게 창피를 주지 않는다. 어디를 어떻게 수리해야 하는지만 지적한다. 그는 소음이 들리고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자동차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소리로 자동차 상태를 파악한다. 다시 말해 자동차의 고장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 본다.
마음껏 생각을 드러낸 뒤에도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잃을 위험이 없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아이는 거기서 커다란 위안을 얻는다. 241쪽
아이는 거저 크지 않는다. 늘 의심과 죄책감, 특히 불안 같은 혼란스러운 생각과 감정을 겪으며 성장한다. 아이는 부모에게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부부 싸움에서 고통을 받고, 죽고 또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근심에 빠지고 혼란스러워한다. 부모가 아이의 불안을 모두 다 해소해 줄 수는 없지만, 좀 더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아이가 걱정하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해 주고, 혼란스럽고 두려운 사건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시키면 된다. 2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