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대비 퀀텀의 절대적인 연산속도 우위는 군사, 정보, 암호, 통신 모든 체계에서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결정적이다. 만약 중국이 미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퀀텀 우위를 확보한다면 미국의 국가안보, 금융, 기업 시스템은 모조리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당할 수밖에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퀀텀기술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이 바로 ‘퀀텀모프 패권을 위한 신냉전’의 본질이다.
- 〈이 책 사용 설명서〉 중에서
이와 같이 혼란스러운 전환기에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세력 간의 합종전횡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약자는 강자에게 손을 내밀고, 강자는 좀더 강한 진영을 만들기 위해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손을 잡는 야만의 시대가 반복된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러시아 군사협정 체결과 이란-하마스-헤즈볼라-후티의 연대를 해석하면 답이 나온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은 전환기의 혼돈으로 인해 이들의 활동 여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제1장 불량국가 전성시대〉 중에서
겉보기엔 무력충돌과 세력 대결처럼 보이는 신냉전의 이면에는 이렇듯 조용하게, 그러나 거센 흐름으로 미래 먹거리 선점과 관련된 퀀텀모프 패권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차세대 퀀텀문명을 지배할 퀀텀기술을 선점하고 시장을 독점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피 튀기는 경쟁이다. 어찌보면 전면에 드러난 무역 관세전쟁이나 대만문제를 둘러싼 무력시위보다 이것이 더 신냉전의 본질에 가깝다. 이런 경쟁은 미국과 중국의 일대일 대결에서 시작해, 점차 세계 전체가 서방 대 반서방 양 진영으로 갈라지고 서로 간에 진흙탕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다.
- 〈제2장 신냉전의 지정학과 지경학〉 중에서
다시 말해서 미국은 여태껏 유지해온 누구나 등록만 하면 회원으로 인정하는 정책을 폐지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한 허가제로 운영되는 ‘멤버십 클럽형’ 연대의 형성을 추구하고 있다. 말로만 미국의 우방국이 아니라 지정학·지경학적 전략 수행에 있어서 끝까지 자기 몫을 다하는 ‘진짜 친구 국가’를 구별해서 그에 걸맞게 대우하겠다는 의도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경제, 군사를 비롯해 미래 성장을 주도할 퀀텀모프 관련 첨단기술 분야에 관한 지식과 시장의 개방은 진짜 친구 국가들만 접근을 허용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제3장 거센 풍랑 속의 대한민국호〉 중에서
마라라고 회담 이후에도 시진핑에 대한 호감이 지속되었다는 점, 블러핑용 트윗과 언론플레이는 넘쳐났지만 실제 액션에 들어간 대중국 압박 정책은 별로 없었다는 점, 거의 모든 블러핑이 중국의 경제적 양보와 미국의 실리에 치중되어 있었다는 점을 볼 때, 트럼프가 처음부터 중국을 미국의 코밑까지 따라붙은 경쟁자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트럼프는 전임 대통령인 클린턴이나 오바마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중국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트럼프 또한 ‘미국의 의지를 거스를 국가는 이 세상에 없다.’라는 패권국가적 나르시시즘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런 기대는 베이징 회담에서 산산조각 났다. 그 회담에 동행했던 맥매스터와 후임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자서전을 보면, 트럼프는 이때부터 중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규칙 기반 세계질서와 자유시장경제를 뒤엎으려는 야심을 오랫동안 기획·설계해왔음을 깨달았다.
-〈제4장 미국, 압도적 우위 대전략〉 중에서
트럼프가 남발한 블러핑이나 부당한 경제정책과 관행에 대한 수정 요구는 시진핑이 죽자고 싸울 이슈가 아니었다.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같은 개혁개방의 지도자들이라면 대미 유화 정책으로 압박의 수위를 낮추고 도광양회 전략으로 실력을 더 양성했을 터이다. 하지만 시진핑은 어떤 압박이 있더라도 시간과 추세는 중국의 편이라고 인민을 독려하면서 이에 적극 대항하기로 결정했다. 미국과 신냉전을 치르기로 한 시진핑의 이 결심은 중국 현대사의 시계를 되돌린 결정적인 계기인 동시에, 금세기의 최고로 중요한 정책 결정 중의 하나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제5장 중국, 중화민족 부흥 대전략〉 중에서
푸틴은 상대방과 대중들에게 자신을 절대 권력자로 각인시킴으로써, 도전 의지를 꺾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요약하면 푸틴은 ‘용맹하고 강인하며 동시에 잔인하다.’라는 이미지를 대중과 협상 상대에게 인식시킴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중세의 왕이나 제정기의 황제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미지 메이크업 수법이다. 에른스트 칸토로비치가 주창한 ‘왕의 두 몸 이론(The King’s Two Bodies Theory)’을 적극 활용한 셈이다.
-〈제6장 러시아, 유라시아 제국주의 대전략〉 중에서
앞서 밝힌 대로 중국은 대만 통일을 위한 무력충돌이라는 도박을 감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대만을 병합할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홍콩 합병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대만 국민과 그들이 뽑은 지도자가 스스로 중국의 한 지역으로 흡수되길 원하는 경우이다.
-〈제7장 미국 vs. 중국, 태평약 지역 패권전쟁〉 중에서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담보로 중국과 북한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석유와 가스 에너지, 그리고 곡물이라는 카드를 제공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무기 생산과 공급, 핵위협 제고 및 ‘핵방패국’으로서의 역할을 마다 않을 것이다. 이란은 여태껏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하여 양성해둔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을 장기판의 졸을 부리듯 부려 미국과 이스라엘을 견제할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3국 대전략이 충돌하는 체스보드 위의 전체 상황이다.
-〈제8장 미국 vs. 러시아, 신냉전 전략의 충돌〉 중에서
미국이 어중간한 타협과 양보로 남한을 북한의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상황이 온다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러한 상황이 오기 전에 남북 간에 직접적인 전쟁으로 맞붙는 게 낫다. 왜냐하면 미국과 한국이 여전히 핵작전 동맹국으로 건재할 때 남과 북이 전쟁하면, 남한은 엄청난 인적·물적 타격을 입을지 모르지만 북한은 그야말로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이 미국의 희생양 전략의 제물이 되면 말 그대로 남한은 북한의 노예가 된다. 동맹국에게 버림받은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되는 것이다.
-〈제9장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 중에서
불행히도 한국의 세계 대전략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꼭 집어 대답할 만한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한국이 퀀텀모프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다음 세기의 선진 강국이 되기 위한 항해 지침, 즉 세계 대전략 수립에 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한국의 세계 대전략을 완결하진 못해도, 오늘날 해결해야 할 한국의 긴급한 과제를 검토하고 그것의 해결방안으로 어떤 전략을 구축해야 할지 논할 생각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대한민국호가 미래의 안전하고 풍요로운 항구에 정박하기까지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해내야 할지를 명징하게 파악할 수 있을 터이다.
-〈제10장 대한민국의 세계 대전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