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묻는다. 다만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시도한 이가 누구인가? 오늘날 자신의 이익과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를 팔고 국민을 파는 사이비 정치인 그리고 사이비 지식인에게 김옥균의 일생이 작은 울림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 세밀한 고증을 위한 자료 수집에도 철저히 매진했지
만, 책상 앞에서 머리로만 쓴 글이 아니라 저 현장에서 가슴으로 쓴 글로 독자들이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009_저자의 말
1894년 3월 25일 나가사키 항구에는 검은 구름이 잔뜩 찌푸린 채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 먹장구름 사이로 한줄기 햇빛이 틈을 뚫고 흘러나오다가, 다시 구름에 가려 빛을 잃어버렸다. 상해행 사이쿄마루(西京丸)증기선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에 먹을 덧칠하고 있었다. 부둣가에는 상하이로 떠나는 김옥균을 배웅하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이 줄지어 섰다. 배웅객 중 한 명인 도야마 미쓰루(頭山滿)가 김옥균을 뜨겁게 안았다. 그는 보자기에 곱게 싼 보검을 김옥균에게 건네며 말했다. 015_갑신일록의 비밀
오경석에게는 김옥균과 동갑인 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오경화였다. 경화는 옥균보다도 클 정도로 장신인 데다 힘도 세어 여장부의 풍모가 있었다. 오경석은 딸이었음에도 경화에게 서양의 학문과 역관의 지식을 전해주었다. 경화의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핀잔했다.
“여자에게 무슨 학문을 가르쳐요? 그저 언문 정도만 익혀서 같은 신분의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면 그게 여자의 행복입니다.” 039_운명적 만남
옥균은 육십에 가까운 노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대원군과 소모적인 논쟁을 한다면 자신의 신상에 해로울 것 같아 대원군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소인, 대감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도록 하게.”
대원군의 집을 나서면서 옥균은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옥균의 마음과 같이 그날 저녁에 비가 내렸다. 060_견고한 장애물
주역에 관심이 많았던 김옥균은 영국 공사의 말을 듣고 주역 64괘 중에서 지금 조선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백성을 한마음으로 모으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염원을 담아 김옥균은 먼저 왼쪽 위아래에 건괘(乾卦)와 리괘(離卦)를 그렸다. 그리고 오른쪽 위에 감괘(坎卦)를 그리고 아래에 곤괘(坤卦)를 그렸다. 태극기의 왼쪽은 64괘 중 천화동인(天火同人), 오른쪽은 수지비(水地比)의 괘가 완성되었다. 천화동인에는 ‘하늘과 불이 서로 만나니, 군자는 뜻이 같은 자들을 모아 일을 완성하고 처리한다.’라는 의미가 담겼고, 수지비에는 ‘비가 땅에 촉촉하게 내려 만물을 적시고 만국을 세워 하나가 되게 한다.’라는 의미가 담겼다. 118_태극기의 탄생
홍영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하의 우유부단한 성품을 봐서 언제 또 입장이 바뀔지 모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하의 동의를 구해놓지 않으면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에 전하를 이 거사에 끌어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거사는 군사를 동원한 폭동이 아닙니다. 정치를 바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서광범이 말했다.
“그래도 거사에 힘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듭니다. 군사들 동원 계획은 문제가 없습니까?”
서재필이 서광범의 질문에 자신 있게 말했다.
“일단 광주군영의 신식군대 지휘관들은 우리 편입니다. 그들이 비록 민씨 일당의 군영에 속해 있지만 오백 명 정도는 우리가 거사를 일으킬 때 함께 돕기로 했습니다.”
181_마지막 약속
경기감사 심상훈과 민비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고종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경우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고종은 환관 유재현을 죽이지 말라 수십 번 외쳤건만 김옥균 일파가 처단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이미많은 정승이 죽어 나갔다는 소식에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갑신정변의 정강과 인사를 자신과 의논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보고 고종은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갑신정변의 정강을 읽어본 고종은 김옥균에게 격하게 화를 내며 말했다.
“이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이런 정변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고종은 마지막까지 권력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214_적들의 반격
지운영은 유혁로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나는 김옥균을 죽이기 위해서 전하의 명을 받고 조선에서 왔소. 그대가 도움을 주면 전하께서도 큰 상을 내리실 것이요.”
유혁로는 짐짓 속는 척하면서 말했다.
“전하께서 큰 상을 준다는 말을 내가 어떻게 믿겠소. 전하께서 그대에게 내리신 증표라도 있으면 내가 믿겠소.”
유혁로의 말에 지운영은 품 안에 있던 고종의 친필 신표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유혁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그러면 나도 동참하겠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실컷 술이나 마십시다.”
지운영은 그날 기분이 좋아 진탕 술을 마셨다. 지운영이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유혁로는 지운영의 품에서 고종의 친필 신표를 꺼내 유유히 사라졌다. 270_자객의 그림자
그는 이일직이 준 리볼버 권총을 들고 김옥균의 방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무겁게 움직였다. 권총을 쥔 그의 손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홍종우는 급기야 자고 있는 옥균을 향해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그러나 땀에 젖은 손에 권총이 미끄러져 총알은 김옥균을 스쳐 지나갔다. 눈을 뜬 옥균이 홍종우를 쳐다보았다. 두 번째 총알이 옥균의 어깨를 관통했다. 옥균은 피를 쏟으면서 홍종우의 다리를 잡고 소리쳤다.
“나는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죽이더라도 이홍장을 만난 이후에 죽여라. 너는 역사가 두렵지 않으냐?” 329_리볼버 총탄에 쓰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