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은 미래가 축소되는 생애 구간이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성과 유머가 지배하는 생의 시간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힘을 가지고 웃을 수 있는 노년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계의 한계를 넘어선다. 세계의 한계는 경험의 한계인 동시에 위축된 삶의 한계이다. 노년의 웃음이 이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어려운 현실 앞에 굴복했던 젊은 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며,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던 행함에 대한 자유로운 행함의 승리이다.
- “노년, 생의 아름다운 완성” 중에서
자연스럽게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나, 명예와 재산과 권력의 추구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된 노년을 키케로는 불행이나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을 향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노년에 욕망의 격랑이 몰아치던 바다를 벗어나 이제 자연의 필연성에 따라 쉴 만한 물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때 만약 고요하고 평화롭게 관조하는 삶, 지혜를 탐구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키케로의 생각인바, 그런 사람은 최고의 행복에 이를 것이다.
- “노년이라는 축복 -키케로의 《노년론》을 중심으로” 중에서
웰에이징은 나의 가치를 찾는 것이며, 최선의 가치를 찾아가는 그 시간이 노년에 필요한 시간이다. 이는 동시에 살아온 삶과 죽음을 명상하는 시간이며, 최상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웰에이징에 대한 위의 세 가지 물음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 노년의 과제인 동시에 스스로 성찰해야 할 문제이다. ‘잘 늙어감’이란 전체로서의 자기 삶을 완성하기 위해 그 소명을 자각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 “웰에이징, 나의 가치를 찾아가는 시간” 중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으로 가는 시간의 길목이 바로 ‘늙음’이다. 이 둘은 누구에게나 앞에 놓인 보편적 현실임에도 우리는 그것을 그토록 불행한 사건으로만 여기고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고민에 대해 위안이 될 만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도 참 많았던 것 같다. ‘사람이 죽어도 그 영혼은 불멸한다’고 이야기하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도 있었고, 죽음이라는 사건을 ‘신에 의한 구원’으로 여기는 다수의 종교도 있다.
- “노장(老莊), 죽음을 바라보는 삶의 지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