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은 곧 근성이다. 도전이란 말 그대로 언더독이 탑독에게 덤비는 게 아닌가? 인지도와 실력에서 앞서는 탑독에 맞서 언더독이 가진 유일한 능력이라면 근성 밖에 없다.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된다며 노력을 폄하하기 전에 근성을 장착해야 했다. 결국 근성 어린 도전만이 미래의 행운을 계획할 수 있는 티켓이니까.
_ 20쪽, 1장 〈단 한 번의 행운〉
아치형 나무창을 열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창 아래로 아름다운 정원이 녹음을 빛내고 있었다. 고개를 내밀고 창밖을 감상하던 나는 순간 이상함을 감지했다. 방충망이 없었다. … 크게 숨을 들이쉰 나는 창문 밖의 오래된 정원을 다시 한번 내려다봤다. 순간 들어찬 오후 햇살이 어둑했던 방안을 밝고 따사롭게 만들어 줬다. 그때 이 땅의 마법은 바로 이 맹렬한 햇살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_ 43-44쪽, 3장 〈작업실 찾아 마덕리〉
돈키호테를 찾았지만 돈키호테를 볼 수 없었다. 언제나 찾고자 하는 건 발견하기 힘들고 희망하는 곳엔 다다르기 힘들다. 광기를 동반한 짜증이 순간 멀미처럼 온몸을 뒤흔들었다. 마치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가 나를 거부하는 것만 같았다.
_ 52쪽, 4장 〈광장, 광장, 그리고 광장〉
소설가에게도 은퇴라는 말머리를 붙일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계속 쓰는 한 그는 언제까지고 소설가일 것이다. 모험을 멈추고 라만차로 돌아온 순간 돈키호테는 평범한 시골 지주 알론소 키하노로 돌아갔다. 모험을 지속하는 동안은 언제나 돈키호테일 것이고, 집필을 멈추지 않는 동안은 계속 소설가일 것이다.
_ 60쪽, 5장 〈집필: 혼자가 된다는 것〉
칼 세이건은 그의 책 《코스모스》에서 책은 먼 시대의 시민들을 한데 묶어 주기 때문에 인류의 가장 훌륭한 발명이며, 이처럼 시간의 족쇄를 풀어 주기에 인간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증거라고도 했다. 내겐 《돈키호테》가 그러했다. 400년 전의 작가가 만들어 낸 다소 긴 이야기로 인해 나는 지금 스페인에 와 마법에 빠진 듯 마드리드 거리를 걷고 있는 게 아닌가.
_ 83-84쪽, 7장 〈서점으로의 행진〉
돈키호테가 잉태된 세비야 대성당 어느 뒷골목이야말로 내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찾아 스페인에 온 뒤 가장 전율을 느낀 공간이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소설가로 겪은 수많은 좌절, 아니 작가로 살며 쌓여 온 실패와 부침, 그 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세르반테스처럼 다시 꿈꿀 수 있을까?
_ 131-132쪽, 11장 〈돈키호테적인, 너무나도 돈키호테적인〉
작가도 마찬가지다. 생각은 늘 작품 속에서 맴돌고 그렇게 다져진 작품들이 모여 인생이란 모자이크가 완성된다. 고로 도망치지 않고 작품이란 링 안에서 삶을 수행하는 것만이 작가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_ 193쪽, 17장 〈마드레! 돈키호테라니〉
거기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몇 가지 지역 명칭과 돈키호테, 산초의 이름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거의 전부였다. 돈키호테를,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를, 그리고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를 기리는 고향 사람들의 진심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_ 210-211쪽, 19장 〈드디어 만난 돈키호테〉
작가의 강박은 생활에 닿아 있어 늘 다음 스텝을 고민하게 만든다. 하루 석 장. 하루 석 장만 써도 성공한 일과다. … 적어도, 나는 하루 석 장을 피아노 연습하듯 쓸 따름이다. 나는 그런 걸 마감이라고 부른다.
_ 225쪽, 20장 〈글쓰기 메커니즘〉
이곳에서의 3개월은 내가 다시 소설을 쓰도록 만들어 줬다. 돈키호테를 찾으며 배운 건 그 대책 없는 용기와 신념이었다. 세르반테스를 쫓으며 느낀 건 생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집필욕이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손에 잡히지 않는 이익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돈키호테》에 담긴 수많은 무형의 가치들은 우리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그 책은 인류의 고전이 됐다.
_ 236-237쪽, 22장 〈아스타 루에고〉
하지만 이제 마음을 다잡고 일개 소설가 김호연으로 살아야 한다. 《나의 돈키호테》를 완성하고, 다음 작품을 쓰고, 다음 작품을 또 써야 한다. … 그게 독자들에 대한 보답이기에 나는 라만차의 알론소 키하노처럼 정신을 차리되 죽지는 않고, 죽치고 앉아 계속 쓸 것이다.
_ 285쪽, 26장 〈바야흐로 바르셀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