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직접 비행기를 밀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륙을 위해 활주로에 선 비행기 꽁무니를 그네 밀듯 밀어주었다는 엄마처럼 내게도 비행기를 밀어주는 장비에 탈 기회가 주어졌다. 아시아나항공의 조업을 담당하는 아시아나에어포트 조업사의 도움으로 출발 편의 푸시백을 돕는 차량에 탑승한 것이다.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은 전부 항공기 머리를 터미널 쪽으로 집어넣는 ‘노즈인(Nose-In)’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항공기가 출발하기 위해서는 터미널에 붙였던 머리를 뒤로 빼고 동체를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길인 유도로에 올려놓아야 한다. 항공기의 ‘후진’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후류의 위험성을 고려해 ‘토잉카(Towing Car)’라 불리는 견인 차량의 힘을 빌린다.
#23쪽_오늘은 비행기 미는 날
항공은 하루 종일 On-Air인 데다 비행기는 시간대를 넘나들며 전 세계를 왔다 갔다 한다. 당장 바로 옆 중국으로만 가도 한국과 한 시간의 시차가 존재한다. 수시로 적용 시간대를 바꾸는 것보다는 어떤 한 시간대를 항공의 표준 시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운항 중인 항공기는 항상 국제표준시(협정 세계시)인 UTC를 기준으로 시간을 다룬다. UTC는 경도 0도에 있는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를 기준으로 하는 시각으로, 한국 표준시인 KST보다 9시간 느리다. 조종사와 관제사가 교신할 때는 반드시 UTC 기준의 24시간제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 이륙하기 전이더라도 항공기가 운항 중인 순간부터는 UTC를 사용해야 한다.
#44쪽_아홉 시는 09시, 21시 아니면 00시?
관제사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관제탑에서 항공기를 보며 이착륙 허가를 내주는 비행장 관제사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건 관제사의 단편적인 모습이고, 공항을 떠나 머리 위로 날아가는 항공기를 관리하는 또다른 관제사가 있다. 접근 관제사는 공항을 막 떠난 항공기와 공항에 접근하는 항공기를 예쁘게 줄 세워 항로 진입과 착륙 순서를 맞추는 역할을 한다. 지역 관제사는 비행장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곳에서 항로를 지나가는 항공기를 관제한다. 인천공항의 접근 관제사와 지역 관제사는 관제탑에서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항공교통관제소’라는 별도의 건물에서 레이더 화면을 보고 관제 업무를 진행한다. 나는 비행장 관제사로서 인천공항 계류장 관제탑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비행기 이착륙을 담당하는 관제사는 아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82쪽_Good morning, Inchon Apron!
눈이 올 때 출발하는 항공기는 터미널 주기장에서 제빙장까지 이동한 다음 제방빙 용액을 뿌리고 다시 활주로까지 가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관제 절차도 복잡해진다. 제방빙장까지의 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우리 팀 관제사가 하는 것인데, 한정된 제빙장에 항공기를 적절히 배치하고 제방빙 순서를 정해야 한다. 그러니까 평소 같으면 ‘터미널 주기장–활주로–이륙’으로 이어지는 간단한 관제 코스가 눈만 오면 ‘터미널 주기장–제빙 주기장–제빙–활주로–이륙’의 순서로 늘어난다는 얘기다. 일반적인 상황과 비교했을 때 눈이 내리면 적어도 서너 배 이상 관제 교신이 늘어나는 것 같다.
#128쪽_나의 첫 연장근무
모든 관제사에게는 밥도 먹고 잠도 자는 별장이 있다. 내가 쓰는 별장은 높이가 꽤 되는 뷰 맛집인데, 걸어서 각종 식당이 즐비한 터미널까지 1분이면 갈 수 있는 찐 공항세권인 데다 오션뷰, 마운틴뷰, 에어플레인뷰 등 뷰라는 뷰는 다 가지고 있는 역대급 입지다. 바로 관제탑이다. 관제탑에는 모든 뷰를 다 누릴 수 있는 로열층이 따로 있는데, 최상층에 있는 관제실이다. 관제실에서는 비행기도 보이고, 구름도 보이고, 운 좋으면 무지개도 만난다. 날씨가 안 좋으면 퍼붓는 비나 번쩍거리는 번개를 광각으로 마주할 수 있다. 공항이 다 보이는 전망대 같은 전경이어서 관제탑에 견학 오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경거리기도 하다. 반대로 관제사들은 다른 높은 전망대에 가도 별 감흥이 없다고들 한다.
#141쪽_나흘에 한 번 외박하기
관제사는 ‘시(Time)’에 예민한 편이다. 나는 시간과 시각에 집착한다. 앞서 언급했듯 휴대전화 시간도 24시간제로 설정해 놓았다. 선배 관제사도 비슷하다. 한번은 운전 중에 앞쪽에서 다른 차끼리 접촉 사고가 났다고 한다. “그때 내가 무슨 행동을 했을것 같아?”라고 선배가 묻기에 “구급차를 부르셨어요?”라고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놀라웠다. “아니, 바로 시계를 확인했어.” 관제사가 관할구역 내에서 항공기 사고를 목격하면 바로 취해야 하는 행동이 있다. 일단 발생 시각과 기상을 확인하는 등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그래서 선배는 접촉 사고를 목격하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시계에 눈이 갔던 것이다.
#161쪽_이러다 숫자와 결혼하게 생겼어요
터미널 사이에 오밀조밀 붙어 있는 주기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천공항 계류장이 얼마나 복잡한 레이아웃을 가졌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애틀랜타공항의 탑승동같이 줄지어 선 빼빼로처럼 설계되어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인천공항은 그렇지 않다. 두 개의 귀가 빼꼼하니 존재감을 드러내는 토끼 모양의 제1여객터미널과 봉황 모양의 제2여객터미널은 각 주기장에서의 푸시백이나 항공기 이동에 많은 간섭 사항을 만든다. 공항의 전체 형상은 무척 깔끔하고 예쁜데다 여객이 이동하기에도 편리하게 잘 설계되었다. 하지만 관제사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튀어나온 부분과 움푹 들어간 부분이 공존하는 1터미널과 2터미널은 상황별, 주기장별로 사용할 수 있는 푸시백 절차를 매번 다르게 하고, 항공기의 출발 순서를 조정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
#195쪽_비행기 순서는 선착순일까?
에어버스의 대형 기종인 A380은 돌고래를 닮았다. 거대한 돌고래. 유도로에 있는 A380 옆으로 B737 같은 작은 기종이 지나가면 마치 바다의 왕 고래 옆을 지나가는 고등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멀리서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는 초대형 크기답게 날개폭이 아주 큰 편이어서 인천공항에는 이 돌고래가 지나갈 수 없는 유도로가 있다. 처음부터 이동 지역을 넓게 설계해 모든 유도로가 A380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 기종이 2007년 등장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설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A380은 인천공항 화물계류장 유도로인 D2와 D3에서는 이동이 불가하다. 두 유도로 사이는 80미터로 F급 항공기 두 대가 동시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인 91미터에 미치지 못한다.
#231쪽_돌고래는 움직일 수 없는 공항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