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종 시인 등단 40주년 기념 시선집
고재종 시인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시선집 『혼자 넘는 시간』(문학들)이 출간됐다. 그동안 발간한 10권의 시집에서 150편을 엄선하여 엮은 이번 시선집에는 농촌 현실과 생태학적 가치, 인간 존재의 근원을 궁구해온 시인의 시 세계가 면면한 강물처럼 반짝인다. 신철규 시인은 저자의 삶과 문학을 “빛의 연못을 가로지르는 고독한 산책자”로 압축하였고, 최진석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의 시 세계를 “고독한 길녘의 시학”으로 설명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시간을 잊게 하면서 오히려 시간이 넓어지는 때이며, 그렇기 때문에 혼자를 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초월이 아니라 포월이다. 그의 눈과 귀에 들어오는 것은 강, 새, 나무, 풀, 풀벌레, 고양이, 나비와 같은 흔한 자연물의 생동이다. 그것들은 ‘단순한 눈부심’과 ‘고요한 찬란함’으로 그윽하게 빛난다. (…) ‘마음의 덫’을 벗어버린, 삶과 죽음이 만나고 교차하는 자리에 ‘사리’처럼 박혀 있는 사유들은 묵묵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처연하다.
- 신철규 시인, 「빛의 연못을 가로지르는 고독한 산책자」 중에서
고독한 길녘의 시학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산책자가 산책을 마치지 않았고, 시인이 작품에 마침표를 찍지 않은 까닭이다. 사유는 그로 하여금 저 먼 길을 나서게 했지만, 이 여정을 마무리 짓는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다. 시인의 마음으로부터 사방세계로 번져갔던 서정의 흐름은 길과 길 아닌 곳을 지나 또 다른 길을 열어가는 한, 시의 노래를 결코 그칠 수 없을 것이다.
- 최진석 시인, 「고독한 길녘의 시학」 중에서
1984년 「동구 밖 집 열두 식구」 등 7편이 실천문학 신작 시집 『시여 무기여』에 실리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7년 첫 시집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를 간행한 이후 최근의 『독각』까지 10권의 시집을 펴내는 동안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흙의문예상, 영랑시문학상, 송수권시문학상, 조태일문학상, 송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농촌의 현실을 노래하여 ‘농민 시인’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자연과 생명을 아우르며 시 세계의 폭을 넓혀온 그는 2022년 펴낸 시집 『독각』 연작에서 동양적 정신의 세계에 가닿는다. 생태는 따로 발명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자연 속에 내재하는 것이었다. 장자의 「제물론」 편 “천지는 나와 생존을 같이하고 만물은 나의 한 몸이다(天地與我幷生 萬物與我爲一).” 그의 시에 우주적인 사유와 감각이 들어앉게 되는 것은 동양적인 자연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을 독서당이자 집필실로 쓰고 있는 그는 하루 일과를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을 훑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요즘도 한 달에 20여 권의 신간을 사서 읽는다는 그는 특히 불경 공부에 빠져 있다. 아직까지 그의 시에는 불교적인 사유를 담고 있거나 선시라고 할 만한 작품은 없으나 다음 시집에는 그런 시들도 담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