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사상의 핵심은 법·술·세라는 세 범주의 통합이다. 그렇다면 현대인으로서 이 세 개의 범주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앞에서 《한비자》는 통치술에 관한 전문서이고, 통치는 권력자와 그에 기생하는 신하의 관계 설정이 그 핵심이라 했다. 이 점을 새기고 이 세 범주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면 된다.
먼저 법(法)은 통치의, 통치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다. 한 개인으로 보자면, 죽을 때까지 지키고자 하는, 또 지키고 싶은 삶의 원칙들 같은 것이다.
술(術)은 법을 시행하는 방법이다. 무작정 법조문을 있는 그대로 적용해서는 신하와 백성을 설득하고 따르게 할 수 없다. 강제적인 법 적용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 반발과 저항을 부른다. 개인의 원칙도 마찬가지다. 원칙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야만 인간관계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고 잘 적용하는 방법이 필요하고, 그것이 다름 아닌 ‘술’이다.
세(勢)는 권세(權勢)를 말한다. 즉 권력자의 세력이다. 그냥 ‘힘’으로 이해하면 쉽다. 통치자로서 이 힘을 놓치거나 잃으면 법과 술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쉽게 비유하자면, 사람을 들이고 내치는 인사권(人事權)이 없는 통치자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개인으로 보자면, 자신이 정한 원칙을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돈, 명예, 자리, 성취 등과 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권위를 가져야 한다. 마음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권위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한비자는 통치자라면 이 셋을 모두 가지되 특히 ‘세’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신하들을 굴복시키고 부릴 수 있는 칼자루가 곧 ‘세’이기 때문이다. ‘법’으로 다스리고, ‘술’로 구슬리고, ‘세’로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상벌이 분명해야 한다. 한비자는 ‘상은 믿음이 있어야 하고, 벌은 반드시 내려야 한다’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이란 네 글자로 요약했다(〈외저설우상〉). 이상이 《한비자》 사상의 핵심인 법·술·세의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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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에는 의미심장한 사례와 우화가 많다. 그 때문에 읽기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우화와 사례 분석은 이 책의 내용이자 핵심 그 자체이니 설명은 생략한다. 《한비자》의 또 다른 가치와 장점은 그 많은 우화와 사례를 통해 간결하고 흥미롭고 깊은 속뜻을 가진 성어들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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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는 모두 55편의 독립된 짧은 논문 같은 형식이다. 55편 모두 나름 독립된 주제와 그 주제를 예시하는 사례나 우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한비자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글들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본다. 한비자의 전기를 남긴 사마천은 “〈고분(孤憤)〉, 〈오두(五蠹)〉, 〈내외저(內外儲)〉, 〈세림(說林)〉, 〈세난(說難)〉등 10여만 자의 글”을 남겼으며, 진시황은 〈고분〉과 〈오두〉 두 편을 읽었다고 기록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한비자》 판본의 글자 수는 약 10만 6천 자이다. 사마천의 기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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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는 심리학 교재로도 손색이 없다. 그 사람이 리더이건 인재이건 상관없이 한 인간의 언행에 내재된 속내, 즉 내심과 내면의 정신세계를 한비자만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통찰한 사상가도 없을 것이다. 한비자의 이런 통찰력은 많은 사람과 관계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큰 영감 내지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인식을 얻을 수 있다. 단, 《한비자》를 절대 진리로 오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비자》는 읽고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위험한 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비자》에 수없이 등장하는 우화와 사례들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자기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좋다. 필자나 다른 전문가의 안내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지 말라는 권유다. 《한비자》가 제시한 우화와 사례들은 해석과 분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볼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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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 무측천(武則天, 624~705)의 오른팔로 알려진 적인걸(狄仁傑, 630~700)은 좋은 인재를 많이 추천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한 재상이었다. 하루는 무측천이 “짐이 좋은 인재를 얻고 싶은데 그대가 보기에 누가 좋겠소?”라고 물었다. 적인걸은 “폐하께서 어떤 인재를 원하십니까?”라고 되물었다. 무측천은 장상급의 인재를 원한다고 했다. 적인걸은 학자풍의 인재로 온자(溫藉)와 이미(李嵋)를, 특별한 기재로는 형주장사로 있던 장간지(張柬之)를 추천했다.
무측천은 적인걸의 추천을 받아 장간지를 낙주사마로 임용했다. 며칠 뒤 무측천은 다시 인재 이야기를 꺼냈고, 적인걸은 “신이 이미 장간지를 추천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직 임용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물었다. 무측천이 이미 낙주사마로 임용했다고 하자 적인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그를 재상감으로 폐하께 추천했지 사마 정도의 인재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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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는 리더가 아랫사람을 거느리기 위한 방법으로 ‘칠술(七術)’과, 경계해야 할 여섯 가지 낌새인 ‘육미(六微)’를 제시한다. 먼저 ‘칠술’이다.
1. 여러 사람의 말을 두루 참조하고 관찰하라.
2. 잘못하면 반드시 벌을 내려 위엄을 밝혀라.
3. 잘하면 반드시 상을 주어 재능을 다하게 하라.
4. 신하의 말 하나하나를 듣고 그 실적을 따져라.
5. 의심 많은 신하들은 계책으로 부려라.
6. 알고 있어도 모른 척하라.
7. 말을 거꾸로 하고 반대되는 일을 하라.
‘육미’는 이렇다(〈내저설하〉 편에 수록되어 있다.)
1. (리더의) 권력이 아랫사람의 손안에 있다.
2. (리더와 아랫사람의) 이해가 달라 아랫사람이 외부에서 힘을 빌린다.
3. (아랫사람이) 비슷한 부류에 의지하여 속인다.
4. 이해가 서로 엇갈린다.
5. 리더와 세력이 엇비슷한 자가 있어 내부에 다툼이 일어난다.
6. 외부에서 내 사람의 퇴출과 기용에 관여한다.
이런 점들을 때문에 한비자는 리더가 권위를 잃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비자가 보기에 리더는 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스스로 위신(威信, 카리스마)을 수립해야 한다. 위신과 권력은 리더의 두 날개로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위신을 세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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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는 조직이나 나라가 ‘망하는, 또는 망할 징조’를 무려 47가지나 모아서 정리했다. 〈망징〉 편이 그것이다. 우리는 그중에서 열두 번째 징조를 통해 인간관계나 일 처리에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를 추려 생각을 얹어보기로 한다.
리더가 고집만 세서 화합할 줄 모르고, 바른말을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며, 사직을 돌보지 않고, 경솔하게 자신감만 앞세우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이상을 오늘날에 맞게 고쳐 리더의 ‘네 가지 금기 사항’이란 이름을 붙여서 그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자.
첫째, 강직하기만 하고 부드러움을 모른다.
일반적으로 성격이 강하면 처세에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강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런 사람은 대개 자기 고집이 너무 세서 양보를 모르고, 물러설 줄 모르고, 융통성이 없다. 인생에서 강직함이 전혀 없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주관이 있고 그 나름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이래야만 용기를 내서 나쁜 자나 나쁜 일에 맞서 싸울 수 있다. 그러나 강직함은 도박이 아니다. 때로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고,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강직함으로만 일관하면 타인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고, 결국은 이런저런 다툼에 휘말려 피를 보게 된다.
둘째,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권유를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이를 ‘강퍅자용(剛愎自用)’이라 한다. 자기만 옳다고 여겨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 센 사람을 가리킨다. 이는 스스로를 가두는 심리 때문이다. 이런 심리를 멀리하려면 늘 자신에게 이렇게 경고해야 한다. 한순간의 생각이나 판단을 모든 경우에 적용해서는 안 되며, 무조건 완전히 자신을 믿어서도 안 된다. 동시에 늘 같은 언행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융통성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시간, 장소, 사람에게 변화가 발생했을 때 죽으라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만 끌어안고 버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귀를 잘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말을 용감하게 들어야 하고, 잘못을 고쳐야만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좌절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다.
셋째, 승부욕이 지나치다.
이런 성격은 남에게 뒤떨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물론 이런 성격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사업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생활 모든 곳에서 이런 식이라면 끝내는 극단적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이런 사람은 여유가 없어 하루 종일 자신을 긴장과 압박에 내던진다. 정신적 피폐와 괴상한 행동을 초래하기 쉽다.
넷째, ‘자기맹신(自己盲信)’에 빠지다.
사람이 자신감이 없으면 안 된다. 스스로를 믿는 자신감은 성공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과격하고 치우친 언행에 쉽게 빠진다. 이를 ‘자기맹신’ 또는 ‘자기과신(自己過信)’이라 하는데, 여기에 빠진 사람을 중국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의 종합적 증상’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남의 비웃음을 사기 쉽고, 바로 앞도 내다보지 못해 실패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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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관점으로 보자면 리더의 재능은 모든 일을 직접 챙기는 데 있지 않고, 인재의 재능을 잘 운용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에는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가 전제조건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사람, 특히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아주 어렵다. 인재의 감별은 확실히 쉽지 않다. 그리고 인재에 대한 치밀한 관찰은 더 어렵고 미묘하다. 한비자는 공자조차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했다가 재여(宰予)를 잘못 보았고, 말솜씨로 사람을 가늠했다가 자유(子游)를 잘못 보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니 보통 사람은 어떻겠는가? 사람을 쓰는 데 오류가 없으려면 먼저 사람을 살피고 이해해야 한다. 사람의 겉모습을 꿰뚫고 그 본질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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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사람이든 아둔한 사람이든 인생의 과정에는 늘 취사선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맑은 마음으로 욕심을 줄인 상태에 있거나 차분하고 편안한 때라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화복을 모를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좋고 나쁜 것에 지배당하고 사치스러운 물건에 유혹당하면 변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