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명하고 가장 이해받지 못한 프랑스 철학자._뉴욕 타임스
그는 정치사상의 쟁점이 온전히 생태학적 질문에 있음을 가장 먼저 감지한 인물이었다._브뤼노 카르상티(사회학자)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직접 돌아본 자신의 지적 여정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과학기술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태정치학자로 새로운 세대의 지식인, 예술가, 생태학적 재앙에 맞선 투사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 사상가 브뤼노 라투르. 과학, 기술, 예술, 법, 종교, 정치, 근대성, 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지식인’으로서 내놓는 저서마다 학계에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그가 2022년 일흔다섯 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브뤼노 라투르 마지막 대화』는 바로 그 전해인 2021년 브뤼노 라투르가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니콜라 트뤼옹과 나눈 대담을 바탕으로 2022년 출간된 그의 마지막 대담집이다. 파리의 자택에서 ‘소탈하고 경쾌하지만 힘있는 태도’로 이 대담에 응한 이유로 그는 “당신 덕분에 나의 전반적인 논지를 설명할 기회가 생겼네요.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논지를 따라갔지요. 이제 명쾌하게 밝힐 수 있는 때가 됐어요”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라투르의 사상 전체를 그 자신이 결산한다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생의 말년에 접어든 라투르가 직접 자신의 평생에 걸친 지적 여정을 차근차근 들려주는 만큼 라투르 사상에 대한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얼핏 따로 노는 듯 보이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에 혼란스러웠을 수 있는 많은 라투르 독자들에게 매우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근대는 하나의 괄호, 이제 끝에 다다른 역사의 순간입니다.”
니콜라 트뤼옹은 라투르가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생태학에 관한 두 저서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과 『나는 어디에 있는가?』로부터 대담을 시작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새로운 기후 체제를 부단히 사유해온 브뤼노 라투르는 인류세에 진입한 이래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달라졌다고, “우리는 더이상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자연과 문화, 주체와 객체, 인간과 비인간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근대적 사고는 종말을 맞이했고, ‘이륙’과 ‘도약’을 강요했던 근대성은 오히려 지구의 거주 가능성을 파괴해왔다. 기후 위기와 코로나19 사태로 이런 상황이 명명백백해졌다고 라투르는 말한다.
우리가 지구를 근대화하면 지구는 사라질 겁니다. 지구는 우리 인간이 서식할 수 없고 살 수도 없는 곳이 됩니다. 근대는 하나의 괄호, 이제 끝에 다다른 역사의 순간입니다._54쪽
따라서 우리는 이제 거주 가능한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라투르가 과학적이자 신화적이자 정치적인 개념인 ‘가이아’라고 명명한 지구의 외피에 ‘착륙’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근대성의 대안으로 내놓는 것이 바로 ‘생태화’다. 하지만 이는 모든 상황에 있어 ‘대대적인 방향의 전환’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라투르는 논쟁에 뛰어들고, 진보와 옛것의 분리를 포기하고, 생산보다는 거주 가능한 조건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또한 사회 전체가 근대 관념으로 박탈당했던 비판 역량을 획득하고 ‘생태적’ 문명을 창조해야 한다는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급변하고 있는 지구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진정한 착륙을 위한 ‘자기기술’과 생태 계급의 형성
경험주의 철학자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던 라투르는 그저 화두를 던지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방안을 모색한다. 그가 주요하게 제안하고 직접 컨소시엄을 꾸려 집단적으로 실천했던 것이 바로 ‘자기기술autodescription’이다.
이 세계를 인식할 수단을 확보하고 싶다면 이 세계를 기술할 장치부터 갖춰야 합니다. 자기는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양 외부인의 객관적 태도로 기술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입장에서 기술해야 하지요. 철학과 존재론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서 나는 늘 실용적이고 경험적이라고 할 만한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래서 내가 찾은 해결책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의존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적어보시오.” 혹은 “당신이 무엇에 의존하느냐가 영토를 정의할 겁니다.” 이것이 내가 하려는 작업입니다._77~78쪽
자기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에 따른 행동 역량도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를 위해 행동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개인이 각자의 수준에서 작은 규모로 행하는 이런저런 활동이 세상을 구성하며, 사람들에게 정치적 역량을 되돌려주고 일반성으로의 성급한 도약을 피하게 해주니까.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어디에 어떻게 착륙할 것인지 비로소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 역량, 비판 역량, 정치적 역량을 획득한 이들이 새로운 계급, 바로 ‘생태 계급’을 형성하리라고 라투르는 보았다. 생태학적 문제가 과거의 정치적 문제들, 다시 말해 마땅히 관심을 기울이고 논의해야 하는 문제들과 대등해졌다고 느끼는 지금, “새로운 합리성, 새로운 문명화 과정, 그 과정의 진전을 구현하는 건 우리입니다. 우리는 지구의 거주 가능한 조건을 근본적인 문제로 생각하니까요”라고 말할 수 있는 계급이 필요하고, 이들이 과거에는 서로 어울리지 못했을 개인, 집단, 독립체와 연합해 투쟁을 이끌어나가리라고 라투르는 말한다.
무리로 사유하고 팀으로 성찰한
브뤼노 라투르의 희망 어린 초대
생태 계급의 형성을 통해 생태화로 나아가기 위해 라투르가 목표로 삼았던 것은 다양한 매체와 학문 분과들이 서로 대등한 ‘집합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높이 평가하며 함께 작업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근대화에서 생태화로 넘어가기 위해서, 다시 말해 근대화 상황에서의 자유와 풍요를 보존하면서도 지구의 거주 가능한 한계 안에 머무는 상황으로 가기 위해서 단행해야 할 변화는 모든 학문 분과를 필요로 할 만큼, 또한 대학, 박물관, 그 외 모든 기관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주제를 두고 연구해야 할 만큼 광범위합니다.”_109~110쪽
그래서 라투르는 늘 집단과 장치의 도움을 받아 무리로 사유하고 팀으로 성찰했다. 그 과정에서 학제간 연구뿐 아니라 여러 학문 분과와 예술적 실행을 결합한 전시나 연극, 퍼포먼스 등 텍스트 이외의 다양한 장치를 활용했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중 어떤 것은 내가 풀 수 없기 때문에 나보다 그 문제를 더 잘 아는 전문가나 나와는 자못 다른 감수성을 지니고 나와 부딪혀 사유의 생산에 자극을 주는 예술가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이 바탕에는 라투르가 근본적으로 ‘존재 양식을 사유하는 철학자’라는 사실이 깔려 있다. 철학은 전체를 사유하며 필연적으로 집합적이다. 따라서 다양한 양식들이 헤게모니 쟁투를 벌이며 서로 파괴하는 것을 피하게 해주고 각자의 존재 양식을 존중하도록 범주 오류를 잡아내는 역할을 한다. 라투르에게 철학은 이런 것이었기에, 프랑스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의 말마따나 그의 ‘외교 철학’이 특히 새로운 기후 체제와 생태학적 문제에 대한 사유가 시작된 이후로 ‘이 시대의 사상’이 될 수 있었고, 이 사상은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사회를 분리하는 듯했던 근대성은 현실을 떠나 뜬구름 위에 수립된 것임을 깨닫게 했다.”
마지막으로 니콜라 트뤼옹은 브뤼노 라투르에게 2060년에 마흔 살이 되는 그의 손자와 그 세대에게 한마디 해주길 요청한다. 라투르는 처음 20년은 매우 힘겨우리라고, 그 시간을 위한 대비가 필요할 거라고 하면서도, 그다음 20년은 좀더 나을 거라고, 왜냐하면 ‘마침내 우리가 있는 곳을 파악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비로소 착륙했을 거예요. 이전 20년 동안의 막대한 변화와 재앙,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이미 겪고 있는 변화와 재앙이 마침내 분해되고 소화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를 거기서 벗어나게 해줄 정치제도, 법적 정의, 예술, 과학, 그리고 아마 변화된 경제 상황을 찾게 될 겁니다._181쪽
이 메시지는 미래를 절망하기보다 직접 그 미래를 만들어가라는, 미래로 뛰어들라는 희망 어린 초대다. 브뤼노 라투르는 착륙했고, 이제 우리 차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