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서
이 책의 문제 제기 대상은 여섯 개인이지 일명 ‘GAFAM’으로 통칭되는 거대 기업 블록 자체가 아니다. 물론 이 테크계 재벌들의 기업이 그들이 가진 힘의 원천이기는 하다. 하지만 창업주 각 개인의 행동이 기업의 행보와 일치하진 않는다. 게다가 일론 머스크의 회사는 GAFAM에 포함되지 않지만 그 역시 초유의 힘을 가진 억만장자다. 또한 GAFAM의 일원인 애플은 반독점 상황이 아니라서 독보적인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중국과 한국에 막강한 대항마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플 신화를 만들어낸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었다고 해도 그는 ‘시스템’을 좌우하는 이 소수의 억만장자 대열에 끼지 않았을 것이다.
-14~15쪽
인류의 삶을 바꿔놓거나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상황이라면 정부는 결정하기에 앞서 전문가 집단의 고견을 듣고 민주적인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 하지만 테크계 억만장자들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좋다고 믿는 것이 모두에게도 좋다고 생각한다. ‘죽음’이란 하나의 ‘문제’ 상황이고, 모든 문제에는 응당 해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윤리적인 문제는 차치하고, 만약 젊음의 묘약이라는 게 (저들에 의해) 발견되어 누구나 쓸 수 있게 될 거라 믿는다면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약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돈 많은 부자들뿐이다.
-25쪽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지구를 지키고 지구인을 구하러 세상에 내려왔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믿음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구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억만장자들의 공통점이다. 또한 저들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회사를 세운 뒤 설립 이유를 찾아내지만 이들은 이미 머릿속에 품은 채 회사를 세운다. 이들은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회사를 만들고, 포부가 더 큰 이들에게 회사란 자신의 메시아적 발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도구에 해당한다. 이들에겐 이 땅의 인류를 구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이 있다. 인류가 이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리 중요치 않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는 권력을 좋아하긴 해도 정부 권력을 바라진 않는다. 2023년 프랑스2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미 대통령은 행동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이 기업인이라서 더 큰 힘과 더 적은 제약을 누리고 있다고 여긴다. “만약 내가 대통령이라면 화성이나 달에 로켓을 보내지 못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즉 대통령으로서는 그가 지상에 내려온 ‘소임’을 다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43~44쪽
일론 머스크의 손안에 든 펜타곤 직원들은, 《뉴요커》 기자 로넌 패로의 표현대로라면 “공황에 빠졌다.” 어떤 사람은 인터뷰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일론 머스크에게 그래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고 한다. 취재 기사에서 로넌 패로는 스페이스X에 의존하는 미 정부가 일론 머스크의 예측 불가능한 반응에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조 바이든 정부의 국방 정책 차관을 지낸 콜린 칼도 인정했다. 그는 “일론 머스크가 정식 외교관이나 공직자는 아니지만 이번 전쟁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렇게 대우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했다. 《뉴요커》 기사는 꽤 반향이 컸고 미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은 스페이스X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미국의 대외 정책이 억만장자 하나에 의해 결정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62쪽
애플 전 프랑스 지사장 장루이 가세는 “이미 전 세계인의 대통령인데 귀찮게 미국 대통령은 왜 되겠느냐”라고 농담했다. 이미 전 세계 30억 명 위에 군림하는 상황인데, 무엇 하러 미국인 3억 3,300만 명을 다스리느라 힘을 빼겠느냐는 말이다. 실제로 페이스북 대표는 ‘일개’ 정부 수반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쥐었으며 굳이 대통령 자리를 탐낼 이유가 없다. 일론 머스크만큼 대놓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둘 다 생각은 같다. 대통령이 쥔 권력은 자신들의 힘보다 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85~86쪽
페이스북과 구글은 진출한 모든 나라에서 전체 디지털 광고 수익의 50~80퍼센트를 가져간다. 기존 언론사의 광고 수익 대부분을 갈취해간 것이다. 이들은 언론사의 기사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자사 서비스로 제공해 매출액을 끌어올리고도 해당 언론사나 기자에게는 단 한 푼도 주지 않는 뻔뻔함을 보였다(오히려 자연스레 기사 홍보가 되니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는 설명을 내밀곤 했다). 무료로 가져다 쓴 이 기사들은 빌려 쓰고도 갚지 않은 빚이나 마찬가지라서, 미국의 테크계 억만장자들은 그 덕에 재산을 불렸지만 재정 균형이 무너진 수백 개 언론사는 간판을 내려야 했다. 알렉시 드 토크빌 말마따나 양질의 언론은 자유를 위한 민주적 도구다.
-128~129쪽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앞서 살펴본 대로 캘리코라는 회사를 세웠다. 노화 과정을 연구하는 회사로, 주축 인물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의 분자생물학 명예교수인 신시아 케니언이다. 선충의 노화 속도를 생물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연구를 발표해 이름을 알렸다. 간단한 유전자 조작으로 선충의 수명을 두 배로 늘린 신시아 케니언은 이러한 유전자 조작이 포유류에게도 적용될 수 있으며 인간 수명 연장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래리 페이지를 설득했다. 생명공학 기술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관련 앱과 혁신 제품들로 이루어질 무궁무진한 시장이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치료 연구 회사 애브비와 함께 그 원대한 목표에 걸맞게 캘리코에 무려 15억 달러를 지원해주었다.
그런데 오늘날 캘리코의 부사장까지 올라간 이 생물학자에게 구글이 전권을 위임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새로운 성과에 대한 소식이 없다. 기업이 성과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면 새로이 발견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일까?
-138쪽
따라서 인류는 언제나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속도로 살아갈 우려가 있다. 한쪽에선 기억, 지능, 수명 측면에서 기본 역량을 확장하거나 기계로 이식되는 것까지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원치 않거나 혹은 원해도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는 것이다. 후자의 사람들은 영국의 사이버네틱스 학자 케빈 워릭의 말마따나 “미래의 침팬지”, 인류의 ‘아종’이 된다. 신체 능력 확장을 거부하고 노화하는 사람 혹은 충분한 재력이 없는 사람은 영장류 취급을 받고 다른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된다. 고대인과 현대인을 둘러싼 신구 논쟁은 끝나며 이제 트랜스휴머니스트들과 생명보수주의자들의 싸움, 기술진보주의자들과 생명공학반대론자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전자는 불가피하게 후자보다 우위에 있다. 구글 창업주들은 인간에서 포스트휴먼으로의 전환을 이끌 것이다. 원래 하던 사업 덕분만이 아니라 다수의 테크 기업을 인수해 영역을 확장하면서 로봇공학, 컴퓨터공학, 검색 엔진, AI, DNA 시퀀싱, 나노 기술 등, 트랜스휴머니즘을 실현할 모든 기술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러한 꿈을 꾸는 건 구글 창업주들만이 아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뉴럴링크를 세운 일론 머스크 역시 방식은 좀 다르지만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택했다. 인간 뇌에 칩을 이식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실 테크계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은 시대정신의 일부다. 비유적 의미에서나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나 스스로를 뛰어넘고 극복해야 할 필요성은, 미래를 낙천적으로 관망하고 더 많은 부에 집착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주인들은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전 지구에 대한 주도권을 쥐었다. 세간 사람들에게 금기시되는 것들이 저들에겐 그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한 요인일 뿐이다.
-144~145쪽
제프 베이조스는 인류가 에너지 소비를 현저히 줄이거나 탈성장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한 이러한 우주 캡슐 건설이 지구를 구할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힘든 삶을, 혹은 더 가난한 삶밖에 경험하지 못할 테니 우주의 다른 공간으로 이주해 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모든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태양계로 나간다면 사실상 무한한 자원을 누릴 수 있다. 이건 쉬운 선택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제 빨리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아마존 창업주는 여러 행성을 아우르는 새로운 문명의 부상에 일조하고자 하며, 근미래에 이러한 문명이 완전히 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프 베이조스는 인류가 태양계로 나아간다면 태양계에 1조 명이 살게 될 것이며 “우리에게 1,000명의 모차르트와 1,000명의 아인슈타인이 생길 것”이라며 흥분했다. 하지만 그만큼의 푸틴과 트럼프도 생기지 않을까?
-156쪽
그로부터 8년 후, AI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많은 전문가가 AI의 비약적인 발전을 우려했지만 빌 게이츠는 기존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오픈AI 덕분에 시장을 선도하게 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는 더는 AI 연구 중단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은 것이다. 2023년, 빌 게이츠는 연구를 유예한다고 해서 미래가 걸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보다는 AI의 개발 성과를 잘 이용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 세계가 다 함께 AI 연구를 중단하는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인지 되물었다. “누가 AI 개발을 중단할 수 있다고 말하는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중단에 동의할지, 왜 중단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쯤 되면 슬슬 빌 게이츠도 마크 저커버그처럼 AI에 대한 지식이 모자르다고 비웃는 일론 머스크의 중얼거림이 들리지 않는가?
-200쪽
《레제코》가 보도한 대로 중국은 2012년 시진핑이 집권한 뒤 “기업인들이 증발하는” 나라가 되었다. 신임 주석이 된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의 일환으로 부유한 기업인 수십 명이 종적을 감추거나 당국에 체포됐고, 일부는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망명했다. 약간의 재산과 함께 아내와 아이만 일단 해외로 빼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는 우선 정치인과 공무원을 타깃으로 삼았고 이후 국영 대기업 지도층이 단속 대상이 되었다. 그다음에는 에너지, 통신, 부동산, 금융 산업의 민간 기업 운영진도 정부의 포위망에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중국에서 1년 동안 억만장자 600명 중 60명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나타나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형에 처해졌거나 아직 감옥에서 썩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 최대의 계육 생산업자 쑨다우, 투자 은행 차이나르네상스의 공동 창업주 바오판, 부유한 은행가 리화이칭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금융계의 또 다른 큰손으로 고위층 자제들의 은행가로 통하던 샤오젠화 회장도 홍콩에 있는 호텔에서 눈이 가려지고 휠체어에 태워진 채 끌려갔다.
-217쪽
2011년 고인이 된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자녀들 또한 아이패드가 출시됐을 때 이를 사용해본 적도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의 전자기기 사용을 제한한다”1고 말했다고 한다.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뉴욕타임스》를 통해 전하길, “매일 저녁 스티브는 주방에 있는 크고 긴 식탁에서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며 책, 역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요.” 스티브 잡스 집이든 빌 게이츠 집이든 식사 중에는 절대 전자기기를 볼 수 없었다.
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는 2017년, 새로 태어난 딸 어거스트에게 공개적인 편지를 썼다. 내용인즉슨 ‘밖에 나가서 놀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꽃향기를 맡고 나뭇잎을 모으며 놀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단다.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232쪽
테크계 억만장자들은 이러한 효율적이타주의에 빠져 있다. 효율적이타주의를 미래로 확대 적용한 장기주의(Longtermism) 역시 신봉한다. 장기주의 관점의 바탕에는 각각의 생명은 똑같은 가치를 지니기에 가능한 한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따라서 시대 구분 없이 모든 생명이 똑같은 가치를 지니며 수억만 년 후에 태어날 세대 또한 오늘날의 세대와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니 우리는 하루빨리 우주 개척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우주 정착촌 건설이 1년 늦어질 때마다 그만큼 우주에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잃기 때문이다.
-241쪽
마크 저커버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등이 대부호가 될 수 있었던 건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검색 엔진이나 온라인 쇼핑몰, 소셜미디어 등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그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디지털 사회를 상상하고 구상했다. 데이터 사용에 관한 원칙도, 경쟁 원칙도, AI 개발 원칙도 모두 스스로 결정했다. 사생활이나 디지털 윤리에 관한 문제도 직접 결정했다. ‘좋아요’ 중독에서 뇌 임플란트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놓을 사업들을 소리 소문 없이 진행한 이들에게 우리의 선택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이들은 누구의 비판이나 지적도 고려하지 않았으며 정부 권력까지 밀어냈기 때문이다. 응당 정부 차원에서 진행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의 민주주의까지 심각하게 뒤흔든다. 우리의 정치 모델과 심지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인식까지 위협한다.
이러한 기술적 폭력에 대응하고 자유를 되찾으려면, 민주적 절차와 범위 내에서 규제를 시행하는 동시에 젊은 세대에게도 광고와 쇼츠 콘텐츠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보여줘야 한다.
-296~2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