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책에서 개관했듯이 냉전의 결과로 한반도만큼 고통을 겪은 지역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이념적 분열은 일본 식민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한반도에서 나라를 갈라놓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 국가들의 분열, 무엇보다도 미국과 소련의 갈등은 한반도에서 장기적으로 정치적 분단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1990년대 초 냉전 국제 체제가 종식된 이후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모두의 장기적 안정에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이 책에서 전체 장을 할애한 유일한 지역이 한반도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한 장에 걸쳐서 한반도를 다루기로 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전쟁의 중요성과 결과입니다.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초토화했고, 미일 동맹을 공고히 하고, 소련과 중국의 동맹과 중국공산당의 통치를 단단히 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냉전을 군사화했습니다. 두 번째는 한반도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지구적 차원의 냉전이 어떻게 현지 세력과 서로 작용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결과(이는 대개 비참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를 낳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냉전의 역사는 주로 미국이나 소련이 세계 각지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역사로만 쓰여 왔습니다. 이 책에선 초강대국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행위자들을 다루면서, 냉전을 보다 비판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의 세계사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 ‘한국어판 서문’에서
《냉전》의 개별 장은 하나의 이야기책처럼 세계사의 동서남북을 오가며 냉전의 다양한 모습을 구석구석 총망라하여 보여 준다. (…)
지금까지의 냉전사 연구가 냉전을 개시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공방을 벌이며 이를 위한 증거자료를 모으는 학문의 성격이 있었다면, 《냉전》에서 베스타는 냉전의 경험 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1990년대~2000년대 국제체계의 정치 엘리트들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세계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놓여 있는 현재를 제대로 살아 나가기 위해서라고 베스타는 파악한다. 아마 이 지점이 ‘현재사’ 연구자로서 베스타의 특징이 잘 녹아 있는 부분일 것이며, 《냉전》을 읽는 독자들도 단순히 세계 여러 지역의 사건들의 파노라마를 관찰자처럼 보기보다는, 이 지점을 유의하면서 적극적이고 비판적으로 독서를 해 나가면 좋겠다.
- ‘해제’에서(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올라섰지만, 경제적 의미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냉전은 이미 격화했지만, 아직 대립하는 국가들로 이루어진 양극화된 국제체계를 창출하지 못했다.
_68쪽
새로운 아시아에 접근하는 문제에서 미국도 소련만큼 주저했지만, 유럽의 과거 식민주의와 연계된 탓에 운신의 폭이 한결 좁았다. 반식민주의 유산을 종종 과시하는 나라로서는 모순적이게도, 전후 역대 미국 행정부는 대체로 냉전의 관심사보다 반식민주의를 우선시하지 않았다.
_227쪽
한반도에서 막대한 파괴가 벌어졌다. 군사 행동이 벌어지는 동안 적어도 두 번 나라 전체가 전쟁으로 불길에 휩싸였다. 모든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 인구의 절반가량이 피란민이 되었다. 생산시설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전쟁 내내 굶주림이 널리 퍼졌다. 도시에서 버티려고 한 사람은 전쟁이 다시 닥치면서 암울한 운명을 맞았다.
_258쪽
중국공산당과 소련의 적대는 국제 정치를 뒤바꾸고 냉전의 이원론을 깨뜨릴 잠재력이 있었다. 중국이 문화대혁명 와중에 주로 스스로 분열하는 데 몰두하는 한,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중국이 그 늪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별자리가 형성될 잠재력 또한 가시화되었다.
_369쪽
베트남의 진정한 비극은 당연히 베트남 자체의 비극이다. 한반도처럼 베트남은 냉전으로 갈가리 찢어졌다. 베트남공산당의 잔인성과 발전 계획이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미국의 점령과 폭격 때문이기도 했다.
_475쪽
라틴아메리카의 냉전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벌어졌다. 일부이긴 하나 정치적으로 훨씬 더 극단을 달리는 우파와 좌파의 점증하는 폭력적 충돌이 중심이었다.
_509쪽
1972년 2월 21일, 닉슨이 베이징에 도착했다.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대통령이었다. 소련과 여전히 무기 제한을 협상하는 중이고, 베트남전쟁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은 대외정책에서 성과가 필요했다. 그는 중국 방문을 그 성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_574쪽
결국 데탕트를 무너뜨린 것은 미국의 국내 정치였다. 닉슨과 키신저는 대다수 미국인이 받아들이려는 수준을 넘어 소련과 함께 냉전을 관리하려고 했다.
_698쪽
냉전이 끝나는 과정은 그 기원만큼이나 다층적이고 복잡했다. 남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 드러난 것처럼, 전 지구적 충돌의 종언은 좋은 일을 위한 엄청난 기회를 낳았다. 하지만 모든 쟁점이 해결되지는 않았고, 한반도나 중동, 발칸반도처럼 몇몇 지역 유산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_8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