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난 왜 이 고전이 재미없지?’, ‘난 왜 이해가 안 가지?’ 하면서 절대 자책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 사람들도 《안나 카레니나》나 《밑바닥에서》를 읽으면서 여러분과 똑같은 생각을 하니 안심하길 바란다. 자, 이렇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러시아 문학을, 즉 고생을 본격적으로 즐겨보자.
_일러두기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러시아의 취약한 여성권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러시아 사회의 보수적인 가치에 도전한 인물이 겪는 비극을 말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사회의 압박을 벗어나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읽는 게 타당하다.
_레프 톨스토이 |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그 자체에 ‘정’이 있다고 믿는다. 광활한 영토처럼 끝이 없는, 푸른 바다처럼 깊은, 높은 산맥처럼 위대한 그런 정.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외국인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미묘하지만 이 세상보다 더 거대한 신비로운 러시아인의 마음”이라고 답한다.
_표트르 차다예프 | “러시아는 전 세계에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예정된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심장을 동사로 불질러라”라는 말은 러시아 문학의 본질을 대변한다. 이 표현은 ‘말로 생각하게 만들어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러시아에서는 문학 작품이 단순히 쓰이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푸시킨은 이런 생각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글은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자극하며, 마음속에서 열정의 불꽃이 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_알렉산드르 푸시킨 | “사람들의 심장을 동사로 불질러라”
러시아에서는 과속 과태료를 받는 일이 흔하다. 그럴 때면 고골이 소환된다. 집으로 과태료 통지서가 날아오면, 아내는 잔뜩 성이 나지만 남편은 반성은커녕 이렇게 말하며 아내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러시아 사람인가 봐. 차를 타고 빨리 달리지 않으면 무슨 맛으로 살겠어?”
_니콜라이 고골 | “빨리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러시아 사람이 아니지!”
러시아 사회는 서구보다 덜 개인주의적이지만, 동양보다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특성을 지닌다. 서구 문화에서는 오로지 개인의 행복이, 동양 문화권에서는 집단의 행복이 더 강조된다면, 러시아는 개인을 중심으로 그 개인이 속한 소규모 공동체(가족, 친구, 직장)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긴다.
_이반 투르게네프 | “행복은 건강과 같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가장 빛나고 소중한 계절인 여름에 하는 사랑만큼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여름이 끝나는 것처럼 언젠가 사랑도 끝날지 모른다. 하지만 후회하거나 그리워할 필요는 없다. 내년에는 또 내년의 여름이 찾아올 테니까.
_마리나 츠베타예바 | “난 널 여름 내내 사랑할 거야”
한국에서는 나이가 관계를 앞서지만 러시아에서는 나이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가족이나 아주 친한 사람이면 나이와 관계없이 반말을 쓰는 게 자연스럽다. 존대의 기준이 한국과 다른 것이다.
_세르게이 예세닌 | “하얀 사과나무 꽃구름이 사라지는 것처럼 모든 것들 또한 지나가리라”
‘불꽃’ 같은 인생의 의미는 ‘남들과 꼭 다르게 하라’다. 남과 같아진다는 것은 바로 평범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범해진다는 것은 바로 썩는다는 뜻이다.
_막심 고리키 | “인생은 오로지 두 개의 형태가 있다: 부패와 불꽃”
황제를 신으로 여겼던 러시아의 전통적 사고방식과, 모든 권력이 당에 있고 당의 결정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공산주의 체제의 사고방식이 묘하게 섞여 버렸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이를 교묘히 이용해 왔다. 권력에 반항해서는 안 되며, 질서 유지를 위해 모든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욕망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도리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했다.
_막심 고리키 | “기어다니도록 태어난 자는 날 수 없다”
만약 동료의 위법 행위를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러시아인이 아니다. 법대로 친구를 신고하는 행위는 친구를 배신하는 것과 같다. 그런 행위를 하면 온 사회가 당신을 비난할 것이다. 법이 어떻든, 친구를 배신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며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사람’이라면 가족과 친척, 친구를 보호하고 지켜야지,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은 오늘 존재하지만 내일이면 사라질 수도 있다. 반면 친구는 신이 주는 영원한 축복이다.
_스투르가츠키 형제 | “어떤 이상을 위해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면 그 이상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현재도 푸틴 정권을 비판하는 아쿠닌과 다른 작가들이 러시아를 떠나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은, 현대 러시아에서 슬라브주의자들이 서방주의자들을 탄압하는 역사가 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이념 싸움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문학 속에서 그 열띤 논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러시아 문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_보리스 아쿠닌 |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평등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쓰면서 러시아 문화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역설적인지 새삼 깨달았다. 문학 작품을 분석할 때마다, 작가의 삶을 정리할 때마다, 이러한 역설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에 빠졌다. 공산주의를 선택했지만 종교를 신실하게 믿는 문화, 나태함을 긍정하면서도 끊임없이 투쟁하는 사고방식, 남녀평등이 이뤄진 듯하면서도 여전히 뚜렷한 성 역할이 존재하는 사회…. 러시아는 모순 그 자체다.
_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