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쉰네 번째 책 출간!
이 책에 대하여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쉰네 번째 소설선, 예소연의 『영원에 빚을 져서』가 출간되었다. 2024년 4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번 신작은 한 친구의 실종 소식으로 시작되는, 캄보디아 해외 봉사단으로 같이 떠났던 세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사라진 친구를 찾는 과정에서 두 명의 친구는 자신들의 기억만으로 타인의 삶에 어떤 형태를 부여했던 그들의 과거를 소환시켜 지난 삶의 오류들을 되짚어봄으로써 서로에 대한 참다운 이해와 연민을 갖게 된다. 공감을 통한 삶의 진정성을 발견하는 소설이다.
등단 5년차, 앞으로가 가장 기대되는 소설가!
202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예소연은, 서사의 완결성,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등장인물, 주제의 보편성과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의 특수성, 정교한 플롯 등 “소설 속 인물의 뛰어난 형상화와 단편소설의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다”(김미월)는 극찬을 받으며 대형 작가의 탄생을 일찍이 예고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사랑과 결함』, 장편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을 상자하며 〈황금드래곤문학상〉과 〈문지문학상〉을 수상했고, 2025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작가로도 선정되는 등 자신만의 확고한 문학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특히나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이질적이기까지 한, “폭력적이고 가혹한”(소유정) 사랑의 세계를 그려낸 『사랑과 결함』은 동시대 독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예소연을 명실 공히 대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영원에 빚을 져서』는 세상이 가하는 폭력에 노출되고 때로는 상처 입은 인물 군상을 진솔하게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기시감마저 불러일으키는 대세 작가 예소연이 그려내는 또 다른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작가 예소연
때로는 잊히지 않는 것이 바로 영원!
혜란과 나(동)와 석이는 프놈펜 바울학교로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함께 떠나며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셋은 바울학교의 개교기념일을 맞아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한국에서 배가 침몰하는 사건을 보게 된다. “대상 없는 배신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이 수시로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어”(33쪽)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 셋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신들의 4개월간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혜란은 그 괴로움을 종교에 심취해 풀고, 석이는 바울학교의 학생 ‘삐썻’과 마음을 나누며 상처를 치유하려 애쓴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각자의 삶을 사느라 서로에게 소홀하던 어느 날, 동이와 혜란은 석이가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석이를 찾기 위해 무작정 캄보디아로 떠난다. 실종의 단서를 찾기 위해 만난 ‘삐섯’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 둘은 석이의 흔적을 찾아 피피섬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열심히 미래를 향해 달려 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단지 과거에 사로잡힌 여정에 불과했음을, 그것을 미래라고 착각해왔을 뿐임을” “다시 말하자면, 내가 이곳에 온 게 아닌, 이곳이 내게 당도하고야 만 것이라는…….”(111쪽) 깨달음을 얻으며 잊었다 생각했던 자신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은 일에는 쉽게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94쪽)이었던 동이와 혜란은 다른 이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서로에게 빚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를 속절없이 무너뜨린 상실의 경험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루된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위무하는 이야기이다.
“슬픔은 저마다의 무게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무겁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워서 도무지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그런 슬픔은 바다를 압도한다. 그래서 가라앉을 수도 없다. 그것만이 침몰하지 않을 유일한 진실이다. (……) 그러니까 이들의 여행은 되돌릴 수 없는 배를 ‘다시’ 수면 위로 띄우는 재연再演이다. 기억의 머리맡으로 떠밀어 올려 영원토록 가라앉지 않게 언제까지고 되-살려야 할 슬픔의 무게가 그저 무겁다. 이 소설은 잊지 않을 결심이며, 슬픔의 무게를 헤아리는 배려의 윤리학, 그 빚진 마음이다.” (황유지)
표4
상실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공감은 분명 타인과 나를 이어주지만, 그 확장의 범위는 내 시야와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 소설은 이러한 한계를 문제 삼으며, 우리의 상상력과 공감이 어떻게 ‘나’ 혹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 “영원”에 닿을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공허하고 추상적인 당위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내 일과 남의 일, 가까운 것과 먼 것, 현재와 과거의 관성적 구분을 흐리면서 그것들이 결코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 한다. 현재의 사건과 과거의 사건이, 가까운 슬픔과 먼 슬픔이, 개인의 번민과 집단적인 애도가, 자국의 참사와 외국의 참사가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베를 짜듯 엮인다.
―이희우, 「작품해설」 중에서
작가의 말
『영원에 빚을 져서』는 실종된 친구를 찾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라진 사람의 흔적을 떠나 비로소 서로가 서로에게 연루된 존재임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죠. 연루되는 일은 불가항력이지만 연루된 모든 존재를 놓치지 않고 톺아보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잠깐이라도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창 너머 말간 하늘을 바라볼 때, 새가 아주 높이 날고 있을 때, 앞으로는 강건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다짐을 할 때…… 저는 마음속으로 죽은 사람을 호명합니다. 그래야 산 사람도 살고 죽은 사람도 산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점점 더 희미해지겠죠. 그래도 끝끝내 붙잡고 있어보려고 합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