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16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속에서도 나에게는 고민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간에 차라리 내게 주어진 일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는 것보다, 작은 성과라도 이루어내는 내가 더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엄마, 아빠의 선택으로 동네 초등학교에 다녔고, 무작위로 배정된 중학교에 진학했다. 반장 선거에서의 씁쓸한 패배, 2단 뛰기를 하나도 못 하는 내가 체육 수행평가 만점을 위해 밤낮없이 연습했던 일까지, 사소한 일이라도 매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우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에게 ‘고등학교’라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이 선택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이다. 그리고 나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나는 첫 질문에서부터 막혀버렸다. 나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해 보아도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탐구하는 것을 미루고, 또다시 앞만 보고 달려갔다.
곧 갈림길이 내 눈앞에 닥쳐올 텐데도 나는 여전히 멈출 줄 몰랐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앞지를까 봐 두려웠다. 또 나를 되돌아보기 위해 왔던 길을 밟아 뒤로 가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마치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갈림길 앞에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뿐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공부할수록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 고민은 결국 내가 만들어낸 문제들이었고, 나는 나 자신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른 책임감과 해야 할 일들은 점점 무거운 짐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고민은 쌓여만 갔지만, 해결 방법도 그것을 해결하려는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눈앞에 길이 있음에도 마치 큰 절벽 앞에서 길을 잃은 듯한 막막함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수학 문제를 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학 문제를 단순히 많이 푼다고 실력이 오르지 않는다. 한 문제를 붙잡고 풀이의 본질을 고민하고, 다른 접근법을 생각하며 문제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실력이 쌓인다. 그마저도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야 나의 수학 실력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혹은 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 고민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공부해 나가는 수밖에. 하지만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의 실력은 조금씩 향상하고 있다.
처음엔 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졌지만, 수학 문제를 해결하듯 나 자신을 깊이 탐구하는 것이 결국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지금까지 앞설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 단지 고민하며 멈춰 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남들은 각자의 길에서 나보다 일찍 갈림길을 만났을 수도 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나름대로 이겨내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알아갔을 것이다. 나는 그런 과정이 없었기에 고민 없이 세상을 더 빨리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여전히 나 자신을 어떻게 알아가야 할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렇게 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은 결코 시간 낭비도, 멈춰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질 것이고 언젠가 이 길에서 나만의 답을 찾게 될 것이다. 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그 끝에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날이 오면 나는 진정한 나 자신으로서 더 단단하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내 앞의 갈림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임윤지, 「갈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