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회라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다음 세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마지막 강의에서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까
여자와 주부, 둘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자는 언제부터 집안일을 담당했을까? 여자는 왜 돌봄과 육아를 홀로 맡게 되었을까? 돌봄 노동의 가치는 왜 늘 저렴하게 인식되는 걸까? 가사 노동은 왜 항상 지불되지 않는, 당연한 노동이 되었을까? 주부와 육아, 가족과 돌봄, 이 사이에서 생각해볼 질문들이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고,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질문들을 우에노 지즈코 선생이 마지막 강의의 주제로 선정해 연사로 나선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당신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NHK 방송의 〈마지막 강의〉를, 미방송분까지 다시 편집하여 이번 책으로 엮었다. 페미니스트 우에노 지즈코 선생이 마지막 강의에서 우리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코로나19 시기에 진행된, 약자의 본질에 접근하는 강의. 일생에 걸쳐 주부의 문제, 돌봄 문제를 연구해온 우에노 지즈코 선생이 재미난 입답으로 우리 사회의 복잡하고 애매한 문제들을 지적한다. 심각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약자와 가족의 문제를 들여다보자.
여자와 돌봄, 시대의 흐름과 예정된 변화를 이야기하다
우에노 지즈코 선생이 여자와 주부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시대에 드물게 연애 결혼을 한 자신의 어머니가 늘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그 윗세대 눈치를 보는 걸 지켜보며 여자의 인생, 주부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주부에 대한 연구는 약자와 돌봄에 대한 연구로까지 이어졌다. 더불어 일본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강한 결탁에 대해서도 선생만의 관점을 유쾌하게 수강생들에게 설파한다. 두 제도의 끈끈한 결탁이 어떻게 여성을 일터에서 소외시키고, ‘가정’에 고립되게 만들었는지 역사적인 관점에서 그 이유를 살펴본다. 집안일을 결코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오래된 관습, 여자 혼자 가사와 육아, 더불어 노인의 돌봄까지 맡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사회인지, 우에노 지즈코 선생의 꼼꼼한 시선으로 비정상적인 사회의 구석을 들여다 본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서로 보완하며 살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이제라도, 조금씩 보이고 있는 걸까. 우에노 선생은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한다. 그러니 오래되어 현실과 맞지 않는 이론을 과감히 걷어차고, 우리가 겪어온 경험을 온전히 믿어 보자고 주장하며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약자가 약자인 채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페미니즘의 새 정의
강의 막바지에 우에노 선생은 2019년, 도쿄 대학에서 전했던 축사 이야기를 꺼낸다.
“여러분이 가진 좋은 환경과 능력으로 못 가진 사람들을 핍박하지 말고 도와야 합니다. 강한 척하지 말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며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약자가 된다. 우에노 선생이 말하는 약자는 곧 미래의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으며,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 그래서 우에노 선생은 약자가 약자인 채로도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 약자여도 안전하게 돌봄 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한다. 그리고 그 사상의 집약이 바로 페미니즘이 아니겠냐고 되묻는다. 다른 그 무엇보다 약자와 돌봄에 있어 꼭 필요한 이론이 페미니즘이라고 말하는 선생의 주장에 수강생들은 살짝 놀란다. 그렇지만 약자가 아무런 불편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 보면, 선생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무런 허들도 없이, 약자여도 존중과 안전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세상은 누구나 바라는 세상이며 필요한 세상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결국은 나 혼자만 잘 살면 그만인 사회가 아닌, 언제가 다가올 약자의 시간을 서로 인정하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선생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회이다.
열심히 한다고 노력했는데, 이런 사회라서 미안하다고, 우에노 선생은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당신은 다음 세대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물려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 부자가 아니어도, 장애가 있어도, 나이가 들어도, 모두가 그 존재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마지막 강의의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