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순간, 강한 쇳소리를 내며 날아온 창이 담덕의 등에 꽂히고 말았다. 둘러선 호위무사들이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날아든 창은, 손잡이가 그리 길지 않아 근접 거리에서 던지기에 적합한 무기였다.
뒤늦게 창칼을 빼든 호위무사들이 동부여군을 상대하는 사이, 담덕은 제사상 바로 옆에 엎어진 수빈을 일으켜 세워 잽싸게 동굴 안으로 몸을 숨겼다.
“폐하! 태왕 폐하!”
수빈은 꼼짝도 하지 않는 담덕의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마구 흔들었다. 가슴에 온기가 느껴져 살아 있는 생명이지, 거의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나무토막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자 수빈은 절망한 표정으로 흐느껴 울었다. 어깨까지 들먹이며 몸부림을 쳤다.
_〈추모 위령제〉 중
마침내 7중목탑 안에 불이 밝혀지고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노승 석정의 염불 소리가 새벽공기에 온기를 불어넣기라도 하듯 부옇게 밝아오는 하늘로 울려 퍼졌다. 후연 특공대 10여 명은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작전 개시에 돌입했다. 각 초소를 맡은 자들은 재빠르게 뛰어들어 단검으로 초병들의 목줄을 그었다. 그와 동시에 7중목탑의 불을 지르는 조는 각자 송진과 유황 덩어리가 든 자루를 들고 달려갔다. 송진과 유황에 불이 붙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석정의 제자인 젊은 승려들과 경비 군사들이 7중목탑으로 달려가 문을 열려고 했으나, 불길이 활활 타올라 접근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목탑 안에서는 노승 석정의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스님, 스님……!”
젊은 승려들이 뜨거운 불길 때문에 7중목탑 근처로 접근하지도 못한 채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쳐댔지만, 노승 석정의 염불 소리는 어둠을 씻어내는 산야를 향해 고고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_-화(火)가 화(禍)를 부른다
“좋은 생각이 있으시오?”
오진이 와니 가까이 이마를 들이댔다.
“전지 태자가 떠나기 전에 결혼을 시키는 것입니다.”
와니는 예전에 오진이 자신에게 사용했던 전략을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전한 것인데, 오진의 눈에서 번쩍 빛이 났다.
“오, 그래! 짐에게 아직 혼전인 공주가 하나 있지. 가만 있어보자. 우리 하치스(八須)가 전지 태자보다 두 살 많구나. 여기서 하치스 공주와 전지 태자를 결혼시켜 귀국하도록 하면, 아국과 백제는 서로 사돈 국가가 되지 않겠소?”
오진은 정략결혼이야말로 왜국과 백제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생각했다.
_〈오만한 군주들〉 중
‘아아, 또 이렇게 고구려군에게 당하는구나.’
목만치는 자신의 가슴을 쳤다. 처음 동남쪽에서 고구려군이 대야산성을 공격해올 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적이 또 나타났다. 결국 목만치는 고구려군에게 대야산성을 내주는 처지에 놓였다. 그는 신검무사들로 하여금 살아남은 백제군을 이끌고 서문을 열고 빠져나가 갈마산성으로 퇴각하라고 명했다.
_〈압박과 포용의 심리 전술〉 중
한겨울에 서북풍이 찬 기운을 몰아왔다. 그런 서북풍과 함께 북위에서 고구려로 전해져온 것은 탁발규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파발을 통해 그 소식을 알게 된 태왕 담덕은, 그렇게 한 세상이 저물고 새로운 세상이 밝아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연의 고운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 안 되어 다시 화북의 맹주 탁발규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문득 앞으로 변화할 시대의 격랑이 먼저 염려되었다. _ 〈동부여 경략〉 중
수빈은 다시 종기에 입을 대고 빨았다. 그렇게 수차례 빨아내자 더 이상 고름이 나오지 않았고, 빨 힘조차도 없어졌다. 그런데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다. 담덕이 정신을 차리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태, 태자와 국상을 불러오라.”
오래도록 비몽사몽간을 헤매며 말 한 마디 못하던 담덕이 말을 하자 시의는 놀랐다.
“흐음, 태자는 드, 듣거라. 봄꽃이 아름다운 것은 한겨울의 강추위에 눈보라를 견뎌내고 피어났기 때문이란다. 우리 고구려도 봄꽃처럼 그렇게 화사하게 피어나야 하느니라.”
담덕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 뜻은 좋은데, 시호가 너무 길지 않습니까?”
한참 들여다보며 뜻을 해석해보던 거련이 정호를 바라보았다.
“네, ‘국강상(國岡上)’이라 함은 그 뜻이 ‘나라 언덕 위’인데, 이 세상을 말하는 ‘온누리’,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우주’라는 의미가 함유되어 있사옵니다. 우리 고구려는 천손의 나라이므로, 그 군주는 마땅히 우주의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호는 자신의 말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그 뜻을 강조하였다.
정호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비석을 올려다보았다. 가슴이 먹먹해진 거련도 저절로 눈길이 그곳에 가서 머물렀다. _ 〈태왕의 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