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갑자기 시야 한구석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왼쪽 뒤에 있는 무언가.
뭐지?
그 위화감은 말로 잘 표현할 수 없었다.
무언가 다른 질감을 가진 것. 무언가 주위와 다른 것. 그런 존재를 왼쪽 대각선 뒤에서 느꼈던 것이다.
나는 뒤돌아봤다.
그러자 거기에 녀석이 있었다.
그 밖에 다른 참가자들이 우글우글했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한눈에 스튜디오 맨 뒤에 서 있던 녀석을 찾아냈다.
그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 건 어째서인지 주변보다 색이 짙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몇 번이나 기억을 곱씹어봤지만, 분명 그때 주위 아이들은 회색빛이 살짝 도는 옅은 색으로 보였는데 녀석만 거무스름해서 목탄으로 휘갈긴 데생처럼 윤곽이 또렷하게 보였다.
Ⅰ 뛰어오르다, 13쪽
나는 눈을 의심했다. 녀석의 몸은 어떻게 봐도 내 시선보다 위쪽에 있었다.
녀석의 춤에서는 압도적인 삶의 환희가 넘쳐흘렀다.
녀석의 머릿속에, 그리고 녀석을 보고 있는 나의 머릿속에도 버르토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아니, 녀석은 버르토크를 추고 있었다. 우주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보고 있는 ‘형태’가 나에게도 보이는 듯했다.
나는 터무니없이 행복했다. 동시에 터무니없이 분했다.
녀석의 눈부신 춤을, 지금 이때뿐인 요로즈 하루의 감동과 창조의 순간을 목격하는 행운을 독차지하는 기쁨과 어째서 이런 기적적인 녀석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무용수가 되었을까 하는 분함을 음미하며 우두커니 서 있었던 것이다.
Ⅰ 뛰어오르다, 96~97쪽
난 말이야, 뭔가가 납득이 되면 여기가 딸깍 하고 울리거든.
그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댔다.
사실 그 체조 클럽에서 공중회전을 했을 때는 딸깍 하고 울렸어.
그건 신기했지. 그때 뭔가 예감은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 엄마가 물어봤을 때, 그 장소는 아니라고 본능적으로 느꼈어.
흐음. 그럼 그때는 아직 발레가 머릿속에 없었던 거네.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발레의 ‘ㅂ’도 없었어. 내 사전에는 아직 ‘발레’가 없었지.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는 문득 먼 곳을 바라봤다.
어릴 때는 딱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어. 언제나 내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서 관찰했고, 그렇게 세계를 내 안에 입력하는 것만 해도 벅찼거든.
그가 모든 것을 열심히 관찰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거듭했던 건, 계속 찾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해야 할 무언가.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무언가.
그걸 너무나 열심히 찾다 보니, 보통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고 마는 것이다.
Ⅱ 싹트다, 131~132쪽
살며시 앞으로 기울인 자세.
목부터 등, 허리부터 그 아래는 잘 보면 삐딱한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오른팔은 팔꿈치까지 옆구리에 딱 붙였고, 팔꿈치부터 아래쪽은 앞으로 내밀었으며, 손바닥은 무언가를 움켜쥐듯이 벌렸고, 손가락은 팽팽하게 뻗었다…….
사방에 실이 쳐진 것처럼 아스라이 허공을 떠도는 매화 향기.
나는 오싹했다.
매화나무.
여기에 매화나무가 서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창밖에서 실려 오는 매화 향기를, 그곳에 서 있는 그가 내뿜는 것으로 착각했다.
Ⅱ 싹트다, 165쪽
오리지널리티를 계속 유지하려면 진화해야 하고, 심화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는 건 온갖 분야에서 통용되는 진리다.
하루의 내부에서는 늘 눈이 돌아갈 만큼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엄청난 기세로 흐르고 있다. 항상 신선하고 생생한, 정신 활동(아니, 생명 활동인가?)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무언가가 펄떡펄떡
고동치고 있다.
Ⅲ 솟아나다, 295~296쪽
난 말이야, 지금까지 쭉 궁금했어. 어째서 우리는 발레를 보는 걸까. 왜 발레를 보고 싶어하는 걸까. 그러다 〈어새슨〉을 보면서 처음으로 ‘아아, 나 대신 춤춰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건 내가 발레를 했기 때문이 아니야. 무용수가 아니라도,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이라도,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그 모든 관객을 대신해 춤추고 있는 거야. 원래 무대 예술이란 게 다 그럴지도 모르지. 연기자나 음악가, 무용수는 무대 위에서 관객을 대신해 살아주고 있어. 모두가 무대 위에서 다시 사는 자신을 봐. 무대 위의 예술가와 함께 인생을 다시 사는 거야.
Ⅲ 솟아나다, 342~343쪽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본’ 것만 같았다.
인간이라는 생물이 그저 순수하게, 움직인다는 목적을 위해, 아름다운 형태만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저걸 내 몸으로 재현해보고 싶다.
역시 첫 체험의 충동에 자극을 받아, 어느새 나는 뛰어오르고 있었다.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착지한 순간, 가슴 한복판에서 딸깍 하고 무언가가 울렸다.
그 순간을, 그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세상의 문이 열렸다고 해야 할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나는 온몸으로 그 충격을 받아들였다. 감격과 전율과 환희와 절망이 뒤섞인 충격을.
Ⅳ 봄이 되다, 408~409쪽
춤은 기도를 닮았다.
〈봄의 제전〉을 만드는 동안 그런 생각을 마음속 어딘가에서 계속하고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기도하는지는 모른다. 내가 나에게 기도하는 것인지, 내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것인지, 춤추는 행위가 기도인지, 기도하는 행위가 춤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그 부
분은 혼돈에 차 있어서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다.
오늘도 하루를 온전히 춤출 수 있기를.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춤출 수 있기를.
Ⅳ 봄이 되다, 4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