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에서
“강간, 이라니, 이건 남자인데?”
이소나가 교수가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맹점을 찔린 기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체가 여자이고 옷이 벗겨져 있다면 일단 성폭행을 의심하고 자세히 조사했겠지.”
시바가 냉정하게 대답했다. “알몸이면 당연한 절차죠. 말하자면 관례입니다. 그런데 남자 사체일 경우에는 왜 그 방향으로 조사하지 않을까요. 강간 여부를 의심하기는커녕 의식하지도 않았겠죠. 치한이니 강간이니 하면 일단 여성이 피해자일 거라고 단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인데, 젠더 바이어스의 전형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남성도 치한한테 당하고 강간 피해도 있고…… 그렇죠, 구라오카 경부보?”
52-53p.
“……어떡한다? 경찰에서 보호해주는 게 좋을까?”
“경찰에서 보호할 경우, 부모가 데려가도록 연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학대하는 장본인일지도 모르는 부모에게 말입니다. 그 전에 아이들이 연락처를 밝힐지 말지도.”
“그럼 우리가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부모와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지금 따님을 학대하고 있습니까, 라고 묻게요? 아니라고 하면 아이를 넘겨주어야 하는데 보나마나 부인하겠죠. 아이를 넘겨주었다가 더 심한 학대를 당한다면…… 따님은 구라오카 씨를 평생 용서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236p.
“그것은 여자라는 성을 무의식중에 낮춰보기 때문이겠죠. 성범죄라고 해도, 겨우 그것쯤이야,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살인사건이었다면 체포영장 집행을 중지시켰겠습니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영혼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잔인한 범죄라는 생각을 했다면 최소한 체포는 진행했을 것이고, 그 뒤는 제대로 된 경찰의 역할대로 검찰과 재판에 맡겼겠지요. 이것은 부장님만이 아니고 정치가만도 아니고 이 나라의 바탕에 있는 우리의…….”
구라오카는 제 가슴을 쳤다. “우리의, 죄입니다.”
283p.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치한, 도촬, 도청, 학대, 동의 없는 성행위, 아동 매춘, 아동 포르노 제조 및 판매, 전 연인의 스토커 행위나 폭력, 불특정 여성이나 아동을 노린 무차별 공격…… 성에 관한 편향된 생각이나 무자각적인 차별의식, 예로부터 내려온 왜곡된 성문화에 기인한 범죄는 워낙 다종다양해서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할 말이 없지만, 다테하나는 이런 범죄에 강렬한 거부반응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었다. 감정을 조절하며 수사하는 요령을 신참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자면 신참의 생활환경과 성장환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370-37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