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은 생명체를 관찰하는 오래된 도구이자, 지금도 새로운 기술로 업데이트되는 실험 장비다. 맨눈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작은 생명체,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 생명의 정보를 담고 있는 DNA와 RNA까지,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대상은 폭넓다. 생물물리학은 생명현상에서 물리법칙을 밝히는 학문이다. 크게는 생명체 집단의 행동과 진화 과정을 연구하기도 하고, 작게는 DNA나 RNA가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을 밝히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DNA, RNA, 단백질, 세포 크기에서 작동하는 생명현상을 다룬다. - 25쪽
초고해상도현미경을 이용해 회절 한계보다 작은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생체 물질을 발견했고, 지금도 이 장비의 성능을 높여서 새로운 현상을 관찰했다는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 쓸모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인간 뇌의 작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뇌 발달을 이해하고 뇌 질환을 치료하는 데 초고해상도현미경을 사용할 수 있다. 암을 조기에 간편한 방식으로 진단할 수 있는 분자 기반 진단 키트에도 활용될 수 있다. 생물물리학자는 초고해상도현미경을 이용해 인체에 대한 과학인 인체생물학에 기여하고 있다. - 53쪽
물리학에서는 원자보다 작은 힉스나 쿼크부터 광대한 우주까지 다룬다면, 생물학은 원자부터 지구까지만 관심을 가진다. 물론 우주에서 생명체를 찾기도 하고 지구 대기권에서 생물학을 연구하는 우주생물학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구를 중심으로 생명을 다룬다. 그래서 생물물리학도 생물학과 비슷한 크기의 물질에 관심을 가지는데, 일반적으로 분자, 세포, 조직, 개체, 생명체 집단이 주요 연구 단위다. 최근에는 생명현상을 원자 이하의 크기에서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려는 양자생물학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명 과정이 분자의 화학 반응을 거쳐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자 단위에서 연구하는 것이 최근 분자생물학, 생화학, 생물물리학의 추세다. 원자 이하의 크기에서 작동하는 양자역학으로 생명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연구는 아직 생명과학과 생물물리학에서 핵심 주제는 아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분자 크기에서의 생명현상을 다룬다. - 61쪽
생물물리학은 물리학과 생물학의 접근 방식을 결합한 학문이다. 물리학자가 복잡한 시스템을 단순화하여 수학적 모델을 만드는 반면, 생물학자는 생명체의 본질적 복잡성을 인정하고 실험적 비교에 중점을 둔다. 생물물리학자들은 이 두 가지 접근법의 장점을 취한다. 그들은 생명 시스템의 복잡성을 인정하면서도, 측정 도구와 데이터 분석 방법을 개발해 이를 정량적으로 이해한다. 특히 질병과 관련된 시공간 척도에 초점을 맞추어, 분자 수준부터 인체 수준에 이르기까지 생명현상을 연구한다. 다시 말해 생물물리학은 생명의 본질적 복잡성을 인정하면서도 물리학의 정량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 78쪽
생물물리학자들은 생명 정보가 담긴 DNA의 구조와 기능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엑스선 결정학은 지금도 유전자 편집에 필요한 단백질과 효소의 구조를 확인하는 데 활용되며 단분자 형광공명에너지전달 기술은 DNA가 절단되었을 때 복구되거나 재조합되는 과정을 알아내는 데 사용된다.
생물물리학자들이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편집하는 도구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면, 생물학자들은 그 도구를 이용해 암이나 노화, 수명 같은 생물학적 질문에 답을 찾는 데 관심이 있다. 이렇듯 생물물리학과 생물학은 협력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 108쪽
DNA는 저절로 복제되지도 않고, 오류 없이 복제되지도 않는다. 생명 정보가 보존되고 전달되기 위해서는 생체 내에서 물질이 정교하게 상호작용해야 한다. DNA가 복제될 때 오류가 발생하면 오류 발생 위치를 인식하고 복구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래서 생물물리학자들은 생명현상에서 물질의 상호작용과 정교한 배치를 알아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123쪽
생명을 정보 관점에서 보았을 때 DNA는 정보의 시작이다. DNA에서 RNA로, 다시 RNA에서 단백질로 정보가 전달되는 생명의 정보 전달 과정을 중심 원리라고 한다. 중심 원리가 대체로 맞기는 하지만, 지금은 정보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고 본다. DNA가 절단되거나 염기가 손실되었을 때 DNA를 복구하는 과정에 여러 RNA와 단백질이 관여하기도 한다. 또한 비번역RNA는 단백질 합성을 위한 직접적인 정보는 전달하지 않지만, 유전자 발현과 세포 기능 조절에 관한 중요한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고 조절한다. - 140쪽
생물물리학자는 세포 안에 RNA가 몇 개나 있는지 궁금해한다. RNA 개수가 특정 유전자의 발현 수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RNA 개수가 많다는 것은 유전자가 활발히 발현되고 있다는 뜻이어서 RNA의 비정상적인 증가나 감소는 질병을 진단하는 바이오마커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암 관련 RNA가 증가한다면 종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144쪽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이유는 신약 개발을 위한 후보 물질을 찾고 분자생물학적 과정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단백질 구조 분석은 생물물리학의 쓸모를 보여주는 연구다. 생물물리학은 생명현상을 나노미터 수준에서 이해해서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데 기여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단백질 구조 분석을 포함해 단일 세포 RNA 서열 분석까지, 생물학 연구에서 계산이 중요해지면서 계산생물학이라는 분야가 등장했다. 그리고 연구 과정에서 생물물리학과 계산생물학이 하나로 융합되고 있다. - 157쪽
이 장에서는 생물물리학의 핵심 주제인 단백질 구조에 관한 연구를 다루었다. 이 분야는 지난 세기에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엑스선 결정학 기법에서 시작해 인공지능 기반 예측 모델에 이르기까지 실험과 이론의 결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로, 이런 접근 방식은 복잡한 생물학적 과정의 이해는 물론이고 신약 개발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생물물리학은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고 기능을 알아내는 연구를 통해 생명의 비밀을 풀어내며, 다양한 질병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머신러닝과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계산생물학이 등장했고 생물물리학과 계산생물학이 융합하면서 통합된 연구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물리학의 엄밀한 방법론과 생물학의 복잡성, 첨단 컴퓨팅 기술이 만나 시너지를 만들어낸 사례이기도 하다. 생물물리학과 계산생물학의 융합으로 생명현상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으며, 실용적인 측면에서 질병 치료와 생명공학에서 혁신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 182쪽
물리학은 세상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는 학문으로, 시간, 공간, 운동을 중심으로 자연 현상을 탐구한다. 또한 물리학자는 관찰한 현상을 수학적 언어로 표현해 정확하고 보편적인 지식을 추구한다. 물리학의 독특한 점은 현상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밀한 측정 도구를 직접 개발하고 새로운 물질을 만들면서 미지의 영역을 밝혀낸다는 것이다. 특히 물리학의 분과학문 중의 하나인 생물물리학은 나노 크기의 물질을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을 개발해 DNA, RNA,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관찰한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명현상의 동역학을 설명하는 수리 모델을 세운다. 이런 접근 방식은 생물물리학이 생명과학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생물물리학의 연구 대상 중 하나인 세포에는 지금까지 살펴본 DNA, RNA, 단백질을 포함해 여러 생체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물질에 변화가 생긴다면 세포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 변화를 세포 내의 특정 위치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하면 여러 생명현상을 알아낼 수 있다. 생물물리학자는 세포를 관찰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지만, 특히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는 생명체가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반응하는 메커니즘이다. - 1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