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표면을 따뜻한 손으로 문질러보니 ‘타다닥’ 소리를 내며 과거 공기가 터져나왔다. 빙하 속 공기를 잘 빼내어 실험 기기가 분석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을 모으면 이산화탄소나 메탄 등 온실가스를 복원할 수 있다._10쪽
더 나은 지구를 만들기 위해 과거 지구의 기후 및 환경 자료를 복원해 현재 지구의 상태를 자세히 관찰하고 미래 기후를 예측한다. 과거 기후를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재 지구의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서다. 현재 기후 자료와 과거 자료를 모아 길게 늘여 들여다보면 오늘날의 기후변화의 방향과 원인 및 시기를 진단할 수 있다._34쪽
빙하 최상단 눈송이들 사이로 대기가 자유롭게 대류하지만 시간이 지나 더 많은 눈이 쌓이면 눈송이 간격이 좁아지고 대기가 확산의 원리에 따라 이동한다. 빙하는 과거 대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 그 기록을 가장 직접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자료다. 그래서 빙하를 냉동 타임캡슐이라고 부른다._38쪽
인류 활동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지금과 유사한 기후 조건을 갖고 있는 데이터와 비교해봐도 오늘날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가 정말 이상하긴 하다. 지난 80만 년 동안 오늘날처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았던 적이 없고 지구의 역사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이토록 빠른 속도로 증가한 적도 없었다._83~84쪽
전 지구인이 함께 노력하면 20퍼센트의 온실 기체 감축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동이 바뀌면 기업의 마케팅 방향이 바뀌고 산업의 구조가 바뀌면 보수적인 국가 정책 또한 바꿀 수 있다. 전 지구인의 티끌과 같은 노력을 모으면 태산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지구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렸다._104쪽
과거 기후가 기록되어 있는 빙하가 기후변화로 사라지고 있다. 빙하학자에게는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책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일이다. 더 이상 지구상에 연구하기에 적합한 빙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 직업도 빙하와 함께 사라질지 모른다. 기후변화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생각지 못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위협해오고 있다._126~127쪽
마침내 빙상 위로 착륙했다. 비행기의 꼬리 쪽 문이 활짝 열렸다. 열린 문을 통해 눈에서 반사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빙상에 반사된 빛 때문에 마치 천국에 도착한 것 같았다. 비행기가 멈추자 한기가 끼쳐왔다. 실험하느라 냉동고에서 작업할 때 느꼈던 그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린란드다. 드디어 나는 시추 현장에 도착했다._150쪽
세상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로 떠나기 전 나를 힘껏 밀어내면 어쩌나 두려웠다. 하지만 그린란드는 큰 마음으로 나를 품어주었고, 나는 그린란드에게 빙하학자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틈틈이 눈 위에 누워 내 등 아래에 수백만 년 동안 쌓인 2700미터 깊이의 빙상을 상상하며 연신 그린란드에게 고마움을 건넸다. 그렇게 4주간 빙하만 생각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_212쪽
우리는 기후변화가 와닿지 않는다는 기성세대와 기후위기를 보고 자라는 세대가 공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성세대는 살아온 방식을 유연하게 바꿀 방법이 필요하다. 중세 온난기 기간에 그린란드로 넘어간 노르웨이 바이킹족이 삶의 방식을 유지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한파와 가뭄으로 그린란드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것처럼 우리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고수하면 언젠가 지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환경에 발맞춰 살면 새로운 세대에게도 내일이 있을 것이다._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