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국가로 진입을 앞둔 현재, 종족적 민족주의는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종족과 민족을 강조한다면 태생적인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너와 나를 넘어서 우리가 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동안 민족주의는 멀리는 1900년대 초반 애국계몽을 시작으로 독립운동, 통일운동, 산업발전 운동 등에서 각기 다른 생각과 가치를 하나로 묶는 아주 좋은 도구였다. 다행히 사실상 섬 국가처럼 고립된 대한민국의 특성상 외부와 충돌과 그 충돌로 인한 문화접촉이나 문화융합이 적었던 터라 그 도구는 기능적으로 잘 작동했다.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진 지금, 우리는 획일적인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는 대신 다민족·다문화국가로서의 민족주의 개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안으로는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이민자의 국가와 인종, 피부색, 출신 등에 순위를 매기는 사고방식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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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인 조상을 갖고 있고 대부분을 한국에서 살아온 덕구와 덕희. 한국 국적을 갖고 있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엄마 바네사. 이제껏 우리 사회는 한국인 조상을 가진 이들만을 유일하게 한국인으로 규정해왔다. 이러한 국민 정체성 규정은 사회가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접어들면서 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간 우리는 종족적 국민 정체성을 중요시하고 시민적 국민 정체성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덕구와 덕희는 물론이고, 바네사 역시 대한민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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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민정책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만, 난민정책에 대해서는 극도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서술한 것처럼 실제 난민이냐, 난민을 빙자한 이민자이냐 의심이 그 시작이다. 나아가 무슬림, 아프리카 등 종교 문화적으로 아주 다른 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과연 우리 사회에 동화될 수 있는지 불안해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약자와의 연대는, 대한민국의 발전에 반드시 필수불가결한 의제다. 난민, 예를 들어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 들어온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나의 올드 오크〉 역시 노동자와 난민 갈등, 다시 말해 약자와 약자와의 불협화음을 통해 사회적 가치의 한계와 미래를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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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언론사들은 ‘푸른 눈의 한국인’, ‘푸른 눈 의사’, ‘푸른 눈의 혁신위원장’ 등의 표현을 제목에 보도했다. 신문윤리위는 해당 기사들이 신문윤리실천요강 ‘차별과 편견 금지’ 조항과 신문윤리강령 ‘언론의 책임’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차별과 편견 금지’ 조항을 보면 지역, 계층, 성별, 인종, 종교 간 갈등이나 혐오를 부추기는 보도를 해서는 안 되며, 이에 근거해 개인이나 단체를 차별해서도 안 된다. 신문윤리강령 ‘언론의 책임’ 조항을 보면 언론은 다양한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신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신문윤리위는 당시 피부, 눈동자 색으로 인종을 구분하는 관례적 표현에 대해 차별과 편견이 숨어 있다고 봤다.
신문윤리위는 “서구인 혈통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인요한 교수를 백인종의 인류학적 특징 중의 하나인 ‘푸른 눈’으로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지만 이와 같은 묘사는 자칫 인종주의적인 표현으로 인식될 수 있고 차별과 편견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비하적인 표현이 아니라 선한 의도였다 할지라도 굳이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인에게까지 인종적 색깔로 차이를 강조하고 우리와 구분 지어서 배제하는 방식의 보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 같은 표현은 인요한 교수가 이방인으로서 한국의 정치 풍토 속에서 어떻게 동화될 수 있을까 하는 시선이 담겨 있는 것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어 향후 그의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거나 희화화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에 대해 표현의 자유보다 사회적 책임을 우선하는 것만큼 인종적 차이로 서로 구분 짓는 그 어떠한 표현에 대해서도 관례라는 이유로 쉽게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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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외국인이 옆집 샀대… 중국인 집주인 가장 많은 동네는’ 등의 말이 현실과 닿지 않는 노골적인 편가르기처럼 보일 정도로 시군구별로는 경기 부천시가 4,844가구로 가장 많았고, 안산시도 4,581가구 정도다. 이어 수원 3,251가구, 시흥 2,924가구, 평택 2,804가구 순으로 외국인 집주인이 많았다. 또 외국인 국내 토지 보유 면적은 2014년~2015년 사이 높은 증가율을 보였으나, 2016년부터 증가 폭이 둔화된 후 현재까지 완만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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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이런 막연한 위기감을 표면화했다. 이주민 중간계급과 원주민 하층계급 사이의 자본과 인종의 충돌은 0.49%에 불과한 외국인의 토지 주택 구입의 공포감과 다름없다. 이러다 중국인의 집에서 월세를 살 거라는 불편함, 이러다 토지와 아파트가 외국인의 자본에 넘어갈 거라는 불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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